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대입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날, 오독회 모임의 산책
"낙엽은 떨어져야 할 때 스스로 떨어진다. 느닷없는 바람에 휘둘린 것이 아니다. 그 자발적 낙하는 허름하게 보이는 정상(頂上)에서도 여전히 가을을 빛나게 하는 나의 향연이다."
정상은 모두 정상이다
눈을 들었다. 정상이 앞에 있다. 힘을 내어 마지막 걸음을 채근한다. 마침내 한 발 남았다. 끝이다. 숨을 고른다. 잠시 말을 아낀다. 정상에 서면 말을 줄이고 시선을 멀리 두는 것이 산행의 암묵적 의식이다. 모든 길의 끝자리는 자기 풍광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그 풍광의 환대를 누린다.
세계 모든 정상은 고유하고 독특하다. 정상의 가치는 오른 자에게 있지 정상 자체에 있지 않다. 오늘, 나의 길 끝 역시 다른 길과 색다르다. 비록 볼품없고 가볍고, 정갈하지 않은 엉성한 숲과 푸석한 바위가 전부여서 기대했던 세계는 아닐지라도, 내 발이 닿는 순간, 소박하고 아담하게 변모한다. 그저 나 닮은 자연답다. 달리 말해 나의 개성이 스며든 고유한 터이다. 그러니 모든 정상은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것이 좋다. 나의 수고로 오른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몇 걸음 돌다 아무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닥으로 내려앉으려는 몸을 시원한 물로 다독인다. 흐릿해지려는 눈도 멀리 보도록 다시 들어준다. 그 찰나에 앞산 다른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어렴풋해도 새로운 세계다. 내 앞에 펼쳐진 저 정상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직, 나의 정상은 이 허름하고 누추한 세계다. 건너가기 전까진. 지금 여기만이 나의 정상이다. 그 세계가 내 눈에 가득 차 있다.
정상의 숲에는 틈이 있다
앞산을 보게 된 것은 숲을 통해서다. 숲이 언제 열려 있었던가? 올라와 잠시 쉬고 있을 때는 몰랐다. 거친 숨을 돌리는 사이 눈에 띄었다. 언뜻 숲의 소창(小窓)이라 할 정도로 작은 틈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열려 있었으리라. 어둔 숲에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건너편 거대한 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얼핏 보아도 가볍게 다가갈 없는 산이다. 그래도 그 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인다. 시선은 동경의 샘이다.
사실, 저 산을 어떤 기념의식처럼 걸어 올랐던 적이 있다. 오늘처럼 맑은 날이었다. 구름도 길을 비껴 주는 날은 흔치 않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산이 자기 몸 전체를 속세에 드러내 주는 일은 어떤 사건이라 했다. 기억해 둘 만한 순간이라는 의미다. 그 자체로 신비하여 치장하거나 각색하지 않아도 경이롭다는 찬사이기도 했다. 맑고 푸른 하늘과 저 산이 어울리는 날이면, 그 자태는 자연 그대로 웅장하다.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옛날, 땅이 맞닿은 바닷속에서 융기한 이래로 거기 있었을 것이다. 태생부터 웅장한 그 속에 핏줄처럼 수많은 길이 나있다. 길을 걸을 때는 그저 힘들었는데, 멀리서 보니 포근하고, 단아하고, 견실해 보인다. 숲의 틈은 사유의 문고리처럼 나를 상상의 산으로 안내한다.
나의 정상에서 저 정상을 상상하다
나는 나의 정상에 서서 틈 너머에 존재하는 그 산을 한참 응시했다. 혼자 생각하길, 이 낮은 정상에서 저 웅장한 산을 눈에 품는 것이 선물이다. 환대받는 기분도 든다. 잠시, 기억 속에 살아있는 저 정상의 풍경을 추억한다. 기억 속 정상은 소담스러운 지금 나의 정상과 비교할 수 없다. 저 높고 위엄스러운 정상을 상상해 본다.
그날은 힘겨웠다. 하지만, 오늘 되살린 그 기억으로 몸이 오히려 명쾌해진다. 내 뒤를 이어 오른 이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탄성 했다. 그것은 읊조림일 수 없었다. 폭음이었다. 오른 사람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오르는 모든 길, 그 속에 뿌려둔 땀방울이 바다와 어우러져 저 아래서 햇살처럼 반짝인다. 정상은 오르는 길에 수놓은 열정이 치열하고 지난할수록 더욱 정상답다 한다. 그러니 내가 오른 이 정상도 건너편 저 위세 등등 한 정상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성소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선택의 결실이다
이 정상에 오르는 길은 낮고 완만했다. 굽이치고 울퉁불퉁하며 사람이 적은 오솔길이었다. 바로 옆에는 일정하게 경사진 길이 있다. 오를수록 넓고 평평하며 사람이 많은 산책로다. 이 두 길이 지금 나와 함께 걷고 있다. 나는 오솔길을 걸으며 큰길을 가끔 곁눈질한다. 이 두 길은 삶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상보다는 현실에서 날마다 직면하는 나의 실상이다. 이 두 길 사이에는 늘 긴장과 질문이 공존한다. 선택이 짐처럼 어디나 덩그러니 가로놓인다.
정상에 오르기 전, 걸었던 숲에도 여러 갈래 오솔길이 있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저 길을 만난다. 저 길에 들어서면 이 길을 되돌아봐야 했다. 어느 숲에서나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예단할 수 없었다. 들어서야만 눈에 보이는 개방된 미로다.
