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산책을 나와서
<2018. 가을비 온 뒤 떨어진 낙엽과 풍경 모음>
"잘 찍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스토아 철학자들은 좋은 것(good)의 세 요소를 재미, 감동, 쓸모로 설명했다. 이는 사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미있는 소재와 관심을 선택해 감동의 내용을 붙여 넣고 이를 의미화하면 된다."(22쪽)
"사진은 인식을 결과를 그대로 그대로 반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자신의 인식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충실히 옮겨야 좋은 사진이다."(102쪽)
-윤광준, 잘 찍은 사진 한 장, 웅진 지식하우스, 2012. (한겨레 신문 2018. 11. 3일 13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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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 개인이 지닌 인식의 깊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사진의 의의를 정확하게 짚은 것 같다. 특별히 나처럼 사진에 문외한인 사람 손에 들려진 사진기라 해도 내가 찍은 모든 것이 곧 내가 '본 것'이자 담아내고 싶은 나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을 찍느냐에 앞서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 윤광준이 말한 '보이는 것'과 '본 것'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보이는 것'은 피사체의 겉모습이나 단순한 시각일 것이며, '본 것'이라면 그것의 숨은 의미, 그것을 통해 찍는 이가 읽어낸 행간의 의미, 피사체와 그 주변의 관계, 나아가 그것을 찍는 이의 번뜩이는 깨달음이 복합된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가을답게 화창한 날, 나는 오래전 어느 비 내리고 약간의 바람이 불었던 날, 하루 종일 길을 걷고, 다시 걷고, 멈추는 동안 남겼던 사진을 다시 꺼냈다. 그때 그 걸음에서 내가 인식한 세계의 범주를 오늘 여기서 다시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의 시선은 가장 낮은 것에서부터 가장 높은 것까지,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까지,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까지, 가장 밝은 색으로부터 가장 어둔 색까지 아우르려 했다. 그리하여 좌우, 위아래, 심천, 넓고 좁음이 없는 인식의 범주에 닿아보려 했다.
오늘 길을 걸으면서 그 사진을 다시 보니 빗길 위에 나란히 누운 듯 떨어져 있는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은 어쩌면 길 위에서 비로소 존재가 분명해지는 상징일 것이다.
한때 강남역 사거리 좁은 기지국 위에서 끝내 내려와야 했던 고공농성자들의 슬픈 운명을 담은 색일지도 모른다. 그런 뜻을 생각하며 이 지난 사진 한 컷을 다시 보니, 이 가을 한층 진부하게 늙어버릴 내 삶이 더 높고 깊고, 넓고, 멀리 나아가 역동하기를 새삼 기대한다.
알려진 대로, 사진이란 결국 푼크툼(punctum)의 미학이다. 롤랑 바르트의 이 말을 빌리자면, 사진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순간을 포착,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고, 그 빛과 어둠이 대립을 넘어 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래서 나도 사진 찍을 때마다 이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한강 작가가 '빛과 실'(2025)로 햇살을 한 폭의 묵화처럼 담아낸 사진은 이런 나의 의지를 격려한다.
길을 걷고, 사진을 남길 때마다 이런 문학과 사진의 길을 따라 세계에 잇댄 나의 시선이 왜곡되지 않았는지 살펴보려 한다.
<2025. 가을 산책길>
이러한 사진적 참여 행위(밝음/어둠, 낮음/높음의 조화)는 결국 신의 통치를 아는 나와 우리가 당연히 지향해야 할 조화로운 삶, 샬롬의 태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의 통치를 아는 한 우리는 땅에서도 하늘의 삶을 살아야 하고 '전체와 미래를 보는 눈'(마틴 로이드 존스, 믿음의 시련, 지평서원, 2012, 100-29쪽)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