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신화의 폭력 1』

[교수신문. 책으로 책 너머를 읽다25.11.24 刊] 동연. 2025

by 푸른킴

‘우리’라는 말이 만든 경계 ― 기독교 인종화의 사유를 다시 읽다


한국 기독교는 지금, 깊은 자기 성찰의 자리에 서 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지만, 이미 구조적 병리 증세를 품은 당뇨 환자처럼 변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교회는 ‘우리’라는 말의 따뜻한 울타리에 기대어, 그 말이 만들어내는 폭력을 오랫동안 거의 반성 없이 재생산해 왔다. 최근 출간된 『‘우리’라는 신화의 폭력』(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은 이 문제를 신학·사회학·문학·종교문화학의 지평에서 차분하면서도 예리하게 해부한 연구 성과다. 이 책을 구성하는 여섯 편의 논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라는 단어는 어떻게 기독교 안에서 인종화를 가능하게 했는가?”


총론에서 김나미·조민아는 기독교가 성서 교리와 제도적 신앙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해 온 역사적 책임을 점검한다. 동시에 기독교 신화가 폭력만이 아니라, 비폭력적 저항을 넘어서는 의미의 변혁적 에너지를 촉발해 온 전통 또한 존재했음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다섯 논문은 ‘우리’라는 말이 어떻게 혐오와 배제라는 경계의 장치로 작동하며, 때로는 비극을 낳았는지를 각기 다른 장면에서 보여준다. 「유대와 갈릴리, 남한과 북한에 ‘인종’이 있는가?」(최진영)는 초기 기독교의 사유 구조 속에 이미 인종적 분류의 씨앗이 스며 있었음을 밝히고, 그 흔적을 남북한 현실과 접속시킨다. 「일본의 이단아, 자이니치 디아스포라」(김응교)는 『파친코』를 토대로 일본 제국주의의 잔존 구조가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타자화했는지 분석한다. 「‘빨갱이’의 인종화—제주 4·3 사건과 ‘그 여파 속에서’」(김나미)는 ‘붉은 섬’이라는 상징과 ‘빨갱이’라는 언어가 인종화의 실제 기제로 작동했음을 드러내며, 기억의 전환을 위한 ‘경야(經夜)’라는 실천을 제안한다. 「한국 극우의 인종화 프로젝트와 ‘그리스도교국가론’」(김진호)는 ‘선택된 민족’이라는 신화가 정치적·종교적 폭력의 무기가 된 양상을 분석하고, 「한국 인종주의와 차별 주체로서의 한국교회 다문화 목회」(이보경)는 이주민을 ‘선교의 대상’으로 고정한 다문화 목회의 구조적 배제성을 비판한다. 이 글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쓰였지만, 하나의 결론을 향해 수렴한다. 한국 사회의 ‘우리’ 담론은 정서적 소속감을 넘어 정교한 경계 장치로 작동해 왔고, 기독교는 그 경계의 언어·정서·제도적 토대를 제공해 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인종화(racialization)와 더불어 타자화, 주변화라는 개념을 다양한 맥락에서 언급한다. 이 책에서 이 세 개념은 하나의 사유축으로 재편될 수 있다. 인종화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정동적·문화적 분기점이며, 타자화는 그 경계를 고정된 정체성으로 굳히는 단계이다(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의 삭제). 주변화는 그 구분을 제도와 일상의 층위 속에 내구화하는 마지막 과정이다. 이 흐름은 여섯 편의 논문을 관통해 드러나는, 한국적 인종화의 구조적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한국 인종주의가 더는 피부색이나 혈통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 ‘생활양식,’ ‘근대성,’ ‘시민성’ 같은 감각적 코드로 재편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난민·새터민·다문화 가정 같은 취약 집단이 손쉽게 타자화되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인종화가 기독교·국가·단일민족성이라는 삼중 축 위에서 구축된, 계속 구축될 구조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다음 세 방향으로 확장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대 인종화의 배후에는 신자본주의적 인간관이 자리한다. 인종화는 단순한 혐오나 무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을 경제적 효율성으로 서열화하는 체제 속에서 ‘우리’는 더욱 강하게 고착된다.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의 불안정성은 작은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강화하고, 그 정체성을 위협하는 타자 배제를 부추긴다. 결국, 인종화 극복은 윤리적 감수성을 넘어,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회복하는 근원적 회심과 연결된다.


둘째,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적 연대처럼 보이나, 실은 엘리아스 카네티가 말한 ‘닫힌 군중’(closed crowd)의 정동에 가깝다. 동일성의 환상과 외부에 대한 공포를 에너지로 삼는 이 군중은 한국교회의 번영신학·선민의식·대형교회 성장주의와 결합해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이는 실제 연대가 아니라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공동체’, 즉 표상만으로 유지되는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를 ‘군중’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셋째, 기독교 신화는 폭력만을 낳은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긍정적 의미의 변혁적 폭력을 생산해 온 전통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케노시스 공동체 운동, 순전한 예수 추종의 신앙은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어둠을 드러내고 구조적 변화를 추동한 흐름이었다. 이 균형이 함께 제시될 때, 『‘우리’라는 신화의 폭력』은 고발을 넘어 타자를 환대하는 사회관계적 인간 이해로 독자를 이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 기독교가 스스로 회심하여 되찾아 가야 할 근원을 다시 일깨운다. 그 근원은 피조물로서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이를 기반으로 폐쇄된 ‘우리’의 경계를 넘어, 세계 공존의 샬롬을 재구성하는 자리로 향하도록 촉구한다. 가장 놀라운 신화는 피조물이 서로 환대하며 조화를 이루는 근원적인 삶, 그 자체이다. 가을 낙엽 사이에 새봄의 씨앗이 숨어 있듯, 예정된 2권의 출간이 그 새로운 사유의 확장을 열어 주길 기대한다. (211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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