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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풍기 Jul 19. 2023

치부를 본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평생의 숙제라는 인간관계

모든 삶은 관계 속에 얽혀있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과거 우리가 집단생활을 하면서도 그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단 속에 포함돼야 생존이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했다. 맞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들고 괴롭지만, 결국 사람에게 치유받고 회복하고 있으니깐.

 친구관계, 연인 관계, 부부관계, 부부 자식 간의 관계, 사회적 관계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단체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 단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친한 사람이 만들어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해야 한다. 결혼이 진짜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 가 아닐까.


 아예 다른 환경의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연애 기간을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럼 여기서부터는 의무가 생긴다. 상대방의 부모님도 내 부모처럼 존중하고 효를 다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양가의 부모님도 각자의 자식이 더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들은 어쩔 수 없지만 겪어야 하는 인간관계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서 끝일까?
 
 내 속으로 낳았지만 속을 모르겠는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어떨까. 무조건 승자였던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가 아닌, 무조건 패자가 돼야 하는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내가 낳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알려줬지만, 내가 틀렸다고 하고 나랑 반대의 길로만 가려는 자식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주 미화된 것이지 어려운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관계는 미화되었다. 

좋았던 것만 기억하려고 하고 좋았던 기억만 곱씹으니깐 미화된 것이야.
 


 문득 든 생각인데, 바닥을 보고 난 관계가 지속되는 건 힘들일 같다. 제목처럼 치부를 본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는 거 같다. 치부를 들킨 사람은 들킨 사람 나름의 수치심과 민망함이 있을 것이고. 치부를 알게 된 사람은 선입견과 마음속 한 공간에 치부에 대한 편견으로 그 사람을 온전히 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아끼라고 하는 말이 예전부터 대대로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온 말 인가보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말라는 글을 읽었다.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아서 질투가 쏟아질 것이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어서 무시가 쏟아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라서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내 이야기를 굳이 많이 하지 않는 것. 그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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