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쇠락해가는 구도심의 한쪽 모서리에서 차마 스러지지 못해 간신히 제몸을 지탱만 하고 서있는 구조물에 가깝지만, 내가 다니던 대학의 후문에는 그 당시에는 위용을 뽐내며 당당하게 서 있던 5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1층은 식당이었고, 2층에는 PC방, 3층에는 노래방, 4층은 당구장이었고, 5층에는 커피숍이 있어서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후문을 오며 가며 계속해서 마주치는 그 건물에 중독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힘들었다. 공강은 흘러 넘치고 시간은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돈은 없었던 우리를 그 건물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평일 낮이면 6천원으로 무제한 노래를 부르고, 1시간에 600원씩을 내고 게임을 하고 레포트를 써서 프린트물을 뽑았고, 2500원짜리 밥을 리필 씩이나 해 먹으며 우리는 거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이고, 후식을 내어주며, 놀아주고 과제까지 완성시키는 것이 육아가 아니고 무얼까. 그 때 부른 노래와 그 때 친 공, 그 때 먹은 밥과 그 때 뽑은 프린트물같은 것들이 우리를 거진 키운 게 아닐까 한다.
우리는 그 건물중에서도 자주 3층 노래방에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때문이었다. 나는 노래를 잘 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니 좋아하지 않아서 술기운이 아니라면 내가 주도해서 노래방에 갈 일은 없다. 그러나 집단의 힘은 무서운 것. 각각의 얌전하고 차분한 아이들도 둘 이상 모이면 시너지가 생기고 각자가 일당백의 에너지를 뿜어내 부모나 선생의 넋을 뽑아놓는 것처럼 그 때의 우리도 그랬다. 옆에서 친구가 노래를 하니 덩달아 신나고, 나도 노래를 좋아하는 것같은 착각이 일던 그 때 우리의 나이가 고작 스물, 스물 하나였다.
내 친구는 S.E.S를 좋아했다. 지금 아이돌의 시초였던 1세대 여자아이돌 그룹들이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 춘추전국시대를 이루었다. 들을 노래도 많고, 할 노래도 많았다.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겠지만 친구는 자신이 노래를 잘 하니까 노래하는 걸 좋아했을 것이다. 노래를 좋아하니까 잘 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닐거라고 선후관계를 짐작하는 이유는 친구의 맑고 고운 목소리는 바다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느낌, 세련된 느낌, 소녀 느낌, 언니 느낌 등 다양한 그룹이 선을 보이던 때였는데 친구는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그룹이라 S.E.S를 좋아했을 것이다. 바다처럼 별다른 기교없이 맑고 청아하게 도입부를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내맘을 뺏을 수는 없어. 기회가 네겐 없었을 거야. 그땐 누군갈 난 너무 좋아했었어."
수많은 S.E.S.의 노래들을 섭렵한 그녀였고 실제 S.E.S가 부르는 것보다 친구가 부르는 것을 더 많이 들어온 나였지만 이 노래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마음은 자기 것이라 아무도 뺏을 수는 없다고 처음부터 공언했음에도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너드미 폴폴 풍기는 남자아이처럼 그 노래에게인지, 내 친구에게인지, S.E.S.에게 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번에 내마음을 빼앗겼다. 왜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날로 나는 그 노래 <Wish>가 수록되었던 S.E.S.의 4집 앨범을 샀고, 매일 그 노래를 들으며 학교를 오갔다. 그 후 갑작스레 그 친구가 유학을 가고, 남겨진 나는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취업을 하고, 출산을 했다. 그동안 점차로 그 노래가 내게 끼치는 입김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아직도 '탑골'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내 멜론의 플레이리스트에 그 노래는 있다. 가끔 옛날 노래가 생각나는 날이면 내 귀에 가장 처음 들려오는 노래, 그정도의 영향력으로 그 노래는 평생을 잊지않을 기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 우리가 비로소 대학이라는 울타리까지 벗어나서 산넘고, 물건너는 동안 산전과 수전을 겪고 공중전을 하는 동안에 노래는 잊혔어도, 그걸 들었던 내 첫느낌과 그 시절 우리가 거듭하던 화해와 반목, 우정과 성장, 좌절과 환희를 나는 잊지 못한다.
