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기도 詩 7. 뒤따르는 용기

by 푸른킴

옛 서재 있던 부용리,

전철 두 시간,

다시 걸어서 한 시간.

가을 햇살 곱게 번지는 날

차도와 옛 물소리 벗 삼아 걸으면,


차로 달릴 때 보지 못했던

붉은 감나무,

오색 코스모스,

우렁차게 짖는 백구,

집 사이 골목, 빛바랜 간판이

눈에 선하다


피곤한 몸,

잠시 쉴까

차도에 바짝 붙어

터벅터벅 걷다가

가끔 근처 교회 목사님 만나면,

우연인 듯싶다가도

늘 그 자리 기다린 듯 익숙하다


차에 올라타

어제 만난 듯 짧은 인사 나누고,

마음속 말 꺼내려다

어느덧 갈림길

왼쪽 오른쪽

아쉬움 묻은 채 차에서 내려

마지막 코스로 들어서면,

그 떠난 뒤

개울은 힘차게 흐른다


산 아래 빙 둘러

옛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좁은 길

잠시 먼 산 바라보다

뚜벅뚜벅 들어서면

솔향 가득하다


낙엽 쌓인 날 운치 있어 좋다가도

그 아래 숨겨진 길 보이지 않아

물기 어린 겉모습만 취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어느 눈 내리던 날

절경 따로 없다가도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어

홀로 남은 발자국을

뒤따르며

안식

즐거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발 내밀게 하는 선구자의 용기,

돌아설까,

개울 건너 말끔한

도로의 유혹 앞에서

망설이다,


기도―


갈등의 고투

느릿하지만,

산길 따라 걷는 나의 의식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눈길 먼저 걸었기에

그 첫걸음 사라진 지 오래여도

훗날 나의 발을 이끌면

나도 천천히,

미끄러지듯 뒤따른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

그 자취에 힘입어

내 발걸음 점점 평안해지면,

개울 징검다리 몇 개

덩그러니 놓인 길 끝에 이르러

마침내 눈을 들어,

온몸으로,

하늘 바라본다


개울 물소리 벗 삼아

발은 천천히

땅을 딛고

알 수 없는 길바닥,

모호하고 불안한 산길을

당당히 걸어

안식에 이른다


걷는 기도—


불안한 세계를

보지 않고도

한 발 내디뎌

뒤따르는

최초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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