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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Jan 30. 2023

성장주사를 아시나요?

에버랜드 큐패스와 성장주사의 공통점에 관하여.


나는 옷순이다.

옷순이라면 당연한 수순인,

옷수집, 옷쇼핑, 옷정리, 옷분석, 모든 걸 좋아한다.

내가 옷순이임을 고백하는 이유는,

옷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젤번천, 케이트모스 못지않으나

그렇지 못한 몸매 때문에 좌절을 맛본, 

그런 억울한 심경을 갖고 살아온

난쟁이 똥자루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잘못 낳아주셨을망정, 잘 길러주신 덕분에,

청소년기에 작은 키로 인한 자존감에 스크래치

뭐 이런 건 단 한 번도 못 느껴본 고개 빳빳이 든 콧대 높은 똥자루였지만, 성인이 된 후 옷에 눈을 뜨면서 항상 나의 팔과 다리가 불만이었던, 그런 똥자루.

이런 이유로

아마도 내 여생에서 옷이 나를 버 수는 없을테니

내가 옷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극복하지 못한 채로 평생을 갖고 가게 될 내 콤플렉스,

그게 바로 내 키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쪼꼬미였던 우리 첫째.

2.76kg으로 작게 태어나서 꾸준히 작았다.

우리 엄마말씀이 돌 크듯이 큰다고.

요정이었기 때문에 요정인 이유만으로 나에게 기쁨을 주던

시절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길었지만,

사실 요정시절이 절대적으로 길지는 않다.


생후 4개월 요정시절




두돌


세돌. 얼마나 안크는지 같은 드레스를 3년간 입힐 수 있었다


필연적으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는 요정들이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5세,

유치원 친구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늘 한두 살 어린 동생처럼 보이던 요정 첫째의 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치로 나타내자면,

영유아 검진에서 키가 항상 10%대 언저리였다.

그때부터 성장클리닉엘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너에게만은 나의 키를 물려주지 않으리라, 요런 생각이었다.



6세 초반부터 10까지,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며 추적관찰을 시작했다.

처음 병원엘 방문하면 일단 뼈나이 측정부터 시작을 하는데, 처음 6세방문했을 때 첫째는 다른 친구들보다 2년 반 가량 뼈나이가 어렸고, 특별히 해줄 것이 없었다.

그 후로 만약에 갑자기 성장이 빨라지거나, 살이 찌거나, 성조숙증같이 무언가 몸 안에서 다른 신호를 보내올 때,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꾸준히 병원만 다녔다.


그러다가 3학년 2학기 무렵,

뼈나이가 빠른 속도로 친구들을 따라잡더니 4학년 초, 

키가 23%까지 치고 올라가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조숙증 의심 정황(?)은 전혀 없었지만

갑자기 성장속도가 무척 빨라져서 성장판이 생각보다

빨리 닫힐것 같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 정도이면 키가 표준치로 클 것이고, 이 속도를 유지한다고 봤을 때, 선생님이 예상하신 첫째의 최종 키는

158cm~162cm 사이였다.



여기서 고민,

나는 이 정도 키면 대한민국 표준으로서 딱 괜찮을 것 같은데

남편은 더 키워주고 싶다고 한다. 지독헌 냥반.

남편의 설득에 생각해 보니,

이 아이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 지금 내 앞에 와준 보물 같은 존재인데 이 아이에게

최선의 것들을 해줄 의무가 나한테는 있는거였다.


자기피알 시대니,

외모도 경쟁력이니,

요새은 키도 스펙이니

이런 세기말 자기관리의 멘트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빼려다가도, 이게 세기말 멘트라 요새 언급도 안하는 이유는

이제사 두말 할 것도 없는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하여간,

내얘기는 첫째에게 성장주사를 놔주기로 결심했다는 걸

길고 그럴싸게 포장한거라는 말이다.












처음 주사를 시작하던 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요 주사는

부모가 매일밤 아이에게 놔주어야 하는 고된 노력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금액도 사실 무시할 만큼은 아니라서

부담되는 면이 있고,

효과에 대한 반신반의로 시작하는 거라

무언가 목표를 야심 차게 세우면서 개운하게 시작되는 느낌이 아니라,

흠,

좀,,

이런 느낌이 분명히 있다.





보관은 냉장고.



여기는 제주도인데,

여행 갈 때도 아이스팩이 꽁꽁 싸서

잊지 않고 챙긴다. 요게 제일 번거롭고 귀찮은 듯.



여러 회사의 제품이 시중에 나와있는데,

우리는 병원선생님의 추천으로

주삿바늘이 가장 짧고 가늘어 통증과 공포가 가장 덜하다는

LG화학의 유트로핀펜으로 선택했다.



이렇게

매일밤 맞은 주사가 한 개, 두 개, 열개,,,

계속 쌓여가고,



지난 2022년 4월 132cm 키로 시작했던 성장주사와

그간의 기록.

8개월 차가 된 지금 9cm가 컸는데,

처음 25.3%이던 백분위

현재 51.3%가 된 놀라운 기적의 미라클.

 


키가 빠른 속도로 크는 것에 대해서 부모로서 나는 참 기쁘지만,

그런 부모의 기쁨과는 별개로 참,,, 

요즘 아이들의 삶과 생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처음 에버랜드에서 큐패스라는 것이 나와서

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목도했을 때,

나는 어른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엄마 왜 쟤네는 줄을 안서?"라는 얘기를 하며 무엇을 보았을까.

엄마와 아빠가 회사에 나가서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아이들이,

마트나 편의점에서 현금이 아닌 카드로 거래를 하는 걸 봤을 때 무엇을 느끼는 걸까.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첫째에게 이걸 사야 되는 이유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우리 첫째의 말마따나 ‘카드로 사면되는데’ 무엇이 그리 대수일까.



노동의 대가와 돈의 실물, 력의 보상

이런 중요한 가치들이 무시당하는 사회에서

키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게,

굉장한 도덕률을 그르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해보지만, 나는 논객이 아니라 부모니까,

일단은 오늘도 내일도 주사를 놓을 것이다.

내가 부모로서 말고

이 사회와 시대의 선배로 아이에게 가르쳐야할 숙제를

주사와 함께 받았다는 생각이.


렇지만 딸아,

이 모순의 극치 자기변명의 끝판왕 엄마는 네가

일단은 어떤 옷이든 예쁘게 소화할 긴 팔다리를 가지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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