Dear my friend,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적으려니 좀 어렵네.
너는 내게 늘 '그것'이었어. 나는 너를 이름으로도 부르지 못했지. 무서웠던 것 같아, 너의 이름 세 글자를 부르기조차. 최근 몇 편의 글에 너와의 지난 일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으면서 널 만나고 처음으로 네 이름을 반복적으로 불러보게 됐어. 그러니까 네가 덜 무서워졌어. 너와 은밀한 내적 친밀감도 생기고. 참 신기하지?
전엔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많이 궁금했어. 너는 왜 하필이면 내게 왔을까.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것 같거든. 그리고 그때가 오면 나는 내가 알게 될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아.
사실 나, 너와 빨리 작별하고 싶었어.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네가 알면 정말 무정하다고 할 만큼. 너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어. 너로 인해 내 일상엔 제약이 많아졌거든. 나는 어딜 가든 아침, 저녁 약봉지부터 챙겨야 했고, 친구들과 저녁에 가벼운 맥주 한 잔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어. 수면의 양과 질이 너무 중요해져서 심야영화를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정색하며 "그건 안돼!"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지.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항상 무서웠어. 성과를 낸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하니까. 어디까지 열심히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더라고. 그 '어디'를 알 수 없다는 게 참 어렵더라.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제약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그때 난 스스로를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무능한 대학원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지도교수와의 만남에서 매번 좌절하고 엄청난 굴욕감을 느끼며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 내 생활에 질서라곤 없었어. 밤새우기, 몸에 안 좋은 음식들로 폭식하기가 질서라면 질서였지.
근데 너를 만나고부터 나는 달라졌어. 새벽 운동을 시작하고, 삼시세끼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었어. 무엇보다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거리는 것들에 감사하며 나 스스로를 아끼는 법을 배웠거든. 너와 만나고 생겨난 내 일상의 제약들이 어떻게 보면 일련의 규칙들이 되어 내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더라고.
또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른 이들의 아픔이 눈에 들어왔어. 내가 너를 만나보니 알겠더라고. 세상이 얼마나 깜깜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한 줄기의 빛이라도 있다면 그 어둠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전에는 주변을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널 만나고 나서는 사람들이 가진 각기 다른 모습의 고통과 아픔이 마치 나의 고통과 아픔처럼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더라.
하지만 난 여전히 네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너 때문에 해야 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싶었거든. 그게 진짜 자유로운 거니까. 그리고 결혼을 할 때가 되어서는 사랑하는 그의 오똑하고 멋진 코와 나의 동그란 눈을 닮은 아기를 낳고 싶어졌어. 너를 만나지 않기 위해 매일 먹는 약들이 건강한 아기를 가지는 데에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물론 네가 함께해도 건강하게 출산하는 산모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 모를 조금의 위험이라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었거든. 그래서 너와 작별하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너 정말 끈질기더라. 내가 한참을 숨 가쁘게 달린 다음 이만큼이면 네게서 멀어졌겠지, 하고 잠깐 숨 돌리고 있으면 너는 어느새 내 뒤에서 까꿍, 하고 나타나더라고. 널 떼어내기가 참 힘들었어.
가장 최근에 우리가 만났던 지난해 11월, 그 후엔 이런 생각이 들었어. 너와 이별하는 걸 정말 포기해야 하나? 내가 너무 큰 꿈을 꾼 걸까? 나는 너와 헤어질 준비를 다시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웠어. 그 몇 년 동안 품어왔던 희망의 크기가 컸던 만큼 그게 좌절됐을 때 나는 다시 어디를 바라보며 눈을 떠야 할까 알 수 없었어. 몇 달 동안 부표하는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있잖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땅에 다리를 뿌리내린 지금, 나는 생각해.
네가 어느 날 내게 홀연히 온 것처럼 어느 날 그렇게 또 홀연히 떠나가지 않을까. 어느 아침 눈을 떴을 때 네가 내 곁에 와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어느 아침 눈을 뜨면 네가 떠나며 남기고 간 발자국만 남아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너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어.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너에게 이별을 고할 거야. 이제 겨우 너와 첫 번째 이별 시도를 했을 뿐인걸. 어느 날 더 이상 너의 존재가 내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 네가 먼 여행을 떠났구나, 하고 이해할게. 그러니 그때까진 나와 편안하게 지내길 바라.
나는 널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아.
너로 인해 나는 삶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됐어.
그래서 고마워.
우리 언젠간 꼭 아름답게 이별하자.
그때까지 잘 지내.
이상한 나라의 올빼미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
Q: 이상한 나라의 올빼미는 무엇으로 사나요?
A: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말한 것으로 삽니다.
(출처: 이상한 나라의 올빼미)
*개인 사정으로 원래 일정인 내일 업로드를 하지 못해 오늘 미리 업로드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