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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Jul 10. 2024

내옆을 스쳐간 여행의 순간들

길위에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역사

가족여행. 사실 낭만과 추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가족여행이란 실제로 떠나기도 전부터 벌써 피곤해지는 것이다. 4인가족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벌써 먹고싶은 것은 4가지, 가고싶은 곳이 네곳, 우선순위가 4개다. 동선을 짜고 맛집, 취향 등등을 고려해서 넣다보면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네 명이 다 만족스러운 여행이란 사실 환상에 가깝다. 우리집에서 거의 대부분의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나는 여행지에서 ‘내가 다시는 가족여행 오나봐라’ 아니면  ‘여기 친구랑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도 아니면 ‘여기서 혼자 맥주 한 캔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종내는 ’아, 혼자있고 싶다‘ 로 마무리되는 의식의 흐름루틴처럼 반복한다. 넷이 티격태격 투닥투닥 왁자지껄 서로 자기주장 하느라 놓친 경치와 풍경, 음식의 맛과 멋은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게다가 서울사는 나는 충청과 강원권은 기꺼운 마음으로 가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갈때는 나름의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나 올때는 너덜거리는 걸레가 되어 집에 도착하게 된다. 진짜 심호흡하고 큰 마음을 먹어야하는게 또 장거리 여행이란 말이다. 그래서 장거리 여행에서 가족들과 사소한 불화가 생기면 여행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와 막심한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 이후 가들과 국내의 가깝고 먼 곳을 여행다니며 느낀점은, 어떠한 한,순,간,만 있어도 그 여행은 성공한 여행이며, 나는 또 언제 마주칠지 모를 그런 순간들 때문에 잘 끝나나 했지만 결국은 오는길에 다퉈 남편이랑 말안하고 현관문을 열고 돌아와도 잠자리에 누워 여행사진을 들여다보며 웃고 벌써 다음 여행계획을 짜고 있는건지 모른다.


경험상, 내가 갔던 그곳이 핫한 관광지이거나 유명한 맛집일 필요가 없었다. 실패한 여행지도 있었고 끔찍했던 음식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모두 내 가슴속에 들어온 ‘그 찰나’에 자리를 내주며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나의 행복한 순간을 더 짙고 깊게 만들어주는 데 일조했다.


나와 평생을 함께할 내 순간들.

(코로나에 두 번째로 걸려 우울한 오늘의 나, 몸도 머리도 아파서 여행사진을 정리해봅니다 주섬주섬)




남해 이동면의 겨울밤바다


독일마을에서 맥주에 학센하며 반나절의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하늘이 예뻐서 잠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본 밤바다의 풍경이 한줄기 빛처럼 내 마음안에 들어왔다. 때로는 좋은 숙소, 비싼 음식이나 유명한 관광지보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깊게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법이란 걸 이 풍경을 보고 알게 되었다. 꼭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도 이미 내 곁을 거쳐갔거나 지금 머무르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이 밤바다를 보며 잠깐 했던 것 같다. 탁트여 시원한 맛이 없어서 동해바다가 더 좋다던 남편과는 달리, 나는 시선이 머무는 곳곳에 섬과 나무가 걸리는 남해가, 어딘가 사연과 서사가 있어보여 마음에 들었다.






제주 구좌의 봄노을


올해 3월 휴직을 하자마자 엄마와 아이들과 떠났던 일주일간의 제주여행에서 만난 봄노을. 숙소 밖을 나오니 해는 빠르게 기울었고 하늘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이 사진을 찍으면서, 왜인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서울에 올라가면 아이들을 위해 충만한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하루하루를 꽉 채워 보내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송악산 둘레길의 초저녁 가을노을


제주는 갈 때마다 좋은 여행지이고, 내 마음속 원픽이지만, 그동안 제주를 다녀왔던 순간들 중에 단연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11월 중순의 제주, 해질녘의 송악산 둘레길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엄마 아빠와 갔었던 첫 제주 여행에서 압권이었던 순간을 만났는데, 그게 바로 사진속에 담긴 시간이었다. 구름때문에 해가 살짝 가리워져 아쉬웠지만, 하늘은 노을물들고 가을바람에 갈대가 눕는, 그 소리마저도 음악으로 내 마음속에 내려앉던 그 순간, 온힘을 다해 시간이 멈춰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있을 매 순간의 제주여행에 계속해서 함께해줘 엄마아빠. 그런 짧은 순간들은 유한해서 더 아름다운걸까






