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단가에 대한 소고

-'가을-비로, '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젊음

by 푸른킴

단가, 짧은 언어의 철학

한 달에 한 번 삼일 정도 캠핑을 다녀온다. 지난 구월, 쏟아지는 비를 0.5평 공간에서 환호하며 맞았던 때를 추억하며, 이번 주 색 바래가는 풍경을 다시 즐긴다. 갈수록 몸은 좀 빠르게 고단해지지만, 여전히 계절의 풍미는 활력이 된다. 이른 아침 묵직한 몸을 일으켜 따듯한 차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곁들여 가벼운 시, 단가를 그려본다. 이 단가는 짧은 언어 형식 안에서 계절과 존재,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짧은 단어와 문장으로 사유하려는 나의 방식이다. 오늘 이 소고를 남겨두는 것은, 짧은 형식 속에 시간–언어–안식이 한 호흡으로 변주될 수 있음을 틈나는 대로 숙고하기 위함이다.


알다시피, 단가는 단순한 정형시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를 최소한으로 비워내어, 그 빈자리에 계절의 변화, 그 변화를 인지하는 존재, 나아가 그 변화와 존재 사이를 밀도 있는 언어로 응축시키려는 하나의 철학 행위이다. 간단히 말해, 버려도 되는 일상은 없다는 것을 문학으로 실험해 보는 일이다. 일상의 감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엔 “언어가 어떻게 존재의 빛을 품을 수 있는가”라는 철학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요컨대, 시간의 색채는 결국 ‘검은 안식’—어둠과 빛—으로 귀결된다.


시간, 변화의 시학 ― “되기”의 언어로 존재하기

나의 단가에서 중심적인 소재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시계의 시간, 즉 객관적 시간이 아니라 관계적 시간, ‘되기’, 변화의 척도이다. 나는 이런 달라진 시간의 의미를 체득하기 위해 ‘걷기’를 택하거나 가끔 ‘머묾’을 경험한다. 이 두 행동은 시간을 은유하는 나의 삶의 방식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으며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걷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캠핑은 이런 시간 이해를 좀 더 심화하여 변화의 척도로 일러준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보면(나는 집 근처 야영장 42번 데크를 이용한다) 시간이 변화로써 어떤 것들의 ‘되어가기’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시간이 빚어낸 감각을 어떻게 나의 언어로 표현했는지 살펴보자.


‘비로’와 ‘심곡심곡’ ― 언어의 존재론

오늘 나의 단가는 ‘가을-비로’를 제목으로 삼았다. 그 아래 ‘젊은 하늘빛’과 ‘붉은 가을비’를 한 줄에 배열했다. 마치 이 두 문구가 한 줄 안에서 공존하도록 배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서로 맞은편에 있는 두 단어를 떠올리려 했다. 즉, 생성과 소멸, 젊음과 늙음, 빛과 어둠이 이 단가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중적 대구표현을 통해 존재는 그저 ‘있지’ 않고, 서로 관계하며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번 단가에서는 두 개의 핵심어를 활용했다. 하나는 ‘심곡심곡(心谷心谷)’, 다른 하나는 ‘비로’이다. 먼저, ‘심곡심곡’은 심곡(心谷), 마음의 골짜기 두 번 연속 사용해서 ‘울리는 소리’를 표현했다. 마음으로부터 울리는 그 소리는 사유의 깊은 파동을 희망하는 나의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 단어는 소리로는 반복이지만, 의미로는 되울림이다. 마치 ‘차곡차곡’과 같은 언어 형식을 사용한 것이다. 심연의 깊은 곳에서 일어난 울림이 다시 나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언어 구조다. 이것은 내가 추구하는 ‘단가의 리듬’이기도 하다.

다음, 핵심어는 ‘비로’이다. 이것은 다음 세 가지 의미 층을 유지한다.

첫째, 비(雨)로 내리는 가을의 감각적 세계,

둘째, ‘비로소’ 드러나는 시간의 깨달음,

셋째, ‘슬픈 길’(悲路)이라는 감성의 인식이다.

비로는 불교적 사유를 반영할 수 있고, ‘길 아닌 길’이라는 의미로도 변주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중첩되는 ‘비로’는 단순한 시적 언어가 아니라 시간, 변화하는 존재, 마음의 계속에서 울리는 사유의 다양한 어조를 시어로 연상하고 그것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연결하는 사유의 매개어다. 특히 “가을-비로”라는 구조에서 사용한 하이픈(-)이 그 예이다. 이 표기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다양하게 변화하는 존재, 일상과 사건, 심지어 유한과 무한이라는 철학적 틈새를 이어보려는 시적 다리다. 이 틈새를 관찰하는 것은 곧 삶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것이며, 단가를 쓰는 이유이다. 그 단가에 담긴 관찰의 첫 번째 표정이 색채다.

