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의 산문집 『슬픔의 힘을 믿는다』(교양인 2020),
ㅡ“슬픔을, 삶에 대한 경이로운 위로로 수용하는 태도”
슬픔이라는 현실 노래
책을 덮었다. 헨릭 고레츠키의 ‘슬픈 노래의 교향곡’이 낮고 묵직하게 흐른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삶의 심연에 스며드는 강인한 힘으로 남는다.
지난한 여름의 끝을 지나, 결실의 계절, 10월을 맞는다. 여느 해라면 따뜻하고 넉넉한 가을이겠지만, 갈수록 버텨내야 할 힘을 어디서든 끌어내야 하는 계절이다. 세계는 ‘하늘의 소망을 간직한 채 땅을 딛는 발을 버티며’ 인내하라고 재촉한다. 고도의 문명은 고난의 강도를 더해간다는 뜻이다. 설령 하늘에 속했다 해도 나는 여전히 ‘땅의 사람,’ 하비루이기도 하다. 따뜻한 위로가 절실하다. 나라의 구휼미가 다시 사람의 위로로 환생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누가 누구를 위로할만한 여건이랄 수 없는 고통이다. 보이지 않는 힘의 위협은 생각보다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다정한 위로는 외면할 수 없다. 고금을 막론하고 위로는 두려움에 저항할만한 유력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위로는 본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터를 두고 있다. 그 시작점에 인간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문학이 있다. 문학은 인간을 포용하는 신의 헤세드(사랑)를 언어로 번역한 행위다. 그러니 신학은 문학이며, 문학은 곧 인간학이다.
정치하게 말하자면, 신학은 문학이며, 인간학일 수밖에 없다. 신이 허락해 준 은총이다. 그러니 ‘땅의 사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행동은 신에 대한 인간의 예의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을 포용하는 희생을 보여주었으니 인간 역시 타인을 수용하는 수고를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문학으로 내밀하게 표현한 것이 소설가 정찬의 산문집이다.
슬픔은 인간과 세계의 구조적 조건
소설가 정찬이 출판한 첫 산문집 『슬픔의 힘을 믿는다』(교양인 2020)라는, 그가 밝힌 대로, 그의 소설『슬픔의 노래』(1995, 조선일보사)에 잇대어 있다. 이 소설의 창작 동기와 배경은 2차 대전 최고 피해국인 폴란드의 음악가 고레츠기 인터뷰와 관련 있는 일화다. (참고 “제2부 슬픔의 힘을 믿는다” 중에서 ‘슬픔의 강변에 서서, 101-108) 이 책은 ‘슬픔’을 중심어로 삼은 하나의 문학적 해석학이다. 그는 슬픔을 단순한 정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구조적 조건으로 탐색한다.
이 글들은 대체로 2016~2017년 즈음에 발표한 것들이다. 시차를 두고 연재되었던 글들을 재편집했으니 대체로 한 논지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평소 자기 세계관을 일관되게 피력했기에 대체로 글 상호 간 연속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목차에 따르면, 전체 4부에 걸쳐 54개의 글이 실렸다. 책 제목과 관련해서 가장 중심에 놓인 글은 2부 ‘슬픔의 힘을 믿는다’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기본 생각을 먼저 읽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2부를 먼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1, 3, 4부는 2부를 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연재라는 특성상 반복되는 소재, 유사한 이야기가 징검다리처럼 나열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 전체에서 그런 특징은 오히려 작가가 가진 세계인식이 일관된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슬픔의 사회성
앞서 말했듯이 조금 폭넓게 논지를 찾아본다면, ‘슬픔의 힘을 믿는다’ 일 것이다. 부연하면, ‘슬픔’은 보편성을 갖는다. 인간을 향해 누구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이유 없이 발현한다. 원인과 이유를 찾는 일은 가볍지 않다. 시도할 수 없지는 않지만,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하지만 ‘슬픔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은 가능하다.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선 ‘슬픔’이 나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또한, 타인도 슬픔에 직면해 있다는 점도 기억한다. 세계에는 슬픔이 항존 하고, 그 안에 슬퍼하는 자들은 상존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인간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인간 안에는 슬픔이 깊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슬픔은 그저 극복 대상은 아니다. 슬픔은 함께 가는 것이다. 나의 슬픔을 덜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짓누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한편, 슬픔은 공감이 필연이다. 이때, 비로소 슬픔은 그 자체로 삶의 토대를 굳게 하는 기쁨이며, 희망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역설이지만, 적절한 슬픔과 함께 살아갈 때, 오히려 그 슬픔은 희망의 전조가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강건하게 지켜내는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일컬어 ‘슬픔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있다. 슬픔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정찬의 문학은 슬픔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슬픔의 사회에 대한 문학적 책임
구체적으로 보면, 이 글들은 연대와 상관없이 선별하고 배열했기에 그 목차를 보면, 편집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듯하다. 독자의 글을 기고한 정희진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글은 ‘줄거리의 소비’가 아니라 ‘생각하는 노동’을 요구한다.”
