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책, 그리고 환대를 생각하다
산책, 몸과 마음이 걷는 길
내가 머무는 서재 건너편엔 오르기 좋은 산길이 있다. 이 길이, 오래된 친구가 문득 떠오르는 것처럼 이유 없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주저하지 않고 가벼운 차림으로 서재를 나선다. 좁고 가파른 내리막길, 여름 내내 더위에 지친 풀잎들이 아직 길 가장자리에 파릇하게 살아있다. 이 협착한 길 끝에서 왼편으로 틀면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온다. 물소리조차 드물지만, 작은 개천 하나가 묵묵히 흐른다. 노래 한 곡 길이쯤 걸으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급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길. 지난번 연초록이던 숲은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가득하고, 그 안으로 내 몸이 스며드는 느낌이 좋다.
익숙한 길, 그러나 새로운 감각
산길에 오르면 처음엔 가볍게 걸으려 했던 마음이 바람과 물소리에 더욱 풀려버린다. 자연스레 발걸음은 산머리로 향한다. 그 길은 어제와 같고, 지난주와 다르지 않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이어지는 길을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산머리에 다다른다. 그곳에 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 벤치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가 숲에 갇힌 섬처럼 보인다. 그사이에 가볍게 바람이 분다. 햇볕은 따뜻하면서 점점 강렬해진다. 그것이 ‘하산하라’라는 묵묵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다시 그 길을 따라 내려온다.
길은 돌아올 때 새롭다
산책의 절정은 오히려 돌아올 때다. 처음엔 몰랐던 길의 생김새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귀환의 리듬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기쁨이라 할만하다. 오르막과 내리막, 걷고 멈춤의 반복 속에서 생기는 출렁임도 새롭다. 이런 리듬은 삶이 간직한 경이로움과 닮았다. 같은 길을 걷지만, 마음은 어제와 다르고, 풍경은 오늘의 나를 따라 달라진다. 산책은 단지 걸음이 아니라, 새롭고 낯선 감각과 의미의 축적이다.
책과 함께 걷는 존재의 길
길을 걷거나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습관처럼 책 한 권을 떠올리거나 잠시 쉬면서 읽는다. 길을 걸으면서 책을 반드시 직접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은 그저 들고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되는 사물 중의 하나다. 그래서 책을 떠올리는 것도 의미 있다. 단지 눈앞의 활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여정을 동반하는 무형의 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기회를 만들어 길 어딘가에서 책을 읽는다면, 책은 우리가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천천히 스며들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을 걷고, 책을 들고, 어떤 구절과 마주칠 때면 문득 ‘타자를 위한 거룩한 허비’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길 위에서 떠오른 편의점과 교회의 풍경
길을 걸으면서 언젠가 읽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다시 생각했다. 작품 속 편의점은 현대 문명사회의 서민적 상징이다. 반짝이는 불빛, 정돈된 선반. 다양한 물건들이 잘 채워져 있으면서도 가끔 정작 꼭 필요한 물건은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편의점은 이런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뜻밖의 ‘환대’를 주고받는 풍경이 살갑게 펼쳐진다. 물건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다움이 진열된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 없이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불편한 교회, 가능한 상상인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숱한 교회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불편한 편의점이 교회와 같다면, ‘불편한 교회’는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 교회가, 스스로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편의점이 그러했듯, 교회도 편리함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건물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불편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관계적 불편함’이 더 심각하다. 사이가 깊어질수록 말 하나에 더 깊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다른 이들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는 일도 어려워지고 있다. 괜한 오해가 빈번해진다. 이런 문제는 교회 안, 교회와 사회 사이에 경계 짓기에서 기인하고, 모두를 향한 환대의 언어가 살아있지 못해 일어나는 것일 수 있다. 사실, 건물의 불편함은 따뜻한 공동체성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편한 교회’는 차라리 시대의 아픔을 껴안고, 경계 밖의 타자에게 열려 있는 교회 본연의 의미를 실현하는 일일 수도 있다. 소설 속 편의점처럼 불편해도 환대하는 교회야말로 진정한 신학적 상상력이 발휘되어 성취되는 토포스일 것이다. 만약 문학이 이런 상상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삶이 이 세계를 더욱 다독이는 헤세드로 인도하는 작은 문이 될 것이다.
산책과 책, 그리고 환대
9월이다. 나는 여름내 쉬었던 걷기를 다시 시작한다. 오르고 멀리 걸으며 나를 조망하는 의식을 재개한다. 이 길에서 책을 들고, 문학을 읽는다. 그것은 내 일상의 기도이고, 나를 내 바깥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가는 ‘환대 리듬’이다. 이 산책환상(山冊歡想)으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꼭 성취될 계절의 속 깊은 꿈을 내 속에 꾹 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