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록에 대한 소담
고요함 속의 잠언, 표화은독 ― 역사 기록의 본질과 역사가의 세계관
순례자의 쉼터에서 피정했다. 햇살 사이로 안개가 자욱한 아침, 별이 반짝이는 밤이 좋았다. 묵우(黙雨) 같은 햇살과 별빛은 소리 없이 고요했다. 힘쓰지 않아도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졌다. 부디 올가을은 모든 이들의 삶이 아픈 상처 없이 유연하게, 평화롭게 흘러가기를 기대한다.
먼 산에 걸린 아침 안개를 바라보다가 떠오른 음식이 있다. 그 자욱한 풍경에 어울려 손수 만들어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던 기억을 꺼냈다.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 장면은 여러 해가 지나도 이제 막 일어난 듯 선명하다. 옛 기록을 뒤적여 보니, 그 음식을 만들며 히브리 잠언 한 구절을 읽었다는 메모도 남아 있었다. 성서의 지혜문학은 이 점을 오래전에 간파한 것이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잠 23:6).
다시 히브리 문자를 풀어쓰면 아래와 같다
먹으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눈에 악을 공급하는 음식에 대해서
몸이 솔깃하여 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진수성찬에
길 위에서 이 구절을 암송하다가 생각이 미쳤다.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독을 품은 음식, 곧 표화은독(表花隱毒). 역사 기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겉은 사실을 담은 듯 보이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기록자의 의도와 세계관이 스며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가치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역사가의 성찰과 독자의 비판적 검증에 달려 있다. 역사를 묻는 일은 곧 “어떤 음식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망각과 편향 ― 이중의 위협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망각에 맞서는 인간의 집요한 저항이다. 기록은 기억과 망각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흔적이며, 사라지지 않으려는 기억의 고집스러운 생존이다. 인간은 유한하여 죽음과 함께 기억도 소멸하지만, 기록은 그 어둠을 밀어내는 작은 불빛으로 남는다.
그러나 기록은 언제나 순수하게 남아 있지 않다. 기록자는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의도하든 아니든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렇게 기록은 필연적으로 편향을 내포한다. 따라서 역사는 망각의 어둠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편향의 왜곡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역사가의 책무는 자의적 관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놓인 맥락과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성(多聲)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속성과 해석의 조건
역사 기록이 진정성을 지니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기억의 정확성: 개인이나 공동체의 기억이 왜곡 없이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니라 실제 사건과 최대한 일치하려는 노력이다. 정확성이 흔들릴 때, 역사는 신화나 전설로 변질되기 쉽다.
기록의 객관성: 역사가의 주관적 시각이 개입하더라도, 그것이 사실 자체를 지우지 않도록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문헌, 유물, 증언과 같은 증거들은 객관성을 보완하며, 이는 학문적 윤리의 핵심이다.
해석의 타당성: 기록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시대와 독자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읽힌다. 타당한 해석은 임의적 재단이 아니라 사건과 기록을 오늘의 맥락과 연결한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역사가–역사 기록–체험자는 삼면일체를 이루어 역사의 진정성을 지켜낼 수 있다.
조작과 은닉의 위협
역사를 전진시키는 힘은 사실의 기억, 기록의 정당성,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조작되거나 은닉된다면 그 역사는 정당성을 잃는다. 그때 역사의 기록은 진실을 담은 밥상이 아니라, 겉만 화려한 식탁으로 전락한다. 빛나는 듯 보이나 속은 독을 머금은 음식이다.
그런 기록은 잠언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눈에 악을 심어주고, 진실을 가리는 덫이 된다. 더 나아가 세계를 왜곡된 렌즈로만 보게 한다. 결국 공동체 자체를 병들게 만든다. 따라서 역사는 조작과 은닉의 악의 잔기술과 싸우는 비판적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사회적 사례와 현재성
오늘날의 현실은 역사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권력에 의해 다시 쓰이고 재편집된다. 대표적인 예가 교과서 왜곡이다. 식민지 시대의 강제동원이 ‘징용’으로, 저항 운동이 ‘폭동’으로 바뀌는 순간, 기억은 의도적으로 변형되고 사실은 삭제된다. 이러한 왜곡은 단순한 단어 문제가 아니라, 집단 기억 전체를 뒤흔드는 행위다.
언론 역시 이 과정에 깊이 개입한다. “양쪽 의견이 있다”는 식의 양비론은 사실과 왜곡을 동등하게 취급하며, 권력이 원하는 서사를 자연스러운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실제 역사보다 편향된 해석을 진실처럼 떠받든다.
이처럼 정치적 조작과 언론의 프레임은 망각을 촉진하고 편향을 제도화한다. 그 결과 역사는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기보다, 악의 꽃상처럼 꾸며져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가의 가치가 빛난다. 그의 세계관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이유다. 역사가와 해석자의 임무는 단순 기록이 아니라, 사실을 증언하고 현재와 이어지는 영속성을 드러내며, 그 기억을 공동체에 바르게 전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상과 생명의 양식
왜곡된 역사와 언론의 조작은 겉은 화려하지만, 기억과 기록을 잠식하여 생명을 지운 자리에 허상만을 꽃처럼 피우다가 속절없이 져버린다. 반대로 고통스럽더라도 사실을 증언하고 기억을 지켜내려는 행위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의 양식이다. 진실을 붙잡는 것은 때로 쓰디쓴 빵처럼 보일지라도, 그것만이 인간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가 차려놓은 표화은독의 밥상을 과감히 물리치고, 진리와 생명의 식탁에 참여해야 한다. 역사는 역사가와 기록, 그리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는 체험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증언이다. 그 증언 위에서만 역사는 살아남고, 진리의 가치는 오늘을 비추는 빛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