이 표현이 소설가 정찬에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저자를 가장 함축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평가에 근거하여 이 산문집을 다시 보면, 독자에게는 가벼운 읽기일 수 없겠지만, 소설가가 가진 문학의 책임성이 도드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문학이 슬픔을 어떻게 사유하는지를 다양한 결로 탐색한다.
1부는 문학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다. 그는 문학이, 문학에 이바지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슬픔’을 내재하고 있음을 들춰낸다. 그 슬픔은 고립일 수도 있고, 자발적 격리이거나 스스로 경계로 밀려나는 시도이기도 하다. 문학은 이런 다양한 ‘슬픔’을 모태로 태생한다. 1부에 소개하는 인물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한 번쯤 접했을 사람들이다.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소개된 문학가들의 슬픔은 ‘세계 너머’를 보려는, 즉 ‘견자(見者)’가 가진 특권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무게다.
2부에는 4편의 글이 있다(상대적으로 분량이 적다). 이 글에서는 작가가 설정하는 슬픔의 문학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작가가 오래전부터 ‘슬픔’이라는 감정을 주목한 이유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글들을 되돌아보면, 그가 슬픔을 단지 감정 차원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에서 배태된 인간 본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단락이 이 책의 중심 주제와 연관된다.
3부는 슬픔이 가진 사회역사 현상과 사건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시대 ‘슬픔’이 가진 실제적인 아픔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슬픔은 보편성을 상실했다. 땅의 사람들에게 너무 가중된 슬픔이 얹혀 버렸다. 권력은 자기 슬픔을 제거하여 타인에게 지워버리는 나쁜 힘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이런 불균형 속에서 가중된 자기 슬픔을 끌어안고서도 타인을 위협하는 나쁜 힘에 희생으로 저항하는 이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슬픔’을 버텨내고 마침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점이 이 책에서 슬픔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방식이 무엇인지 발견해서 저자와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4부는 슬픔 그 자체가 곧 희망임을 시대에 비추어 서술한다. 이 단락에서 저자의 관심은 정치와 녹색운동, 기후위기와 같은 시대 아픔을 아우른다. 이로써 슬픔의 힘은 문학의 책임이자, 문학이 가진 철학의 기초까지 제공할 수 있다.
슬픔의 공동체적 수용
저자가 믿는 ‘슬픔의 힘’은 경계에 서는 용기이자 기억으로 저항하는 힘이다. 그는 슬픔을 밀어내기보다 기억하며, 그 기억을 통해 진실의 시간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경계인’은 시대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슬픔을 통해 광장을 확장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 윤리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 책은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문학은 슬픔의 기원과 형태, 범위를 질문하며, 슬픔의 힘을 일상 속에서 실현하는 공동체적 사유의 장이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슬픔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증언록이다. 그리하여 슬픔은 이제 개인의 감정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기억하게 하는 문학적 소재로 다뤄진다. 언어로 이어진 연대의 숨결이다
기억 저항으로서 슬픔 공감 문학
『슬픔의 힘을 믿는다』라는 낮고 묵직한 소리로 우리 시대를 연주하는 슬픔의 해석학이다. 타인의 슬픔을 자기 삶 속에 끌어안고 희망으로 전환하려는 윤리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건조한 문체 속에서도 슬픔을 개인의 범주에 가두지 않고, 기억 저항의 불빛을 끄지 않으려 분투한다.
그 불빛은 슬픔의 시대를 건너 인간과 시대를
동시에 위로하는 문학의 두터운 호흡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