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숙제라는 인간관계
모든 삶은 관계 속에 얽혀있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과거 우리가 집단생활을 하면서도 그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단 속에 포함돼야 생존이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했다. 맞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들고 괴롭지만, 결국 사람에게 치유받고 회복하고 있으니깐.
친구관계, 연인 관계, 부부관계, 부부 자식 간의 관계, 사회적 관계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단체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 단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친한 사람이 만들어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해야 한다. 결혼이 진짜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 가 아닐까.
아예 다른 환경의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연애 기간을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럼 여기서부터는 의무가 생긴다. 상대방의 부모님도 내 부모처럼 존중하고 효를 다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양가의 부모님도 각자의 자식이 더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들은 어쩔 수 없지만 겪어야 하는 인간관계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서 끝일까?
내 속으로 낳았지만 속을 모르겠는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어떨까. 무조건 승자였던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가 아닌, 무조건 패자가 돼야 하는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내가 낳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알려줬지만, 내가 틀렸다고 하고 나랑 반대의 길로만 가려는 자식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주 미화된 것이지 어려운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든 생각인데, 바닥을 보고 난 관계가 지속되는 건 힘들일 같다. 제목처럼 치부를 본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는 거 같다. 치부를 들킨 사람은 들킨 사람 나름의 수치심과 민망함이 있을 것이고. 치부를 알게 된 사람은 선입견과 마음속 한 공간에 치부에 대한 편견으로 그 사람을 온전히 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아끼라고 하는 말이 예전부터 대대로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온 말 인가보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말라는 글을 읽었다.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아서 질투가 쏟아질 것이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어서 무시가 쏟아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라서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내 이야기를 굳이 많이 하지 않는 것. 그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