하동 매암제다원의 물기 가득한 아침


이 여행에서는 3박 내내 비가 왔다. 슬로우시티라던 하동은 모든게 느려서 더없이 정갈하고 단정했지만 아이들은 심심했고 나에게도 무언가 1g 정도는 필요했던 지루한 여행이었다. 손발이 묶인 우리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비를 뚫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 뿐이었다. 여행의 마지막날 일찍 집에갈 심산으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집에가기 전에 들른 하동의 찻집이 매암제다원이었다. 더운 여름이었고, 습한 날씨였지만 잠깐 비가 멎은 아침의 차밭. 별 기대는 없었지만, 이곳의 구조는 매표를 하고 다기를 받아들면 뒤에 펼쳐진 너른 차밭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도착하고 주차를 할 때만해도 내 기분은 흐림 자체였다. 하지만 차밭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던 그 순간, 나를 감싸던 습한 공기와 눈과 마음이 정화되던 차밭의 풍경, 흙냄새와 섞여 찻잎이 자아내던 푸릇한 여름 내음, 잊지 못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이었다. 나는 서울 사람이었고, 서울로 떠난 여행이었는데도 삼청동에서 길을 헤맸고, 유명하다던 떡볶이 대신 더위에 허덕이다가 홍합비빔밥을 먹게되었었다. 나중에 그 집 홍합밥으로 유명한 곳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아이들과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돌며 우아하고 사뿐사뿐 서울 시내를 누비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약해둔 유명 레스토랑에서 당시 10개월 남짓이던 둘째가 기저귀 넘칠 정도로 끙아를 했을 뿐이고, 곳곳에 비를 뿌리다가도 무서운 기세로 달아오르는 공기때문에 아이들이랑은 잠깐을 이동하는 것도 버거웠다. 이틀동안 이건 뭐, 장소만 옮긴 육아라며, 일년치 땀을 이번 여행에서 다 흘렸다며 투덜대다 끝난 여행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짐가방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 캔 따서 여행지에서 사온 굿즈들을 보면서 나는 여행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게된다. 그건 바로 여행지에서 일상으로 돌아와서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까지도 여행의 일부이자 여행이 내게주는 선물이라는 것. 여행을 위한 일상도 설레지만, 일상을 위한 여행도 때로는 큰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이때 느꼈고, 결론적으로 더욱 더 여행에 집착하게 되는데,,,,,,,, ㅋㅋㅋ






양양 양리단길 어느 담장의 능소화


이 여행에서도 2박내내 비가 왔다. 3일째 집에 돌아가는 날 보여준 맑은 하늘은 정말, 킹받았지만 맑은 날씨 그걸 모두 덮고 남을 행복을 주는데 어째.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핀 어느 집의 담장을 보며, 날씨요정도 여행을 자주 다니다보면 매번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게됐다. 1년에 한두번 여행을 다니면서 비가 안올 때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두어달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나게 되면 비를 만나는 확률은 높아지고, 그건 말그대로 확률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을 때 여행지에서 비를 만나면 하늘을 원망하고 여행을 망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자주 다니고 밥먹듯이 비를 만나고 보니 알게된 사실, 비오는 숙소에서 아이들은 티비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부부, 혹은 엄마 아빠랑 카페의 고급커피가 아니라 믹스를 마시며 여유를 누리는 그 시간들도 여행의 일부라는 것, 우리 가족의 역사는 사실 이런 순간에 만들어진다는 것. 비가 오는 여행도 충분히 누릴 줄 알게 되었다.





고성 설악산자락에서의 독서


이때였다. 내가 여행에 집착(?)하게 된 계기가 된 첫여행. 때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2019년초. 이미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 방학이라서 집에 있었는데, 전년도 12월부터 시작된 겨울방학은 다음학년 새학기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코로나 창궐 초기는 정말 바깥에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외출을 통제하던 시기였다. 거기다가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뉴스들은 공포 그 자체라서 나는 아이 둘과 집에 갇힌 채로 사람이 이러다가 미치는 거구나, 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해 5월 28일 아이들은 드디어 반쪽이 뭐야, 일주일에 1번 1/5쪽짜리 등교를 시작했고, 이 여행은 6월 1일에 떠났다. 2019년 6월 1일. 나의 숨통이 되어준 여행었다. 그동안 나에게 여행이란 계획부터 지치는 것, 귀찮은 것, 돈주고 사서 고생하는 것, 이었다면 이 여행이후 나는 1년 365일을 여행다닐 생각, 놀러다닐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좋던 여행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는 한 장면은, 숙소의 산책로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던 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던 작가의 책을 읽던 초여름 저녁이다. 조금 거창하게 얘기하면 저 순간 나는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위 사진에 있는 여행지 중 몇 군데는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재차 방문한 곳이 있다. 하지만 그 때 느껴지던 그만큼의 감흥은 아니었고, 그 찰나의 순간들은 재연되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순간, 은 그렇게 갑작스레 예고없이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온우주가 나만을 위해 정성껏 모든 상황을 빚어놓고 그곳에 나를 초대한 순간들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에는 모두 가족이 함께했다. 좋든 싫든 그들이 함께였다.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가족이니까 유명한 여행지를 같이 놀러가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길위에서 역사와 이야기를 쌓아가는, 다녀왔으니 가족이 되는, 그런 사이들이다. 코로나 3일차로 이제 조금 정신을 차린 나,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러 이번주 금요일에는 속초로 떠난다.  어떤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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