선택된 길은 하나다
사실, 길은 어디로나 뻗어 있다. 어디든 여러 길을 갈 순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도 그 끝을 장담할 순 없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출발할 때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도 좋다. 그 끝에 이르는 모든 여정을 미리 되새겨두는 것도 좋다. 길을 걸으면서는 숲에 표기된 모든 이정표를 지나치지 않고 심지어 질문한다. ‘이 길인가?’ 동시에 지나온 길들을 반추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바로 그 길'을 쉬지 않고 상상한다. 그것이 정상을 향하는 데 유익하다.
한 길을 선택했으면 여느 길들은 잠시 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길을 버렸다해서 그 길들이 사라지진 않는다. 다음 여정에는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다. 어느 순간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길은 자주 엉키고 가고 오며 돌고 돈다. 지금 반복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지금 이 길도 예전 내가 헤매던 길, 포기했던 길, 선택할 수 없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시행착오 끝에서 마침내, 반드시 길 끝에 이른다. 그래서 행복하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길 끝이 어떤 모습인지, 정상이 어떤 풍경을 갖는지는 예단하지 말자. 주어지는 정상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길의 선물이다. 누구나 화려한 끝을 기억에 남기고 싶겠지만 그건 순례자의 몫이 아니다.
모든 정상은 상상과 다르다
나는 안다. 모든 걷기는 정상에 대한 자기 상상과 미련을 버릴 때 비로소 끝난다는 것을. 어떤 정상 풍경도 저마다 자기 가치를 갖는다. 사실, 세간에는 비슷한 역경이라면 오솔길이 아니라 저 잘 닦인 등산로를 걷는 것이 좋다고 권유한다. 그 끝에 이르러 기억해 둘 만한 선물을 보상받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허름한 정상보다 화려한 꼭대기, 전망이 탁 트인 공간을 기대한다. 그러나 걷다 보면 내가 걷는 길이 이 두 정상 중 어느 것일지는 그리 중요하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로서 이 두 길은 걷기라는 의미에서만 동등하다.
하지만 여정을 생각하면 두 길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선 화려한 정상은 걸어온 여정을 망각할 만큼 자기 빛을 스스로 드러낸다. 나의 걸음이 저 결실에 덮여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허름한 정상은 내가 걸어온 여정을 더 빛내준다. 아예 오랜 기억 속에 남겨둔다. 험난한 여정을 빛나게 한다. 화려한 정상을 보기 위해 힘든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인 등산이라면, 나의 걷기는 정상의 화려함보다 나의 걸음의 가치를 더 추앙한다. 허름한 정상도 그 나름대로 나의 걸음으로 닿은 의미 있는 결실이다. 정상보다 여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걷기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주어진 정상을 받아들이자
걷기에서 나는 언제나 생각한다. 지난한 여정 끝에 만난 허름한 정상에 관해서다. 솔직히, 오늘 이 누추한 정상은 기억에 남길 사건이라 하긴 어렵다. 이 소박한 끝에서 저 거대한 산을 올랐던 기억들을 소환하는 일이 외려 자연스럽다. 내가 걸었고, 그간 누렸던 저 화려한 정상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니 말이다.
내가 딛고 선 이 허름한 정상은 저 거대한 정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멀리서 조망하는 즐거움마저 선사한다. 정상에서 정상을 내다보는 창과 같다. 이 창을 통해 나는 정상에 이르는 길, 굽이굽이 돌았던 숲 속 오솔길들이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자체로 좋다.
어느 길 한 모퉁이를 돌자 어둠 속에서 노란 단풍이 빛난다. 저 어둠 뒤에 새어 나오는 작은 단풍빛을 위해 굳이 돌길을 지나 엉켜있는 숲을 헤치고 나갈 필요는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같은 고생이라면 더 크고 화사한 색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마땅하리라. 하지만 정상이 어떠하든 그곳을 향한 여정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사건 같은 길을 걷는 즐거움은 적지 않다. 요컨대,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자유롭다면, 거칠고 불확실한 길이라 해도 기꺼이 즐기며 가보자. 지금은 화려한 정상에 오른 이 못지않게 그런 누추한 길을 걸어간 이들이 빛나는 계절이다.
그대가 오르는 모든 정상은 가장 위대하다
이렇게 작은 숲길도 거대한 기억의 가치를 일깨운다. 기억은 망각에 저항한 빛나는 유산이다. 기억은 사건으로 발화하고 기념으로 지속한다. 기억을 위해 기념하고, 기념함으로써 기억은 생존한다. 기념에는 의식이 필요하고 의식은 기억을 강화한다. 그런 점에서 걷기는 기억, 기념, 의식이 잘 버무려진 가벼운 순례다. 거대한 망각의 숲 같은 삶에 살아있는 기억의 단편들이 햇살처럼 비추는 작은 기도라 불러도 좋겠다. 모든 낙엽이 스스로 낙하하듯, 모든 정상은 스스로 의미를 갖는다. 누추한 허름한 정상은 없다. 모든 정상은 그대가 머물러야 비로소 빛난다. 그대가 아름답다면, 그대가 도달한 그곳도 아름다운 정상이다.
나의 숲길에는 언제나
가을 낙엽이 끝지고
붉은 동백이 첫물 드는 계절이
소리 없이 움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