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序詩에 담긴 마음 읽기
(2-1)

도석적 해석에 의한 시 분석의 실험

by 푸른킴


1. 도석적 해석의 정의

늘 그렇듯이 길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걷는 동안 가끔 윤동주의 「서시」를 되새긴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길에서 이 시를 반복해 읊조리며 해석한다. 단어들을 상상 속에 풀어놓고 음미하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다시 곱씹으며 부연하는 이 방식이 나의 ‘도석(道釋)’, 곧 길 위의 해석이다.


도석은 책상 위에서 글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시를 상상 속에서 자세히 읽어낸 ‘심화된 낭송-읽기'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다. 길을 걸으며, 또는 공간에 앉아 말의 배열, 표기, 리듬 등을 토대로 시를 암송하며 시인의 마음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법은 전통적으로 정약용과 박지원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글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몸의 리듬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을 직접 구현했다. 이들의 해석학은 길 위에서 암송과 호흡으로 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도석의 정신과 깊이 호응한다.


한편, 이런 시해석은 고대 히브리 시 독법 전통에 잇대어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시는 더욱 적극적으로 암송과 낭독, 그리고 묵상을 위한 운율이 고려되었다. 그를 위해 악센트(강세와 리듬)와 평행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대구법, 언어유희와 같은 기법도 자주 썼다. 이는 기억을 위한 암기와 그 기억의 공유를 위한 낭송, 공유된 기억의 해석을 향한 묵상에 유용한 장치였다. 이로써 본질적으로는 시인의 마음, 생각, 꿈, 탄식, 역사 회고 같은 다양한 사유를 시에 담으려는 의도였다. 그리하여 히브리인들의 시는 그 자체가 심적 자화상이자 마음의 농도를 달리하여 그려낸 수채화라 할만했다. 이러한 고대 시작 기법은 읽기의 방법, 암송의 방식에 따라 시의 의미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정리하면, 길 위의 해석학으로서 도석은 시를 그저 종이에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길 위를 걷는 자의 호흡 속에서 살아나는 실존적 언어로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시 해석이다. 따라서 이 글은 ‘걷기–암송–호흡’으로
윤동주의 「서시」를 현재화하는 도석(道釋)의 시 읽기로서
텍스트 비평이 아니라
몸의 리듬으로 의미를 체험하려는 독법이다.

2. 「서시」와 도석적 해석

이런 도석적 해석을 연습해 보기 위해 나는 직접 걸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해석해 보았다. 서시를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암송과 낭송이 수월하고, 묵상하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리듬과 시어가 선명하고, 시인의 미세한 심정을 담고 있는 시라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를 길 위에서 암송하고 해석하는 것은, 곧 자기 실존을 다지는 결단의 행위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라는 관점은 길이 함의한 의미를 천착한다. 앞으로 분석하겠지만, 이 길은, 「서시」에서 시인이 자기 속의 불안과 부끄러움, 결연함을 동시에 안고 있는 토대이다. 독자 역시 그 길을 걸으며 읊조리는 행위를 통해 그 실존적 긴장을 현재로 체험할 수 있다.


요컨대, 윤동주의 「서시」 해석은 길 위에서 일어나는 도석을 극대화하는 시도이다. 도석은 소리와 몸의 리듬으로 「서시」 텍스트를 내 몸이 나아가는 자리로 현재화한다. 이제 윤동주의 「서시」를 도석적 해석으로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부연해 보려 한다.


3. 도석에 의한 시인의 마음 읽기

알려져 있듯이, 「서시」는 암송 친화적 리듬과 투명한 시어, 그리고 시인의 미세한 심정이 촘촘히 배어 있어 도석적 낭송에 적합하다. 이하에서는 (1) 육필 원본의 표기·행 구조, (2) 낭송 호흡과 문장부호, (3) 구절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실존적 자아상을 차례로 살핀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시가 암송과 낭송에 적합한 리듬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오래 걸리지 않아 암송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복잡한 장치나 도구가 없어도 걸으면서 시어들을 떠올려 그 시의 의미를 상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나의 논지는 ‘윤동주의 서시는 암송을 토대로 무한 반복하여 상상 속에서 되뇌면 시인의 마음이 도드라지는 내적 흐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서시는 길을 걸으면서 이 시를 읊조리면서도 시인의 자기 실존적 고민을 되새기는 도석적 해석이 적절하다’라는 것이다.


