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재 있던 부용리,
전철 두 시간,
다시 걸어서 한 시간.
가을 햇살 곱게 번지는 날
차도와 옛 물소리 벗 삼아 걸으면,
차로 달릴 때 보지 못했던
붉은 감나무,
오색 코스모스,
우렁차게 짖는 백구,
집 사이 골목, 빛바랜 간판이
눈에 선하다
피곤한 몸,
잠시 쉴까
차도에 바짝 붙어
터벅터벅 걷다가
가끔 근처 교회 목사님 만나면,
우연인 듯싶다가도
늘 그 자리 기다린 듯 익숙하다
차에 올라타
어제 만난 듯 짧은 인사 나누고,
마음속 말 꺼내려다
어느덧 갈림길
왼쪽 오른쪽
아쉬움 묻은 채 차에서 내려
마지막 코스로 들어서면,
그 떠난 뒤
개울은 힘차게 흐른다
산 아래 빙 둘러
옛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좁은 길
잠시 먼 산 바라보다
뚜벅뚜벅 들어서면
솔향 가득하다
낙엽 쌓인 날 운치 있어 좋다가도
그 아래 숨겨진 길 보이지 않아
물기 어린 겉모습만 취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어느 눈 내리던 날
절경 따로 없다가도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어
홀로 남은 발자국을
뒤따르며
안식
즐거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발 내밀게 하는 선구자의 용기,
돌아설까,
개울 건너 말끔한
도로의 유혹 앞에서
망설이다,
기도―
갈등의 고투
느릿하지만,
산길 따라 걷는 나의 의식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눈길 먼저 걸었기에
그 첫걸음 사라진 지 오래여도
훗날 나의 발을 이끌면
나도 천천히,
미끄러지듯 뒤따른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
그 자취에 힘입어
내 발걸음 점점 평안해지면,
개울 징검다리 몇 개
덩그러니 놓인 길 끝에 이르러
마침내 눈을 들어,
온몸으로,
하늘 바라본다
개울 물소리 벗 삼아
발은 천천히
땅을 딛고
알 수 없는 길바닥,
모호하고 불안한 산길을
당당히 걸어
안식에 이른다
걷는 기도—
불안한 세계를
보지 않고도
한 발 내디뎌
뒤따르는
최초의,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