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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식탁

by garden

나에게 수제비는 여름음식이다. 요즈음의 것들처럼 바지락을 비롯한 해물이 잔뜩 든 게 아니라 무와 대파같은 채소로만 채수를 내고 감자와 양파, 호박과 같이 끓여낸 말간 수제비다. 어른이 되고나서, 누군가가 추운 한 겨울에 뜨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다고 하는 얘길 듣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누군가에게 수제비가 겨울음식일 수도 있는거구나, 했다. 어쩌면 여름음식이 아예 아닐수도 있는 데에 대한 생경함이랄까.



엄마는 시장에서 분이 파근파근 나는 여름의 햇감자를 사다가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엄마가 감자를 깎고 수제비 반죽을 만들던 여름밤을 기억한다. 나와 동생은 땀과 땟국에 절어서 오후 내내 놀다가 아파트 3층의 베란다 밖으로 엄마가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면 그 소리를 시계삼아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에서 옷을 벗고 까치발로 화장실까지 간 뒤 샤워를 했을 것이다. 엄마는 늦게 저물던 해 탓에 길어진 하루의 피로가 내려앉은 얼굴이었지만 나와 동생을 앉혀놓고 수제비 반죽으로 솜씨좋게 토끼며 곰돌이, 강아지나 나비같은 것들을 만들어주셨다. 물올린 냄비 위에는 무와 조각난 감자들이 끓고 있었다. 꼭 감자가 햇감자여서가 아니라 더운 여름에 목이 고장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수제비를 한그릇 먹고나면 가슴의 저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몸이 에너지를 생성해내고 있음이 느껴졌고, 그에 반비례해 마음은 노곤하고 풀어져서 한 그릇을 먹고나면 곧 잠이 쏟아졌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몸의 기를 보전해주는 여름철의 보양식, 그게 내게는 수제비였다. 지금이야 대기업에서 두부도, 콩나물도 사시사철 만들어내고, 각종 양념장이나 간단한 마른 반찬들이며 밀키트까지 흔하지만 그때는 마트에 가도 재료들만 있을 뿐, 만드는 건 거의 가내수공업이었다. 입이 짧고 입까탈이 심해서 어딜가나 '빼싹 곯아있다' 는 어르신들의 평가를 받았던 나에게 그 시절 엄마가 해줄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제철 식재료들 중에 그나마 내가 잘 먹는 음식들 몇 가지나마 더 잘먹을 수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다.