색채의 존재론 ― 시간은 빛의 변주이다

이 단가에서 표현적 특징은 색채이다. ‘푸른 하늘빛’에서 ‘붉은 가을비’, 그리고 ‘붉그스름한 들판’으로 이어지는 색의 변이가 그것이다. 특히 나는 ‘푸른-붉은’에서 ‘붉그스름’으로 전이되는 풍경을 응시했다. 계절 속에서 모든 사물은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주한다. 그 변주는 색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 색은 감각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자기(self)’ 정체성의 은유로 기능한다. 청(靑)은 생의 시작, 적(赤)은 변화의 정점, 붉그스름하여 마침내 노랑(黃)으로 이어지는 들판은 그런 자기 안식의 빛, 샬롬의 공간이다. 이처럼 색의 변주는 시간, 계절의 흐름이 아니라 사물이 자기 존재를 갱생하는 빛의 주기적 사건이다.


언어의 여백, ‘검은 안식’의 미학

나는 단가를 통해 언어의 비움, 그 빈자리에서 생기는 삶의 심곡(深谷)을 ‘검은 안식’과 연관 짓는다. 나에게 ‘검은 안식’이란 어둠의 세계가 아니다. 모든 의미와 감정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상태이자, 평온한 정서이다. 즉, 언어를 비워, 검은 안식을 상징하는 단가는 사물 마음이 직접 말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말이 침묵으로 스며들 때, 그 침묵 속에서 존재는 빛난다. 그것은 신학적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움)’이자, 동양적 ‘무위(無爲)’의 시적 언어와 연동한다.

작은 철학 시― 미생의 큰 의미

단가는 본래 ‘짧음의 시학’이다. 그러나 그 짧음 안에는 언어의 집중과 존재에 대한 책임이 담긴다. 그러니 짧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이 짧다는 뜻이 아니다. 응축된 사유의 밀도를 의미한다. 나의 고민은 한 문장에 어떻게 생의 한 파편이라도 응축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나는 단가를 ‘작은 철학 시’라 부른다. ‘작다’라는 것은 일상이라는 의미이며, ‘철학’은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사유한다는 것이며, ‘시’는 그 쓰인 문학 형식을 말한다. 이렇게 ‘작은 철학 시’라는 형식 속에서 삶은 응축되고, 그 삶을 살아내는 모든 존재는 재현된다. 그러므로 내가 단가를 쓰는 것은 문학적 장르의 선택이 아니라 삶에 관한 윤리의 결단이다.


결론 ― 단가, 존재의 호흡을 증언

‘가을-비로’라는 단가는 모처럼 청명한 가을 아침 풍경에 대한 나의 헌사이다. 가을은 늙지 않고 다시 푸르러진다. “비로의 들판”은 삶의 희로애락의 여정을 함축한 나의 창작어다. 그곳은 시간의 아쉬움보다 변화의 즐거움이, 나이 들어 갊이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희열로 변화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가을-비로는 내 앞에 작은 나뭇잎, 적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졌으나 오히려 평화로 귀결되는 검은 안식의 공간이다.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 곧 이질적 평화의 공간이다.

솔직히 말해, 나의 단가는 세계를 넓게 품지 못한다. 다만 저 세계가 내 안에서 어떻게 울리는가를 글로 남길뿐이다. 그러나 그 울림이 곧 시이며, 그 기록이 곧 나의 작은 철학시다. 나의 단가는 일본의 하이쿠, 한국의 시조, 정형시 같은 탁월한 문학 장르 틈에서 그저 자유롭게, 그러나 리듬을 따라 사라지는 작은 삶을 스무 글자 내외로 남긴다.


따라서 나의 단가는 미학의 완성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필부의 세계 관찰이라는 삶의 미학으로, 작은 생명과 사소한 사물의 존재를 증언하며 그것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존의 철학, 하나의 기도이다.


그러므로 나의 단가는,

짧은 언어로 쓰인 존재론적 기도문,

‘되기’와 ‘안식’ 사이의 떨림이며,

시간과 침묵 사이의 호흡이다.

여기, 이 언어로 존재가 있음을 증언하며,

나는 미생의 일상을 건너는 철학을 쓴다.

짧은 시적 언어로, 시간 너머 존재하는 생명의 호흡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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