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14. 설상가상 雪上架像
시작노트

by 푸른킴


동토,

하롱하롱

갈 잎 내리고


설국,

천천히

낙ㅡ

잎 품는다


눈 위에

별 핀,


케노시스


배경

며칠 전 폭설이 지나간 뒤, 날마저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서재 근처 개울가 둑방에는 잔설이 여전했다. 그 아래 물길은 많던 물이 어디론가 스며든 듯, 낮은 소리만 겨우 들려왔다. 흐르는 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잔설 위에 떨어진 단풍잎 세 장이 눈에 띄었다. 눈 위에 누워 있는 모양은 각양각색이었고, 마른 정도도 확연히 달랐다. 눈이 녹으면 그 모습이 사라질 것 같아,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진에 담아 두었다. 마음은 마른 개울에 가 있었지만, 눈은 잔엽에 닿아 있었다. 문득, 겨울은 제 모양대로 곳곳에서 고요히, 고즈넉하게 제 길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열어 보니, 누워 있던 세 장의 단풍이 마치 하나의 낙엽 같았다. 게다가 그 누운 모양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했다. 그 틈에 몇 자를 적어 보았다.


사진

이 사진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것이다. 잔설을 배경으로 삼고, 낙엽 세 장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다. 이 구도에서 얻은 효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진의 구도를 거의 수직으로 가르며 배경을 좌우로 나눠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 장의 낙엽을 일렬로 배열함으로써 마치 한 장의 낙엽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위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슬로 모션처럼 담아낸 결과가 되었다. 처음 찍은 사진은 빛이 잘 담기지 않아 조금 어두워서 약간 보정을 했다. 눈의 질감을 살리고, 진갈색 낙엽과 백색 눈 사이의 명암 대비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 장의 낙엽이 눈 위에(雪上)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하나는 반쯤 접혀 있고, 하나는 별처럼 펼쳐져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완전히 말라 형체가 거의 사라진 듯 보였다. 이 피사체들이 왼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을 연상시켰다. 내려오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형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 세 장의 낙엽은 눈 위에 수평으로 놓여 있지만,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오는 듯한 인상을 주어 하나의 낙엽처럼 보이게 했다. 그 조합 덕분에 거의 정물 사진에 가까운 긴장감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구도가 꽤 만족스러웠다.


이처럼 이 사진은 과도한 사물 없이 흰 바탕과 몇 개의 형상만 남긴 ‘미니멀리즘 구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빛은 강하지 않지만, 눈의 반사광이 살짝 번지며 사물을 비춰준 덕분에 피사체는 또렷하게 드러나면서도 윤곽선은 부드럽게 살아났다. 결국, 이 사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이미지, 곧 십자가의 본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해 주었다. 제목에 쓴 한자 ‘架像(걸다·세우다/형상)’은 바로 이런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다.


시어

1. 디카시의 중심축: 늘 염두에 두지만, 이번 디카시도 사진과 시어 중 어느 것에 중심 의미를 둘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물론 어느 한 편으로 완전히 기울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미의 중심축을 결정하는 것은 필요했기에, 나는 이 디카시를 사진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시어를 배열했다.


2. 제목에 대하여: 우선 제목부터 설상가상 雪上架像으로 결정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자성어인 ‘설상가상(雪上加霜)’을 뒤집어 패러디한 것이다. 본래 의미는 눈 위에 서리가 내려(加霜)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가상(架像)을 ‘형상을 걸다/세우다’로 바꾸었다. 나아가 ‘십자가의 모습’을 은유하려고 했다. 이로써 ‘눈 위에 더 나쁜 것(서리)을 얹는’ 부정적 의미에서 ‘눈 위에 어떤 형상이 걸린다/세워진다’라는 미적·신학적(십자가) 장면으로 전환했다. 결국, 눈+형상=‘눈 위에 놓인 하나의 성상(聖像, Icon)’을 떠올렸다. 결국, 제목에서부터 이 디카시는 ‘재난의 가중’이 아니라 ‘이미지, 상징 부여’로 뒤집은 문학적 변형을 시도했다. 이처럼 ‘십자가의 의미처럼 하늘에 내려오는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구성한 시어는 이렇다.


3. <1연“동토, 하롱하롱 갈 잎 내리고”>: ‘동토(凍土)’는 말 그대로 얼어붙은 땅이다. 동토는 겨울을 은유한다. 생명은 땅 속으로 숨어들어 땅 위는 거의 소멸과 정지가 지배하는 상황이다. 어느새 올해도 계절은 깊은 겨울로 들어섰다. 게다가 폭설도 내렸다. 기온도 떨어졌다. 햇살이 겨우 비치긴 해도 몸으로 느끼는 한기는 삭풍과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계절은 스산하고 몸의 정서는 을씨년스러웠다.


