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서(越書),
나의 서평 쓰기에 관하여(개념, 4-1)

by 푸른킴

‘서평 쓰기’의 개념

2024년 한 해, 국내 8만 2천 출판사가 약 7,200만 부의 책을 출간했다. 이 중에서 나는 100권도 읽지 못했다. 그마저도 특정한 주제를 제외하면, 거의 제목과 목차만 훑어보는 정도에 그쳤다. 이런 실제 상황은 차치하고서도 나는 내가 읽은 책만이라도 그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살폈는지 생각하면 스스로 매우 아쉽다. 특히 서평이라는 장르를 활용해서 책의 면면을 제대로 드러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오늘도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책이 쏟아져 밀려든다. 그러나 그중에는 조금 읽히고 버려지는 책이 대부분이다. 읽은 이의 사유를 흔들지 못한 채, 스스로만 견고한 책도 있다. 유명세를 따라가기만 하는 책도 있다. 출판사의 과도한 의욕이 책을 뒤덮는 예도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달리 있다. 읽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은 그리 난감하지 않다. 오히려 책을 읽고도 그 책의 가치를 자기 글로 써내지 않거나, 그 책이 가리키는 삶의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책 너머의 책으로, 그 책의 미학을 일깨우며 입혀진 옷 같은 글로 독자로부터 서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움이다. 메타 서평이 없이는 책의 생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책의 길을 걸어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을 매일 인식하기에 나는 오늘도 책을 읽으면 글을 쓰려한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우주에서 하나의 작은 세계, 나의 발이 딛고 있는 한 움큼 땅으로 하향하는 낙하와 같다. 이미 지어놓은 다른 사람의 거대한 세계 위에 나의 미시한 세계를 덧대어, 나에게 맞도록 다시 짓는 새로운 건축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책 읽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더 나은 책을 위한 물결이라 생각한다. 다른 이의 책 읽기의 끝이 곧 나의 책의 시작이다. 서평을 쓴다는 것은 ‘그 책으로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라는 의미다. 만약 책이 세계를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책 자체의 힘만이 아니라 그 책을 읽는 이의 ‘서평’에 근거하리라.


내가 말하는 서평은 책에 대한 표면적, 인상적인 독후감만은 아니다. 그 책이 보유한 생의 지표를 현실로 끌어내는 사유의 싸움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서 나는 서평 쓰는 나의 방식을 지속해서 수정해 나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첫 번째 관심은 저자가 쓰는 개념의 내면을 잘 따라가는 것이다. 그 개념이 도달한 의미의 목적지까지 함께 걸어간다. 그 목적지에 이르러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본다. 하여 그 개념이 미처 언급하지 않았거나 독자에게 남겨준 여백을 찾아 나의 개념으로 재진술하여 다시 채운다. 이로써 나는 서평을, 책을 통해 책 너머를 읽는 새로운 독서라고 부른다. 이른바 ‘월서(越書)’이다. 메타서평이다. 책으로 책 너머를 읽고 새로 쓰기다. 책에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책이 정해 놓은 길만 걸으면 책의 내용 파악과 감상이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의 길을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면 마침내, 그 길의 끝에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출구를 보여주는 책 너머를 볼 수 있다. 그때 거기에는 내가 창출해 낸 새로운 지식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요컨대, 나의 서평은 책 너머의 글쓰기다. 아래 몇 가지 과정이 나의 월서, 서평 쓰기를 구성한다. 이는 단지 이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방식이 있듯, 내가 책과 세계를 바라볼 때 일어나는 몸의 한 반응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몸이 내 앞에 놓인 책을 따라 어디로 움직일지 나도 알 수 없을 뿐이다.


이제 나는, 이런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서평 쓰기의 개념을 실제 쓰기의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서평 쓰기의 목적을 다시 정리한 후, 나의 서평 쓰기 과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제안해 볼 것이다.


