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찰하다

나의 한 단어 20-365

by 푸른킴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




1.

뭔가 해내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

급하지도 않은 청소 하느라 반나절을 보내는 것 같은 모습.


첫째,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괜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둘째,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느닷없이

원치 않는 일이 끼어들어 마음을 깨작깨작하는 일

마음에 내키지 않은 일로 마음이 미적미적,

괜히 애꿎은 물건만 들었다 놨다 하는 모양.


2.

서재 책상에 앉으면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들이 나를 반긴다.
민트는 쑥처럼 잘 자라서
따고 말리고 끓여 마시기 끊이지 않고
아이비는 줄기와 뿌리가 굵어지고
잎은 아기 손바닥 정도 새로 나고 자라 사방을 덮는다
빈카 미노르는 넝쿨처럼
뿌리 뻗고 뻗어 한 꽃 지면 새 꽃봉오리들 살아난다.
서재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이 여린 식물부터 먼저 눈에 들어오면,
물 주고, 다듬고, 흙 북돋고, 화분을 갈아주는 일로
시간을 훌쩍 흘려보낼 때가 있다.


3.

‘해찰하다’


썩 내키지 않은 뜻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삶에서 쓰지 않아 조용히 스러진 말이다.

하지만,

말은 안 쓰더라도 몸에 밴 채 남아있는 습관일 수 있다.

살아가다 자연스럽게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

책상에 앉아 괜히 서랍, 책 정리하다 반나절을 보내는 일 다반사고,

중요한 일이 백척간두라도 괜히 모른 척하며,

언제 갈지 모르는 여행 일정 상상하는 일도 가끔 있지 않은가.


나의 일이 코앞인데,

누군가 손 내미는 일을 붙잡아주고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는 일도 그렇다.

아무 이유 없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겨우겨우 힘내서 해내 버린 때도 있지 않은가.

공부하다 딴짓하고, 딴짓하다 엉뚱해지고,

그러다 소중한 발견에 환호하는 일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4.

‘해찰하다’


삶은 가끔 원하지 않은 일,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일 속에서도

꽃 같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미적미적하거나 들었다 놨다 하거나 툴툴거리면서

허비하는 듯한 그 시간 어딘가에도

내가 누리고 싶은 그 작은 행복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괜한 덕담에

맥없이 휘둘려 살기도 하고,

‘돈을 낭비하고 싶다’라는 괜한 한담에 갇혀

매일 안쓰럽게 살아내야 하기도 하지만,


이 엉뚱한 ‘해찰’ 가득한 시대를 살아내는 동안만이라도
시간을 내 인생에서 마음껏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소소한 즐거움을

어린아이처럼

당장 한껏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 08화   매실매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