5층짜리 아파트를 벗어나 몇차례의 이사를 다니면서 가을이 시작될 즈음,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함께 소개받은 집에서 생물 오징어를 몇 궤짝씩 주문했다. 내장이며 입을 제거해서 납작해진 오징어는 옥상에서 건조되었다. 그건 몇날 며칠이나 계속 살펴봐줘야 하고, 뒤집어주어야 하는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시도때도 없이 국지성 호우나 소나기가 예고도 없이 내리지만 그때 날씨는 예상치를 빗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을볕에 금세 마른 오징어를 엄마는 식후에 한마리씩 야금 야금 내어주셨다. 나중에 다 크고 나서 그게 몸값도 비싼 반건조 오징어라는 걸 알았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엄마는 종이 상자안에 가득 들어 끝도없이 나오던 대봉감을 꺼내 깨끗하게 씻은 뒤 껍질을 벗겨내고 알이 굵고 실한 것들은 꼬챙이에 꿰었고, 알이 작거나 파과인 것들은 얇게 깎아내어 보자기 위에 깔았다. 추위가 다가오는 속도만큼 바짝 쪼그라든 감들은 겨우내 내 간식인 곶감과 감말랭이가 되었다. 봄에는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지천에 널린 냉이와 쑥을 아빠와 캐러 갔고, 그럴 적이면 그 안에는 두릅이나 엄나무순같은 것도 같이 들어있었지만, 그걸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든 국을 끓이든 아니면 떡을 만들든 그 특유의 향과 맛에는 전혀 적응이 되질 않아서 나는 결국 그 음식들에 마음을 주는 일에는 실패했다. 변하는 계절을 따라 재료를 달리하며 우리집의 끼니를 위한 이 많은 일들이 1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우리집뿐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긴 통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복도에는 옆집에서 말리는 고추나 버섯들, 키우는 강낭콩과 완두콩들, 절여지던 배추같은 것들이 없던 날이 더 드물었다. 도시에 초고층의 아파트가 지어졌지만, 도시생활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생활환경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공장이 아닌 동네의 주변에서 흔하게 먹을 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먹고 자란 나는 엄마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몰랐기 때문에 그 때는 물론이고 훗날 그것들이 귀한 음식이 될 거란 생각은 당연히 못해봤다. 그런 채 나는 여전히 입이 짧았고, 먹는 즐거움이 무언지 모르는 '빼싹 곯아' 작고 마른 어른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마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최종목적인 외래종들처럼 곳곳에 생기고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미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패스트푸드점은 줄지어 생겼었지만 고급스러운 패밀리 레스토랑과 노동력과 재료비를 최대치로 절감해 가격을 낮춘 패스트푸드점은 태생부터 달랐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음식뿐 아니라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은은해서 그런 데서 약속이 있는 날에는 매무새를 다르게 하고 치장을 해 격식을 갖추었다. 그게 음식을 탐하는 게 아니라 그런 문화를 향유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고, 우습게도 고급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착각을 갖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가보지도 못한 호주의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던 오지치즈후라이를, 원래는 프랑스가 기원이라는 몬테 크리스토 샌드위치를 마치 천상계의 음식인듯 섭취했다. 물론 대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가격이라 친구의 생일이나 남자친구와의 기념일같이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었지만 기회만 있으면 그런 '특별한' 곳에서 밥을 먹고 싶어 했다. 덩치가 작아서 남들만큼 많은 양을 먹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때의 나는 식욕도 신진대사도 혈기도 왕성하고 활발할 때라 나는 점심에 투움바 파스타를 먹고, 저녁에는 베이비백립을 먹을 수가 있었다. 내가 입이 짧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던 것이로구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는 그동안 미처 깨어나지 못한 채 웅크려있던 내 미각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소화기관에 무리가 가는 음식들을 먹고 또 먹으며 세상에는 환장하게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화장실을 한 번만 다녀오거나 한껏 부푼 배를 움켜잡고 잠이 들어도 다음날이면 내 몸은 또 그걸 받아들일 준비를 재빠르게 했다.




내 입맛이 먼저 변한건지, 한국사회의 경제질서와 시장환경이 먼저 변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생각이 나서 찾아보면 지근거리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던 레스토랑이 이제 멀리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고 나면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 그런 음식에 일체 식욕이 돋지 않았다. 김삼순이 드라마안에서 비벼먹는 나물에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이 잔뜩 든 비빔밥이 생각났다. 그건 내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건강한 음식을 찾는거였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 머리도 입맛의 근원을 찾는다는 신호였다. 한국에 진출했던 많은 외식업체와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자취를 감출 무렵,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처럼 자극적인 것만을 찾고 탐하던 왕성한 식욕도 점차로 사라졌고, 나는 다시 엄마의 식탁앞으로 소환되었다. 그게 서른 중반 즈음이다.




그 때의 맛은 아니지만 나도 제철을 맞은 꽃게나 새우, 봄나물과 여름과일들로 밥상을 꾸려보려 한다. 어디가 싱싱하다더라, 어딜가면 싸고 좋다더라 하는 소식을 여러 맘카페나 SNS에서 수집하면서 자꾸만 그 시절 수제비 반죽을 하고 등을 둥글게 말고 감을 깎던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가 그 때 내게 먹여주려 했던 건 물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그 때 내가 먹은 건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면서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은 사랑이었다. 계절마다 느껴지던 정취와 함께 떠오르는 재료들, 우리가 다 같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나누는 일화와 에피소드들, 먹을 것 자체가 귀해 먹는 일이 사치였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 같은 것을 나는 함께 먹고 마셨다. 그건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내 입맛의 정처가 되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고도화된 도시의 편의와 생활, 예측할 수 없는 기후와 날씨, 엄마의 발치도 쫓아가지 못하는 나약한 내 생활력같은 것들이 오늘의 밥상을 방해한다. 마음은 있으되 흉내는 낼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다시 옛날 그 엄마의 식탁을 부른다. 지금에 와서 내가 그 때의 수제비를, 감말랭이를, 반건조 오징어를 다시 먹게 된다면 이제 앞으로 다시는 먹어볼 수 없는 게 될테니 좀 더 음미하면서, 꼭꼭 씹어서 먹을 수 있을텐데. 그것들을 손질하며 생겨나던 엄마의 이야기와 동네의 에피소드들을 좀 더 눈반짝이며 들어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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