서평 쓰기 과정-목적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서평 쓰기의 목적은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감상이나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정리하여 나열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표현을 멋지게 서술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내가 그 책을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서평은 그 책에 대한 나의 비평적 견해를 당당하게 쏟아붓는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서평 쓰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서평 쓰기의 목적에는 두 가지 역할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하나는 스타일리스트의 업무다.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와 핵심 개념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같은 결의 새 옷을 골라 입혀주는 일이다. 동시에 방향 지시등의 역할이다. 그 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 책 너머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를 상상하게 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서평의 역할을 고려한 서평 쓰기의 목적은 저자가 꿈꿨던 세계, 그 너머를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과정 1-책 펼치기

서평의 첫 과정은 당연히 책을 펼치는 것이다. 이어서 제목과 목차와 저자의 머리말을 읽는다. 목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풍기는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이른바 정동(情動)과 감각(感覺)의 만남이다. 책의 논리적 서술보다 책 안에 흐르는 공기의 질감을 살피는 것이다. 목차는 저자가 내게 건네는 정동의 초대장이다. 나는 그 초대장에 저자가 초대하려는 세계가 어떤 무게감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 그 압력의 세기는 어느 정도인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초대장을 보며 별다른 생각을 하기보다 그 느낌을 감지하려 한다. 그리고 이어서 저자의 머리말을 읽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일어난다. “저자의 몸에 흐르는 정서는 무엇이었을까? 환희, 슬픔, 분노, 희망인가, 냉소, 체념 아니면 지식에 대한 자부심?” 하지만 어떤 것도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목차에 밴 정서는 곧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동기어(Leitwort)의 색조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결국, 목차와 머리말 읽기는 책의 기본 흐름을 파악하는 데 가장 먼저 거쳐 가야 할 읽기다.

서평을 위한 책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책 자체와 함께 그것을 읽는 내 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의 오감(五感)이다. 아니 육감(肉感)이다. 책 첫 장을 열었을 때, 내 몸이 어떤 느낌이 삐져나오는지, 당신의 몸에서는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가, 우리 몸은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예를 들어,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는 순간, 목차를 훑어 읽을 때, 어느 문단에서 유난히 오래 머무는지, 어떤 장면에서 상상과 함께 숨이 잠시 멎는지, 어디에서 목차의 다음 순서로 넘어가지 못하고 내 눈과 손이 멈춰있는지 민감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다양한 반응들을 하나의 감정 구조로 기억해 둔다면 아주 유익하다. 결국, 기억할 것은 책은 하나의 논증이기 이전에, 감정의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그 정동의 구조를 파악하는 관문이 목차이고 머리말이다. 그곳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책 너머로 향하는 어떤 길이 상상된다.


그래서 나의 서평은 종종 논지 요약에 앞서 이런 문장으로 먼저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냉정한 마음을 유지한다. 그 냉정함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겪은 여러 상처의 결과다.” 혹은, “이 책은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안쪽에 부드러운 마음이 숙성되어 있다.” 이렇게 첫인상으로 파악한 정동과 감각은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표면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과정 2-책 읽기를 통한 저자의 핵심 개념 파악

서평을 위한 두 번째 과정은 책을 읽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읽기는 책을 한 번에 빨리 다 읽는 것이다. 분량이 많다면, 1부와 2부 등으로 나눠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간격은 그리 길지 않아야 한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 번에 200페이지 안팎이면 적절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책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책을 구성하는 문장이나 작은 단락을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큰 흐름을 한꺼번에 ‘감지’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첫걸음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저자의 감성이다. 굳이 말하자면, 주제를 이해한다는 것과도 같다. 달리 말하면, 핵심 개념을 찾기 위함이다. 목차에서 예측했던 ‘개념’이 책에 반복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중간에 멈추지 말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다. 책을 덮었을 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으로 떠오른 ‘단어’나 ‘문장’ 있다면 그것이 서평의 키워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서평’은 책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리키는 책 너머의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안내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책이 반복해서 가리키는 ‘개념’을 붙잡아 그 ‘개념’을 재해석하고 확장하여 그 가치를 일깨워 주고, 그 개념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가치를 평가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책을 꼼꼼히 읽는다는 것과 책이 열어주는 길을 찾아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연구를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면, 모든 책은 빨리 읽기를 통해 상상으로 떠오르는 저자의 핵심 개념을 포착해야 한다. 서평을 위한 책 읽기에서 서평자의 기본 책무는 저자의 핵심 개념을 붙잡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 3-책 덮기를 통해 개념을 상상해 보기

