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마침표로 끝나지 않는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Morgen und Abend)』 (박경

by 푸른킴
올라이는 생각한다, 모든 것에 신의 말씀과 영혼이 내재하는 이유다, 그래 그렇지, 그러나 사탄의 의지 역시 작동한다는 것, 그 역시 확신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센지, 그것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올라이는 생각한다, (16면)


노르웨이의 피오르 같은 삶과 죽음의 혼재(混在)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Morgen und Abend)』은 시(詩) 소설이다. 주인공 요하네스의 탄생과 그가 죽음에 이른 마지막 장면을 시처럼 서술한다. 책을 펼치면 인간 탄생에 대한 긴박한 대화가 햇살처럼 쏟아진다. 문장과 문장은 쉼표로 이어진다. 마침표는 최대한 억제된다. 짧게 끊어진 대화 사이에 ‘그리고’가 경첩처럼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더운물 더요 올라이, 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거기 부엌문 옆에서 서성대지 말고 이 사람아, 그녀가 말한다, 네네, 올라이가 말한다,”(9면) 책의 끝, 장례에 대한 회상 장면에도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저자의 철학적 사유를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싱네는 요한네스의 관 위로 목사가 흙을 던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중략)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하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135면) 모든 문장은 노래 가사 같다. 리듬이 이어진다. 그 리듬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휘감는다. 현실과 상상을 잇는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노래다. 이 노래는 노르웨이 피오르의 깊은 협만을 연상시킨다. 격동하며 흘러가다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렇게 이 책은 시(詩)철학적 요소가 다분하다.


한편 책의 주제도 선명하다. 삶과 죽음의 혼재(混在)라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서사가 경계 없이 섞여 있다. 분량은 짧다. 사유는 깊다. 탄생 이야기보다 죽음 서사에 비중을 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하나의 리듬 안에 있기에 삶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은 기억을 통해 생존한다는 확신이 돋보인다. 저자는 인간이 죽음과 삶에 대한 기투(던져짐, Entwurf)에 의해 전진한다고 추론한다. 이 생각이 단단하다. 그러므로 형식과 내용에 근거할 때 저자가 초점화하는 주제와 사유는 분명하다. 한편으로 인간의 삶은 그 생존의 틈새로 조금씩 끼어드는 쉼표들의 연속이며, 다른 한편으로 최후에 죽음의 마침표가 찍힌다 해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혼재 속에서도 자기 숨을 내쉬려는 인간의 생존 의지를 견인한다. 그것은 죽음까지 아우르는 생의 자유에 이르러 마침표를 남긴다.


쉼표로만 이어진 낭독 소설

이 책의 서술 기법은 책의 주제와 저자의 사유 방식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우선 현실과 상상이 구분 없이 묘사된다는 점이다. 소설 첫 부분 요하네스의 탄생 장면은 엄숙하면서도 긴박하다. 소설 끝부분 장례식 장면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장엄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뒤엉켜있다.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엄숙하면서도 유쾌하다. 애절하면서도 느긋하다. 평화롭다. 죽은 자의 몸짓인지 산 자의 걸음인지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등장인물은 생동한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현재 일어나는 일인 듯 선명하다. 의성어와 비언어의 혼합은 상상 속 이미지를 더욱 자극한다. 청각적 효과를 강화한다. 그뿐만 아니다. 소리, 언어에 화자의 표정이 담겨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읽는 자의 오감을 일깨운다. 보는 듯 생생하다. 쉼표와 쉼표가 스타카토처럼 이어졌다. 이 책이 낭독에 적합한 이유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이 책의 주요 서사가 흘러가듯 전개된다는 점도 특장이다. 이 흘러감이라는 이미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생(生)을 함의한다. 그 경이로운 시작은 물론이고, 그 마지막도 예측불허다. 하지만 그는 문장 대부분에서 마침표를 없애고 쉼표로 그 자리를 채워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죽음, 그 마지막 족쇄를 해체해 주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모든 쉼표는 살아있는 것이 내뿜는 들숨 날숨 같다. 이 숨쉬기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올곧은 생의 전진을 경각한다. 인간의 삶이 죽음을 향해 가는 순례라 해도, 인간은 이 운명의 순례에서 쉼표를 징검돌 삼아 느긋하게 건너가는 것이 유익하다. 삶은 죽음이라는 마침표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침표 없는 쉼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쉼표를 이어 쓰는 것은 저자의 신념이 강하게 드러나는 서술 기법이다.


