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에서는 유독 ‘시간’의 개념이 중요하게 쓰인다. 야구나 탁구처럼 시간제한없이 정해진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 경기도 있긴하지만 농구나 핸드볼처럼 정해진 시간내에 얼마만큼의 득점을 하는가로 승패를 가르는 경기도 많다. 또 육상이나 수영처럼 시간의 기록이 선수가 가진 실력의 다른말인 경우도 있으니 스포츠에서 시간은 선수의 역량과 능력과 엇비슷한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스포츠에서 쓰인다는 ‘쓰레기 시간(garbage time)’ 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경기 중 양 팀간 점수 차가 너무 벌어져 도저히 승부를 뒤집을 수 없게 됐을 때의 남은 시간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때 그래서 보통 양 팀 감독은 주전을 빼 쉬게 하고 후보를 내보내게 되는 데 그럴 때는 지고 있는 팀은 더 쉽게 점수를 허용해 대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순간이다.
분명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는 과정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 강조해서 배워왔다. ‘졌잘싸’라는 말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고, 노력도 격려와 칭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계산적이라 노력이나 과정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고, 각본없는 드라마라던 스포츠에 이런 결과론적인 논리가 개입되는 건 좀 슬프다. 그어떤 분야보다 피, 땀, 눈물. 그러니까 과정이나 노력에 큰 가치가 있는 게 스포츠 아니던가.
요즘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있다. 책에 보면 어떤 메이저리그 투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기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쓰레기 시간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리다. 져보는 시간도 나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메이저리거에게 경기에 임하는 동안만큼 ‘쓰레기’ 라고 칭할만한 가치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내가 순진해서인지, 결과를 앞세울 정도로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은 메이저리그 투수의 말을 믿고 싶다. 실패가 이미 확정적이라 하더라도, 불보듯 뻔한 패배가 눈앞에 있더라도 순전히 노력을 위한 노력도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이기는 팀과 선수의 시간은 귀하고 지는 쪽의 시간이라고 귀하지 않은 법은 없다. 세상은 1등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