책을 빨리 읽었다면 이제 책을 덮어야 한다. 책과 거리 두기다. 내용을 이해하든 하지 못했든, 남겨진 개념과 함께 책의 내용이 이미지처럼 떠오르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덮고 목차와 함께 읽은 내용을 상상해 보자. 대체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머물다 보면, 책의 잔상이 떠오를 수 있다. 문장이나 구절, 또는 단어가 이미지 형식으로 내면에서 살아날 수 있다. 이제 그것들을 붙잡아 메모해 둔다. 이것은 저자가 직접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저자의 잔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이 목차와 머리말에서 느꼈던 저자의 정동과 긴밀할 수 있다. 저자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을 한 포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을 나의 언어로 다시 써보자. 이 과정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그의 문자가 아니라 나의 이미지로 재구축하게 된다. 책을 덮어야 떠오른다. 책을 밀어두어야 그의 말에서 강조된 것을 붙잡을 수 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내 안에서 떠오른 것과 다르지 않다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메모하자. 문장으로 정리하자.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나의 서평 논지로 재구성해보자. 논지는 저자의 말이 아니라 내가 쓰려는 서평의 핵심 주제다. 결국, 서평은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과 정서를 토대로 내가 이 책에서 말해야 하는 ‘책의 결’을 드러내는 일이다. 논지는 그 결을 구체화한 문장이다. 논지의 구성은 ‘이 책에서 ~은 ~이다’라는 구조를 갖는다. 논지는 책 너머로 향하는 나의 도로이다.


요컨대, 서평은 이 책을 토대로 ‘나의 논지’를 펼쳐가는 것이다. 나아가 논지의 새로운 목적은 책이 미처 담지 못한 가치를 내 역량이 가능한 대로 충분히 채워주는 것이다. 책의 좌표를 더 정확히 정위해 주는 것이다. 독자로서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저자에 대한 답례이다.


과정 4-책 다시 읽기를 통해 이 책의 당대 담론을 찾아가기

논지를 통한 책의 재정위는 서평에서 목차 읽기만큼 중요한 과정이다. 이제 이 책이 어디를 향해 왔는지, 또 어디로 갈지를 파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책이 현재 어디쯤 위치하는지 결정짓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이 책이 확장될 학문적 범주와 나아갈 여정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개념의 확장이다. 이것이 서평자가 항상 주지하고 있어야 할 책임이다. 저자의 개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가능한 의미범주로 확장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개념, 또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저자가 말하고 싶었었으나 미처 다루지 못한 미완의 개념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책의 주요 개념이 어떤 사회적 담론에 이바지하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책의 좌표를 설정한다는 꽤 복합적인 문제다. 따라서 이 과정을 좀 더 세분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크게 보면, 이 과정은 책의 위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저자와 독자의 시대와 책이 다루는 사건과 논쟁, 책이 탄생한 구체적인 사회 공동체, 책이 관계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배열해야 한다. 이 책을 총합적인 관계의 거미줄 위에 놓는 것이다. 책이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저자가 직접 말해 주는 예도 있지만, 생략하거나 침묵할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과정이 선명하지 않은 책은 굳이 서평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서평이 대상이 된 책은 그 책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책의 사회적 탄생 과정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처럼 책의 개념을 찾고 확장한다는 것은 이 책이 지금 이뤄낸 개념적 성과를 비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평자는 신중하게 저자가 말하는 핵심 개념이 잘 구현되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우선 책 전체에서 이 개념이 어떤 기법과 방식으로 다뤄졌는지 파악한다. 개념을 주장하는 방식이 수사적인지, 변증법적인지, 평행법적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수사적이라면, 그 다양한 기법을 정리해야 하고, 변증법적이라면 개념이 정인지, 반인지, 합인지를 정돈해야 한다. 평행법적이라면, 저자의 개념이 어느 개념과 나란히 있는지, 또는 대구의 위치에 있는지, 또는 어느 개념들을 종합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요컨대 과정 4는, 서평자에 의해 그 책의 고유한 개념이 하나의 고립된 텍스트가 아니라, 시대와 학문과 사회 속에 자리 잡은 ‘지적 자극’이라는 존재성을 재위치 시키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과정 5-책의 지평선 너머를 직시하기

