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11. 일몰 찬가

by 푸른킴

검붉은 피부

옹골찬 뼈


해 질 무렵

마지막 일광욕ㅡ


너의 단단하고 찬란한 날이여


영원하라

디카시 11. 일몰찬가.jpg


배경

서울 도심 한양도성 중 산중턱의 어느 공원, 산책로 주변으로 오래된 단풍나무가 있다. 육중한 몸통에 화려한 나뭇잎이 장관이다. 햇살이 비치면 붉은색은 검어질 정도로 붉어져 마치 불타오르는 것 같다. 그날도 햇살이 좋았다. 늦은 오후였지만, 나무는 마지막 순간까지 활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해가 지는 순간 같았고, 나는 그 일몰의 순간에 이 웅장한 나무의 최후에 찬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진

구도상 이 나무를 잘 담기 위해서는 밑에서 위로 클로즈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였다. 나무를 한가운데 두고, 세로로 1.5* 정도 담았다. 다행히 붉은색이 균형 있게 잘 담겼다. 나무 뒤로 이어 붙여진 듯한 작은 나무가 초록색 그대로였다. 두 나무가 함께 담기니 마치 불꽃처럼 살아있는 듯했다. 수직으로 세워진 나무를 중심으로 단단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진을 보니 이 구도에서 내가 마치 단풍나무를 ‘우러러보는 것’처럼 되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나무의 꼭대기까지 담은 것이 이런 장면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나무 뒤로 푸른 하늘이 펼쳐진 것도 보기에 좋았다.


그리하여 강렬한 붉은 단풍 + 높은 푸른 하늘이 만나는 모습이 되었다. 냉정과 열정이기도 하다. 순간, 일몰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단풍의 붉은빛이 우연히 지는 해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단풍의 붉음은 일몰을 상징하는 장치로 적절했다.


그렇게 보니 일몰처럼 자연의 빛이 ‘사라져 가는 순간’을 잎의 색이 대신한다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다. 또한, 나무와 잎은 하늘로 올라가는 형식이 되었고, 그 사이에 잎은 불꽃처럼 하늘로 흩어지는 모습이 선명했다. 결국, 잎과 잎의 경계가 사라져 버렸고, 폭발하는 솟구치는 열(熱)이 표현된 듯하다. 이 날, 단풍의 끝물이어서 소멸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

모두 세 개의 행을 여섯 구로 분절했다. 시어의 큰 흐름은 인간의 몸을 잇댄 나무의 외형-계절의 끝에 이른 단풍의 운명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이 불꽃처럼 피어오는 것에 대한 환호를 담았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일몰 찬가’라는 제목으로 집약했다. 이 늦가을 단풍잎이 지는 붉은 장면을 ‘일몰’로 해석한 것이다. 사진이 화려한 대신 시어는 담백하고 단순한 묘사로 조화를 이루려 했다.


1) “검붉은 피부 / 옹골찬 뼈”: 붉은 단풍의 색과 진갈색의 굵은 줄기 질감을 신체에 은유했다. 특히 단풍의 색이 붉어질수록 ‘검은빛’이 감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무줄기는 생물의 ‘뼈’에 비유했다. 옹골차다는 것은 꽉 차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구절은 외부의 피부와 내면의 뼈를 동시에 아우르려 했다. 외부에서 내부로의 시선이 옮겨지는 것도 의도했다.