‘하롱하롱’: 이 의태어는 낙엽이 가볍게 떨리며 떨어지는 모습이다. 시인 이형기의 시 <낙화>(적막강산, 1963)에 사용된 이 부사는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떨어지는 꽃의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나는 이 정서를 빌려왔다. 한겨울 눈 위에 떨어진 낙엽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가볍게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사진 속 ‘정지된 시간’ 속에 낙엽은 ‘느리게 풀리는 움직임’으로 여전히 떨어지는 것 같다.


“갈 잎 내리고”: 의도적으로 나는 이 낙엽을 ‘갈 잎’이라 표현했다. 이 말은 조어인데, 우선 색채(갈색) + 동작(내리다)을 겹치게 두었다. 이로써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도록 구성했다. 그런데 다른 의미도 담았다. 갈 잎은 ‘가는 잎’ 즉 이제 삶을 다해서 생의 자리를 떠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이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리는’ 것과 같았다. 모든 눈은 내리자마자 죽는다. 결국 이 시어는 ‘삶을 마치고 떨어지는 갈색 잎이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라는 것을 그린 것이다. 이로써 이 시어에서 나는 동토(정지)와 하롱하롱(흔들림)의 대비를, 그리고 죽은 땅 위에서 죽어가는 나뭇잎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으로 살아있음을 표현했다.


4. <2연 설국, 천천히 / 낙ㅡ / 잎 품는다>: 이제 나의 시선은 눈 자체로 옮겼다. 사진 속 눈은 잔설이라 둑방 한쪽 일부분을 차지한 정도였다. 하지만 사진에는 마치 그 땅 전체가 눈으로 덮인 것처럼 프레임 속에 담았다. 하여 나는 이 사진 속 눈을 ‘설국’이라 이름 붙였다. 1연에서 말한 ‘동토’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인 세계, 나뭇잎을 가둔 세계를 그려내려 했다. ‘동토’가 겨울 땅에 대한 상징이라면, ‘설국’은 실제로 눈이 덮인 나라를 의미한다.

천천히: 이 부사어는 1연의 ‘하롱하롱’과 잇대어 있다. 다만, 4음절의 단어를 3음절로 축약해서 조금 빨라진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1연에서 하롱하롱은 잎이 내려오는 모습이라면, 2연에서 ‘천천히’는 눈이 잎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그렸다.


낙ㅡ / 잎 품는다: 이 시어에서 주목할 것은 ‘낙ㅡ / 잎’이라는 분절과 대시(ㅡ)와 줄 바꿈이다. 이로써 ‘낙-떨어지는 잎’을 시각화해보려 했다. ‘낙’을 길게 발음함으로써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고, ‘잎’을 줄 바꿈으로 써서 눈 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목하게 했다. 이로써 ‘낙잎’-떨어지는/떨어진 잎‘을 해체했다. 즉, ’떨어지는 행위(낙)‘와 ’떨어지는 존재(잎)‘를 분해했고, 그 모습을 연상하도록 시어를 재구축했다. 행갈이와 들여 쓰기는, 먼저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뒤를 이어 ‘잎을 품는 행위’가 따라오는 시간차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한편, ‘품는다’라는 동사는, 눈 덮인 땅이 수동적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떨어지는 잎을 품어준다는 것을 형상화했다. 곧 땅이 주체적으로 나뭇잎을 받아들인 것을 묘사했다.


5. <3연 눈 위에 / 별 핀,>:‘눈 위에’는 앞선 동토, 설국의 이미지를 이어받는다. 사진 전체를 꽉 채운 배경을 의미한다. ‘별 핀’은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이면서 독립적이다. 즉 ‘별이 피다’로 읽을 수 있고, 또 ‘눈 위에 별,’ ‘핀 케노시스’라고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이미지적으로도 별이 피어있는 모습이다. 나는 이 점을 염두에 두었다. 특히 두 번째 단풍잎의 모습이 완전한 별의 형체라는 것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핀다’는 꽃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는 이 서술어를 ‘별’에 적용했다. 그리하여 낙엽이 눈 위에 박힌 모습을 별이 피어난 듯한 형상으로 재해석했다. 실제보다 초월적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었다. 결국, 떨어진 잎은 곧 사라질 ‘쓰레기/잔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설국 너머 우주 안에서 살고 죽어가는 별과 연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떨어져도 별은 별인 것이다. 이 시어의 끝에 쉼표(,)를 두었다. 이제 마지막 단어 ‘케노시스’로 도약하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나의 정서도 한번 멈췄다.