이 논지의 타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이 글은 다음 세 논거를 단계적으로 제안한다.


(1) 시인의 고민이 담겼다는 점에서, 육필 원본과 초간본의 표기 및 행 구조를 확인하고,

(2) 도석을 위해 길에서 암송하며 소리 내 낭독한 호흡을 통해 문장부호의 기능을 실험하며,

(3) 시인의 마음 읽기를 위해, 서시의 구절 분석을 통해 시에 담긴 자기 실존이라는 윤리적 자아상을 파악한다.


이제 그의 서시에서 이러한 근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그에 앞서 나의 도석(道釋) 방법론에 관해 설명해 두려 한다.


3.1. 육필 원본과 초간본의 표기 및 행 구조

그가 남긴 「서시」 원본을 보자. 이 시의 하단의 표기를 보면, 이 시는 1941년 11월 20일에 쓰였다. 200자 원고지에 세로 쓰기(아마도 연필이었을 텐데)로 모두 89글자다(제목과 기록 날짜는 제외). 시 제목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시구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여덟 줄을 연달아 썼다. 이어 한 줄 건너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마침표를 세 번 찍었으며, 쉼표를 한번 사용했다. 처음 썼던 글자를 수정한 경우가 한 번 있다. ‘나않테’를 ‘나안테’로. 물론 고친 것도 표기가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수정은 시인의 고민을 반영하기보다는 단순한 수정일 수 있다. 그렇다면, 윤동주에게 이런 시구의 수정은 어떤 의미일까? 그의 다른 시 「팔복」의 마지막 시구도 세 번 정도 수정했다. 그것은 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면서, 마음의 혼란함을 노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정도가 미약하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시인이 작은 시어 하나라도 성심껏 수정하면서 자기 마음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수고는 그의 글씨체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래서 다음으로 나는 글씨체를 떠올렸다. 여느 원고도 그렇지만, 서시의 글씨체도 아주 가지런하다. 오른쪽으로 조금 누운 듯한 모양새가 시종일관 유지되는데, 다른 시들의 경우를 보면 아마도 시인이 평소 시를 쓸 때 서법인 듯하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또박또박 써낸다. 글씨만으로 보자면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듯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가 ‘뭉툭하고 단아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자기의 심적 상태를 더욱 굳건하게 해야만 하는 어떤 압박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윤동주의 「서시」 원본은 시구의 배열, 쉼표의 사용, 단어의 수정 등을 통해 시인의 내적 동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표기로서 다지려 했던 이 내적 결연함은 이어질 낭송의 호흡 속에서 다짐의 형태(의지)로 현재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원본에서 보이는 외적 흔적을 이 시를 읽는 준비였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낭송의 호흡을 따라 시의 내적 흐름을 따라가보려 한다.


3.2. 암송과 낭독을 위한 문장부호 기능

길을 걸으며 「서시」를 암송하며 낭독해 보면, 어렵지 않게 이 시의 리듬이 쓰인 글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 원문의 분절과는 조금 다른 구조가 떠올랐다. 그 차이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원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암송과 낭송 본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1)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2)

그리고3)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 가야겠다.4)

오늘밤에도, 별이,5)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해설>

(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구문을 두 구문으로 나눴다. 이로써, ‘죽는 날까지’와 ‘하늘을 우러러’가 모두 강조된다. 도석적 해석은 시인의 다부진 다짐을 선명하게 떠올려준다.


(2)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분절된 두 구문을 한 호흡으로 읽었다. 이렇게 읽으니 시인의 다짐이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라는 후반부에 더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강력한 의지는 곧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시인에게 별은 밤을 빛내는 이상이면서 가장 강한 유대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연대라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 별은 하늘처럼 어떤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기 어둠을 가장 가까이서 비춰주는 친근한 동지일 수도 있다. 이처럼 별은 이상과 현실, 경외와 그리움이라는 이중적 가치가 스며있다. 이 별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으로 전진하려는 의지를 투영한다.