최근에 만난 친구에게 나는 <꿈을 모아서> 도 아니고 <I'm your girl> 도 아니고 <Oh, my love> 도 아닌 <Wish> 라는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와, 그 때 그 노래를 부르며 세상 반짝이던 그녀에 대해서 얘길한 적이 있다. 나에게 그 노래는 한 시절이었노라고, 그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하얀 얼굴로 말갛게 노래하던 네가 떠올랐노라고. 친구는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즐겨부르던 노래들과 S.E.S.의 역사와 앨범들에 대해 거의 꿰듯 기억하는 그녀는 그 노래에 대한 기억만큼은 댕강 잘려나간 앞머리처럼 마치 원래 없던 일인듯 의아해했다. 나에게 그렇게나 특별하고 애틋하던 그 노래가 그녀에게는 수없이 부르던 S.E.S의 많은 노래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거였다. 그녀와의 우정, 우리의 호우시절과 추억, 그 중의 클라이맥스이자 하이라이트로 꼽던 그 시절의 기억이 뚜껑을 여는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액체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바람이 되어 날아가는 걸 난 봤다. 얘길 꺼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날아가버릴 가능성만을 가진 채로 병안에 고이 접어 간직되어 있었을까.
나는 마치 한 시절을 도둑맞은 듯 아득하고 황망한 기분이 되었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짝사랑했던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잠깐 다녔던 학원에서 본 아이였는데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학원엘 다녔었다. 나보다 한정거장 늦게 버스에 오르던 그 아이는 '텍스리버스' 청바지를 입고 항상 이어폰을 꽂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올라타 기사님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서 미동도 없이 학원까지 이동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를 한 적도 없고, 내가 본 건 대부분 그 아이의 뒤통수였는데도 나는 그 애와 (나홀로) 헤어져 학원을 끊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입을 준비하는 동안 해사하게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을 자주 상상했다.
내가 용기를 낸 건, 그 때 '아이러브스쿨' 이라는 들불처럼 번지던 인맥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같은 것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어서 컴퓨터에 접속을 해야 했고, 바로 그 점이 즉각적으로 그 아이의 반응을 살펴볼 수 없겠지, 라는 곳으로 내 생각을 이끌며 왠지 모를 용기를 주었다. 아마도 연락이 없다면, 그건 그 아이가 확인을 못해서일거야, 라는 자기위안이 가능했기에 더 큰 용기를 얻은 것도 같다. 연락이 온 건, 내가 쪽지를 보내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개강을 며칠 앞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얇게 입고 우리 동네의 익숙한 놀이터에서 짧아지는 해를 실감할 수 있을 즈음의 시간대에 만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그 후 장난스럽게 그 아이를 마치 원래 알던 동네 친구처럼 몇 번 더 보았고, 더이상은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줄 몰랐지만 재수를 하고 있어 나를 뼛속까지 부러워하던(그 때 내 느낌이 그랬다) 그 아이는 그저 까무잡잡하고 가녀린 체형을 가진 그 나잇대의 흔한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당시 자신의 신세에 비춰 자신감이 많이 꺾이고 소극적이던 그 아이가 내가 이미 대학에서 만난 허세와 허풍에 절여져 있던 대학교 1,2 학년 즈음의 남자아이들 보다 멋있어 보일 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철저한 민낯을 보고나서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 때는 추억이니, 나발이니 떠올리기에 하루하루 재미난 것들과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 흐르던 때였고, 그 때의 나는 그 아이를 쉽게 잊었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중학생 시절, 그 아이랑 마주치면 혼자 몰래 얼굴붉히던 나와 고등학교 시절 가끔씩 떠오르던 그 아이를 동시에 떠올리는데 그런 기분들이 어제의 일보다도 생생하게 떠올라서 놀랄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나는 '차라리 안 만났으면 좋았을 것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고 거기에는 봉인된 옛기억과 첫사랑의 얼굴같은 것들, 그러니까 추억에 관련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나갔던 해외여행지의 이국적인 풍경과 거기에 들떴던 나, 처음으로 잡았던 애인의 손에서 느껴지던 온기, 첫직장, 첫월급, 온갖 '첫' 의 타이틀이 붙은 것들은 생경해서 쉽게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 여행지로 돌아간다면 낯선 외국에서의 막막함을 느끼게 될 수도, 생각보다 작고 청결하지도 않은 리조트에 실망할 수도 있다. 다시 맞잡은 첫 애인의 손은 조바심이 느껴지고 축축해 얼른 빼내고 싶은 풋내기의 그것일지 모른다. 기억속에 편집되고 각색되어 저장된 여러가지 추억들도 그렇다. 추억이 추억일 때나 아름답지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맞닥뜨리면 실은 그 때의 우정이나 연애는 성마른 아이들의 치기와 허황된 약속에 다름아닐 수 있다.
애써 과거를 재현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옛날 노래를, 옛날 술집을, 옛날 장소를 마주하면 나는 들뜨고 그립고 마음을 놓는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저어하는 건,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아야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는 걸, 끝끝내는 모르는 게 더 나은 민낯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저 거리를 두고 지켜만 보는, 거기에 내 낭만이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