2) “해 질 무렵 / 마지막 일광욕—”: 이 사진은 늦은 오후에 찍었다. 일몰이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해질 무렵이 되었고, 마지막 햇살이 나무 위로 쏟아졌다. 나는 이 장면을 늦가을 나무의 최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무는 서두르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여백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여 ‘일광욕’이라 쓴 것은 그 여흥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제 곧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떨어뜨릴 텐데, 겨울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애잔해진다. 이처럼 이 시구는 이 디카시의 중심적인 정서를 그린 것이다. 일몰은 빛이 사라지는 시간인데, 나무는 사라지는 빛을 몸에 새기며 장엄하게 ‘겨울로 진입하는’ 것이다. ‘일광욕’이라는 단어는 생명의 끝에서도 휴식·수용·평온의 분위기가 죽음의 엄숙함과 대구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3) “너의 단단하고 찬란한 날이여 / 영원하라”: 이 시구는 말 그대로 찬가다. 나무와 단풍잎을 향해 견실하고 화려한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빛나라는 소망을 담았다. 찬가의 결말답게 축도(benediction)의 형식이다. 계절에 밀려 소멸하는 시간 앞에서 기도하듯 말한 것이다. 이 시구는 내가 천착하는 시간변화·소멸·영원의 관계성을 적극 표현한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짧은 행과 명사 중심 어휘로 구성했다. 절제미와 단순미를 구사했고, 디카시의 의도인 사진의 강렬함을 적절하게 조율하고자 했다. 과도한 설명보다 정서적 여백을 충분히 남기고 싶었다. 나아가 시의 주제가 되는 '일몰 같은 최후 절정의 순간에 바치는 찬가'에 적합하게 구사하려 했다. 단풍은 가장 붉게 타오르는 순간(일몰), 이제 곧 떨어지겠지만, 그때가 자기 존재가치를 최고로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의도— ‘모든 것은 그 소멸의 순간에도 가장 아름답다는 찬미’

나는 한 웅장한 나무 앞에서 이제 곧 스러질 운명을 읽었다. 따라서 이 디카시에 담긴 핵심적인 의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소멸을 두려움이 아닌 ‘장엄함’으로 바라보기다. 가을 단풍의 붉음은 죽기 직전의 검은색을 닮았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을 슬픔이 아닌 영광의 순간으로 바라보려 했다. 둘째, 모든 존재의 마지막은 축복받아야 한다. “영원하라”라는 마지막 구절은 그 찬가의 절정이다. 마치 일몰(사라짐)의 순간이 오히려 영원의 시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섭리를 재현하려 했다. 셋째, 시간의 종말이 곧 절정임을 드러내는 사유라는 것이다. 세계는 검은색이다. 아무리 밝은 날이라도 어둠은 스며있다. 이 화려한 나무를 늦은 오후에 만났지만, 나는 마치 그 나무의 마지막을 보는 듯했다. 일몰은 가장 장엄한 시간이지만 이제 곧 스러질 것을 예견한다. 불꽃처럼 끝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은 곧 새로운 시작과 연대한다. 그리하여 이 디카시는 단풍이라는 ‘사라지는 생명’에 존재론적 가치를 추앙하는 의도를 담았다. 모든 나이 들어가는 것들에게 보내는 찬가인 셈이다.


정리 — ‘일몰을 대신한 단풍의 찬가’

디카시는 순간의 미학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순함의 조화인 것이다. 사진이 화려하면, 시어는 담백하게, 사진이 단순하면, 시어는 더 깊은 조어로 구성되는 것이 좋다. 이미지와 언어가 어긋나지 않게 조율해 주는 것이다.


이번 디카시의 사진은 색상이 화려하여 시어를 단순화하려 했다. 그러나 구조가 담백할 뿐 시어의 내용은 여전히 사진의 장엄함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했다. 붉은 단풍과 푸른 하늘의 대비, 수직으로 솟은 구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장면과 강인한 신체를 은유하는 피부와 뼈, 또 해 질 무렵이라는 시간의 최후와 그 틈에 여유를 누리는 일광욕, 마지막 축도, 영원하라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디카시는 소멸의 순간을 찬미하는 장엄한 시학, 절정의 순간을 영원성으로 승화, 자연의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읽어내기라는 문학적 가치를 어느 정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몰찬가」는 단순한 가을 디카시가 아니라
빛의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는
종말의 미학을 지닌 작품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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