결국, 시인은 두 구문을 나눴지만, 나는 오히려 그 구문을 하나로 이어 읽는다. 이로써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 힘이 담겨 있고, 다음 구문에서 그 힘이 상승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시인은 좌절감을 버리지 못했지만, 나는 그 좌절감에서 오히려 역동하는 힘을 느낀 것이다. 그 좌절감이 가진 역설은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그의 시어에서 드러난다. 나아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에서 ‘것을’을 띄어 읽음으로써 시인의 의식 속에 이 세계의 피조물이 개별적이면서 공동체로 엮여 있다는 의미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따라서, 도석적 해석은 이 구문을 통해 「서시」의 가치가 이런 역설적,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3)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그리고’를 다음 구문과 분리해서 읽었다. 이것은 ‘그리고’를 단순 순접어 기능만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 행동에 앞서 내적 의지를 먼저 다지겠다는 시간 차이와 결단의 이질적 틈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시인은 ‘거러가야겠다’에 앞서 ‘사랑해야지’라는 다짐에서부터 단호한 의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해야지’ 그리고 ‘걸어가야겠다’라는 두 행동이 연속적 의미보다 ‘사랑해야겠다’라는 다짐과 이어서 ‘거러가야겠다’라는 다짐을 시차를 두고 연속한 것으로 읽힌다. 즉 이 구문은 두 가지 심적 결단의 병렬로 읽어야 한다. 이처럼 도석적 해석은 시인이 자기 행동에 앞서 심적으로 아직 다져지지 않은 불안한 존재였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4) 거러, 가야겠다: 도석적 해석을 따라 쉼표를 따라 읽으면, 당당한 직진보다 머뭇거리는 결단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는 한 가능태의 낭송일 뿐, 서시가 낭송의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새 의미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마지막 구문은 시의 결론이다. 이 구문 역시 두 번에 걸친 쉼표를 활용해서 연상했다. 하나는 ‘오늘 밤에도’, 다른 하나는 ‘별이’ 뒤에서 호흡을 잠깐 멈췄다. 여기서 별은 앞서 ‘노래의 대상으로서 별’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것에서 나는 시인의 불안한 마음과 결연한 의지도 동시에 읽는다. 별의 불안은 바람이라는 외적 도전으로 가중되고 또한 상쇄된다. 즉 어제로부터 이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은 불안하다. 시인은 하늘을 우르러 본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별만 주목한다. 그의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만 주목한다. 그 불안과 두려움이 완전히 극복되지는 못했다 해도 시인의 마음은 어떤 새로운 의지로 전진한다.


비록 이 마지막 구문에서 시인이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해결되었다는 단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시인은 개의치 않는다. ‘스치운다’를 비켜감으로 읽히도록 쓴 이유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허무한 결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가능성 아래 놓인 새로운 출발로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을 직접 걸음으로써’ 나는 바람이 내 몸을 스치우는 것을 느낄 때마다 걸음이 빨라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도석적 해석은 이 구문에서 시인의 내적 불안감과 외적 연대감을 향한 열정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것을 추적하게 한다.


3.3. 정리

이런 도석적 해석의 결과 고대 암송(기억)과 낭송(체험), 그리고 해석(적용)이라는 틀이 윤동주의 서시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시인의 내면 갈등(부끄러움·괴로움·불안)과 의지의 결연이 교차하는 장면을 현재화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도석적 해석은 서시에 나타난 시인 윤동주의 심적 상태가 복잡하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다음 글에서 이 시를 분석하면 더욱 드러나겠지만, 이 시에는 표면적으로는 부끄러움, 괴로움, 시어에 감춰진 내면으로는 불안함과 두려움, 단호함, 결연함이 뒤섞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도석적 해석을 시도해본다면, 서시에 대한 자신의 자유로운 해석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다음 글에서 그런 이해가 타당한지를 시 구절을 분석하면서 살펴보려 한다. 요컨대 도석은 「서시」의 미세한 표기·호흡 차이를 나의 ‘실존 감각’으로 해석하여, 시인이 느꼈던 부끄러움과 단호한 의지에 공감하고 그들이 교차하는 시인의 내면을 지금-여기 나의 삶으로 이끌어와 체험하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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