서평 쓰기는 당대의 관점에만 머물지 않는다. 곧 그 너머를 지향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와 견주어 책의 지평선 너머를 직시하는 독서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블랙홀 주변의 특정 경계면을 가리킨다. 외부 관찰자에게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다. 나는 이 용어를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지평선 너머의 세계로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서평 쓰기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와 같은 새로운 사건에 은유할 수 있다. 이는 책이 다루는 주제와 내용의 한계나 범위를 넘어서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책에 직접 쓰여 있지 않은 저자의 의도, 시대적 배경, 사회적 맥락 등을 직시하는 것이다.


직시(直視)는 주관적인 첫 감정을 토대로 내 앞에 놓인 책의 이성의 길을 나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책으로 들어가 새로운 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서평 쓰기란 책의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나 줄거리를 넘어, 마치 블랙홀 너머의 사건을 꿰뚫어 보려는 시도다. 책이 담고 있는 심오한 의미, 저자의 숨겨진 의도, 그리고 책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까지도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파헤치는 과정이다. 서평은 책의 지평선을 확인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 그 책이 가 닿을 수 있는 인식의 세계를 드러내 주는 광맥 찾기다.


이런 직시는 내 앞에 놓인 책을 이 세계의 다른 책과 직접 연결하는 책의 중매행위다. 나는 이것을 서평자의 비평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내 앞에 놓인 책과 결이 비슷하여 서로 옹호해 주는 책은 무엇이며, 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비판함으로써 제련해 주는 연금술사 같은 책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굳이 다른 책이 아니라도 나의 글을 통해 옹호와 비판의 주장을 솔직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천착하고 강조한 고유한 개념을 서평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 객관성을 확보하는 필수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서평자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안목,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평소 서평자의 다른 독서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말한, 서평 쓰기의 목적을 상기해 보면, 느낌과 감성으로 시작하여 이성과 지혜로 작성된 서평 쓰기는 저자의 책이 이 세계에서 태어나 항해를 시작한 이래 어디로 향하며, 궁극적으로 어느 항구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것이 서평 쓰기를 통한 지식 창발이며 지혜의 확대 재생산이다.


결국, 책의 주장을 서평자의 관점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이 과정이 서평 쓰기의 마지막 단계다. 저자의 주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 주장 너머를 보게 하고, 나아가 그 책이 다다를 수 있는 미지의 항구를 상상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향도의 역할이다. 저자의 주장이 나아가는 방향을 일러주고 그 너머로 나아간 결과를 전망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서평 쓰기는 책의 저자는 물론이고 독자도 향후 이 책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새로운 매듭을 공유하도록 돕는 중개적 독서다. 다시 말해 서평 쓰기는 독자가 저자의 책이라는 손잡이를 열어 새로운 사유의 세계, 내가 알지 못하는 나니아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돕는 경첩이다. 그 나라는 가깝게 내가 사는 우리의 사회다.


서평의 사회적 영성

이제 서평 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또 다른 문제인 ‘사회적 영성(social spirituality)’을 말하려 한다. 거듭 말하지만, 서평자의 책임은 바로 이 문고리를 찾아 안내하는 향도의 역할이다. 그 역할의 능숙한 수행을 통해 저자에게는 개념의 유연성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게 하고, 독자에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 사유의 재생산을 돕는 것이다. 서평 쓰기는 결국, 이 책이 다다를 수 있는 지평선 너머의 세계로 저자와 독자를 모두 안내하는 것이다. 이로써 서평 쓰기는 개인의 독서 능력을 고취하는 성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성의 결실이기도 하다. 이처럼 서평 쓰기는, 책이 직접 말하지 않는 지평선 너머까지 사유의 시야를 열어주는 메타 독서(Meta Reading)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서평 쓰기의 궁극적 목적은 책의 흐름을 끊지 않고, 더 멀리 이어 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이 늘어날수록 서평 쓰기를 통해 책의 생명을 더 견실하게 유지해 주기 위함이다.