이처럼 현실과 상상의 구분 없이 유영하는 듯한 전개나 쉼표에 의한 서술은 이 소설이 시(詩)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서술 기법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36년 박태원은 이 기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 『방란장 주인』에서였다. 그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끼고,” 박태원은 이 문장에서 ‘느끼고’ 뒤에 마침표를 찍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마무리했다. 이 쉼표로써 이 소설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독자의 상상을 자유롭게 열어주는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시 쓰기에서도 이런 기법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1960년대 김수영은 자기 시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장 기호를 활용하여 인간의 자유라는 주제에 천착했다. 생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최근 김수영의 시들을 연대기로 재구성하여 자서전을 출판한 김응교의 주장에 따르면, 김수영은 어느 순간에도 마침표 찍기를 주저했다. 고통의 쉼표를 이어갈 뿐이다. 그는 쉼표를 통해 끊어지지 않는 삶의 고통 아래서도 ‘곧은 소리’를 따르려는 삶의 저항을 보여주려 했다. 그의 시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는 적절한 예일 것 같다. 이 시가 출판되기 직전 김수영은 마침표를 모두 지워버렸다고 한다[(김응교,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1921~1968』 (서울:삼인, 2022)]. 자신의 지난한 고뇌를 운명처럼 수용해 버렸음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최근 시인 심보선의 시작도 마침표 없는 기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작시 「삼십대」에서 마침표를 없애버리고 모든 것을 쉼표로 이어 붙인다.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중략)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삼십대”, 『슬픔이 없는 십오초』 ,문학과지성사, 2008) 중 일부) 마지막 ‘살아간다’에는 욘 포세의 마지막 표현처럼 어떤 기호도 쓰지 않은 채 문장을 열어두었다. 시인 심보선은 ‘나 다 자랐다’라는 문장 뒤에 쉼표를 찍었다. 이 표현을 보면, 인간은 다 자라도 여전히 자라 가야 할 운명이다. ‘살아간다’라는 말은 끝없는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서술로 그는 이 시대에 끝나지 않는 젊은이들의 고뇌에 끝없이 공감한다. 이로써 오늘날 삼십 대가 자기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세대라는 시인의 공감력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삼십대, 그들은 흔들거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세대다. 하지만 다시 흔들리는 삶으로 운명처럼 회귀할 수밖에 없다. 변방으로 밀려나는 사회적 존재다. 삶에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나지 않는 쉼표와 쉼표로 이어져 흘러가기만 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쉼표는 운명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시인은 이 지난한 쉼표가 오히려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웅변한다. 그 힘겨운 삶의 변방에서 역설한다. 그 마침표를 완성하지 못한 삶도 유의미한 결실이라는 것을 격려한다. 그 쉼표가 만들어내는 고난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난에서 용기를 창발 하도록 북돋는다.


앞서 보았듯이, 욘 포세를 포함한 여러 작가는 마침표 삭제와 쉼표 활용이라는 기법을 활용하여 자신의 문학적 의도를 극대화했다. 작가들은 문학이 천착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마침표 너머 쉼표라는 은유를 통해 함축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서술은 오늘날 인간의 겪는 삶의 의의가 마침표를 향한 질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그 대신 무한한 쉼표의 연속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자기 몸을 맡기는 것을 옹호한다. 마침표를 인위적으로 억제해 버림으로써 이들의 문학은 삶이 이해 불가한 고통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을 다시 일깨운다. 욕망 성취로부터 자유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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