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잔하다

나의 한 단어 25-365

by 푸른킴

아무 것도 없는 듯 공허하다.

무엇을 잃은 듯 서운하다.

잔잔하고 한가하다.


1,

국립표준국어대사전(인터넷판)에선 바로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있는 단어다.

물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인 것은 분명하다.


‘하잔하다’


한반도 남쪽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이 단어는 생활 속에 건재한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한 느낌이 든다.’
또는 ‘무엇을 잃은 듯이 서운한 느낌이 있다.’


또, 누군가는

‘잔잔하고 한가하다’라고 가볍게 풀어쓴다.

이렇게 어느 지역은 비관과 부정이 담긴 허구로,

또 다른 지역은 여유 있는 긍정을 담으려 했다.


2

‘하잔하다’

쓰인 자음과 모음을 들여다보면

어떤 비어있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

‘하잔하다’를 천천히 살펴보고 있으니

‘마른 잎 다시 살아나’듯

문득 이 시를 떠올려준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중략>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1941.9>

그렇다. 잃었으면 찾으려 하면 되고

찾았으면 제자리에 두는 것이 인지상정.


3.

‘하잔하다’

허구의 뜻, ‘공허와 허무’

‘한가와 잔잔함’이 어우러져

쓸쓸한 풍요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우리 사전에선

‘하잔하다’를 찾아가면

곧바로 ‘한잔하다’로 바꿔 안내한다.

그래도 신기하다.


말은 사라진 것 같은데

어느새 뜻은 남아 그 단어가 살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니 말이다.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져도 죽은 것이 아니다.

삶, 어딘가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4.

‘하잔하다’

나는 이 단어의 뜻을

오늘 다시 새긴다.

“비어있는 채라도 괜찮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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