6. <케노시스>: 이 말은 그리스어 κένωσις, “비움/자기 비움”을 뜻하는 신학 전문 용어다.(참조. 빌립보서 2장) 하늘의 존재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는 것을 상징한다. 자기를 최대한 낮춘 것이다. 나는 이 시어를 눈 위에 떨어진 낙엽, 죽은 것처럼 보이는 동토/설국,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품으며 별처럼 빛나게 하는 낙-잎과 연관 지었다. 성육신의 자기 비움, 죽음 속에 숨어 있는 생명, 소멸을 통과한 뒤의 은총의 빛으로 읽으려 했던 것이다.


이 시어는 결과적으로 이 디카시 전체를 ‘겨울, 죽음, 낙엽, 눈’이라는 현실에서 ‘비움, 품음, 빛, 성육신’이라는 상징의 축으로 이행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려 했다. 즉, 케노시스는 이 사진에 담긴 의미를 십자가 사건으로 전환시키는 축으로 기능하는 시어인 셈이었다.


의도

이 사진과 시어의 결합은 결과적으로 ‘재난의 축적’에서 ‘비움의 형상’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곧 ‘설상가상 雪上架像’이라는 제목을, 눈 위에 서리가 더해지는 비극의 심화가 아니라, 눈 위에 십자가 형상이 세워지는 구원의 도상(圖像)으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눈 위에 또 하나의 형상을 ‘더하는 것’을 불행의 누적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는 사건으로 읽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이 디카시의 시어는 죽음과 소멸의 풍경을 ‘품음’과 ‘별빛’의 언어로 전환한다. 동토·설국·낙엽 등, 통상 겨울의 풍경이 종말·소멸·허무의 상징이 되기 쉬운 요소들을, ‘하롱하롱’의 미세한 움직임, ‘잎을 품는’ 눈(雪), ‘별이 핀’ 눈 위의 낙엽이라는 이미지로 재배치함으로써, 죽음의 장면을 품음과 빛의 자리로 재정위한 것이다.


즉, 케노시스를 통해 비워지는 존재와 품어 주는 세계를 서로 마주 세운다. 낙엽은 자신을 비워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고, 눈은 그 낙엽을 품으며 설국의 하얀 품을 내어 준다. 이 대비를 통해 사진 속 장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전체를 케노시스의 구조로 해석하게 한다.


요컨대, 이 디카시는 스스로 비워져 떨어지는 존재, 비워진 자리를 내어 품어 주는 세계, 그리고 겨울의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도 자기 비움과 수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빛(별)이 피어오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정리

나는 디카시를 통해 사물을 관찰하여 그것을 언어에 담아내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사진을 찍을 때부터 거기에 시어를 덧붙이는 과정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사유의 여정과도 같다. 한 가지 늘 아쉬운 것은 시어의 확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물을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있을 텐데, 나는 제한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심지어 나만의 ‘조어’도 가능할 텐데, 아직 그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 편의 디카시를 작성할 때마다 할 수 있는 대로 언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고민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고민 속에서 다시 몇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우선 제목에 언어유희를 적용해 개념을 바꾸어 보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을 설상가상(雪上架像)으로 바꾸어, 아예 일상적 현상에서 신학적 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다.


다음으로, 형식과 내용의 일치는 내가 디카시를 쓸 때 늘 염두에 두는 지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음 다섯 가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첫째, “낙ㅡ / 잎 품는다”는 행갈이와 들여쓰기를 사용했다. 둘째, “별 핀,”은 각각 앞뒤에 이어지는 단어들과의 연관성을 중의적으로 구성했다. 셋째, “케노시스”를 단독 행에 배치하여, 그것이 ‘비움’과 ‘여백’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시각화했다. 넷째, ‘하롱하롱’은 눈 위에 잎이 떨어지는 동작을, 다섯째, ‘핀’은 꽃이 피듯 별이 피어나는, 돋아나는 순간을 상징화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과잉되지 않게 일상의 관찰을 신학적 주제와 연결하는 작업이다. ‘케노시스’는 그 한 예다. 이 디카시는 ‘자기 비움’이라는 대림절의 모티프를 설상가상(雪上架像), 즉 ‘눈 위의 십자가상’이라는 제목으로 압축했다. ‘떨어지는 이미지’는 바로 그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더 나아가, 고난의 누적을 통해 수난(십자가)을 형상화하는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 두었다. 결국 이 작품에는 ‘잎이 떨어진다’는 자연의 사건과 ‘신이 떨어진다(낮아진다)’는 신학적 사건이 이중 이미지로 겹쳐져 작동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눈(雪) – 냉혹한 동토, 그러나 동시에 순백의 품
(2) 가상(架像, 십자가상) – 떨어지는 몸, 매달린 몸, 비워진 몸
(3) 떨어짐(낙)과 케노시스 – 위에서 아래로, 자기 자리에서 내려오는 신의 하향성


그 결과, 이 디카시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낙엽 사진 하나를 겨울 풍경을 넘어 십자가–케노시스–부활(별빛)이 한 점에 응축된 아이콘(icon)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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