서평 쓰기는 저자의 개념을 분석하여 그 좌표를 사회 안에서 재설정해 주는 확장된 독서이다. 저자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넓혀주는 것이다. 잘 구성된 책은 저자의 모든 내용이 그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학술서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시든 그 모든 것은 그 개념을 통해 저자의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사고를 규정하는 하나의 개념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나머지는 그 뼈대를 채우는 기능을 한다·이는 책이 관여한 당대의 문제와 그 너머의 시선이 종합되는 장(場)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영성’의 문제다. 여기서 ‘영성’이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지향성’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다시 말해 영성은 서평자의 시선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문제를 함의한다. 나아가 이것이 어느 정도 서평자 자신의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지향점도 아우르는 객관적 태도를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후자의 의미가 더 강화된다.


한편, 이 영성이 ‘사회적’이라고 할 때, 이 말속에는 ‘관계적(relational)’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다시 말해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해 서평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자와 독자 그리고 서평자라는 세 대상이 상호 관계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성은 각 개인의 삶의 배경도 아우른다. 저자-독자, 독자-서평자, 저자-서평자라는 두 쌍의 관계는 물론이고 삼자의 연합, 즉 저자-독자-서평자가 공유하는 삶의 자리를 포괄한다. 서평 쓰기란 어떤 책 다루더라도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갖는다. 이는 현재라는 시대에 공존하면서 그 시대의 경험, 양상,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것을 현재로 소급하여 지금의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나아가 여러 시공간의 경험을 중첩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문제를 현재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이처럼 동시대성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다. 따라서, 서평 쓰기의 사회적 영성이란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끌어들여 그것의 관계를 재정렬하고 재해석하는 메타 독서다. 서평 쓰기가 사회적 영성을 유지할 때 새로운 독서로 창발 한다.


이처럼 영성은 서평 쓰기의 내면에서 서평을 떠받치는 지탱력이다. 개인이 자기 안으로 홀로 깊어지는 명상에 그치지 않는다. 나와 너, 나와 그것, 나와 우리의 관계망으로 확장되는 팽창력이기도 하다. 서평이란 결국, 책이 제안하는 영성이 얼마나 사회적이고 관계적인가를 진단하면서 그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의 초(超) 개인적 영성이 총화 된 결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서평은 필연적으로 교회적 실천으로 귀결된다.


“이 책의 영성은 누구를 향해 열려 있는가. 혹은 누구를 배제하는가.”

“이 책을 따라간다면, 우리 교회는 이 사회에서 누구와 한 식탁에 앉아야 하는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교회는 이 세계의 가치관에 어떻게 지적으로 동의하며 미적으로 감상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가?”

“교회는 지금 누구의 친구인가?”라는 관계 윤리를 묻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에게 서평은 한 개인의 독서 기록이 아니라, 사회, 특히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가 누구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관계 윤리’를 묻고 답하는 ‘사회관계적 프락시스(social relational praxis)’이다. 요컨대, 앞서 말한 ‘지평선 너머,’ ‘항해,’ ‘항구,’ ‘문고리,’ ‘식탁,’ ‘관계 윤리’라는 이미지는 모두 서평 쓰기를 통해 실천하는 미래 지평, 관계 지평을 가리킨다.


결론-서평 쓰기의 윤리적 책임

내가 말해 온 월서(越書)는 사회적 영성의 관점에서 이런 관계 윤리의 서평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책이 출판되고 판매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고, 얼마나 읽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이 어떻게 읽혀 재확장되었는가 하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그 책의 위상을, 삶의 자리 안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한 좌표로 설정해 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 책이 지금 나와 너, 우리의 삶을 어디로 향도하는지도 면밀히 살펴주어야 한다. 결국, 책은 저자의 정서를 뒤따르는 독자가 얼마나 자기 언어로 재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빛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독자의 사유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책 너머의 책이 어우러져야 가장 ‘그 책(the Book)’답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이런 개념을 토대로 나의 서평을 통해 실례로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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