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김장 김치가 집에 온 날
0.
지난 겨울 내가 아는 아이 외할머니댁에서 김장을 했다며 맛있는 김치를 보내주셨다. 올초 김치 걱정은 안해도 될 터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땅끝 마을에서 다시 김치가 왔다.
1.
그 즈음 문자 하나가 왔다. 몇 해 전 신대원에서 히브리어계절학기를 수강했던 누구를 알고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 고향집에서 김치를 좀 나누려고 내 주소를 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가볍게 여겨도 될 거 같았다. 일단 주소를 보냈다.
2.
김치가 왔다.
뜻밖에도 분량이 생각이상이었다. 나에게 처음 소식을 알려준 사람에게 무슨 일로 이렇게 보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별일은 아닐 거라는 답이 왔다. 발송자 주소를 보니 연락처가 있다. 전화를 걸었다. 어린아이가 받았다. 의아했다. 곧 아빠가 건네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난 뒤에 말을 덧붙였다. 김치를 보낸 주소는 어머니 주소이고 자신은 나를 아는 사람의 동생이라고 했다. 발신자 전화번호는 자기 연락처이니 어머니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통화는 잘 연결되었다. 설명인즉, 해마다 김장을 하고 몇몇 교회에 김치를 보내드리는데 올해는 나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올겨울 잘 드시라고 덧붙인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3.
묵직한 김치묶음을 열었다. 여는 순간 젓갈냄새가 확 밀려온다. 설명할 것 없다. 양념이 알맞게 배어있는 그 '김치'다. 매콤한 고추가루가 몸을 각성시킨다. 맛은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라 망각한 적은 없었다. 열어둔 김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도의 김치를 잊어본 적은 없지만 먹어본 적은 꽤 오래되었다.일단 밥부터 다시 하기로 했다. 무쇠솥밥이다. 그 밥이어야 할 것 같았다. 손을 재바르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덜컹거렸다. 붉게 물든 김치, 한포기를 꺼냈다. 접시에 꺼낸 그대로 담았다. 배추가 도톰하니 보암직, 먹음직하다. 나름 유혹이다. 그래도 좋다.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10분이 길다. 나도 모르게 손이 김치로 향한다. 한 잎을 듣고 위에서 아래로 찢었다. 침이 먼저 넘어간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김치 끝부터 입안으로 넣었다. 어릴적 그 어디 쯤에 놓였던 김치가 내 앞에서 살아났다.
4.
어머니는 김치를 자주 많이 담그셨다. 내가 보기에도 틈나면 배추를 다듬고 항아리에 김치를 저장해 두는 일이 많으셨다. 부담없는 젓갈과 매콤달콤한 듯한 고추가루, 두툼한 배추살이 늘 절묘하게 조화되었다. 어린시절 친구 집 맛있는 김치를 잘 못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김치만 먹으려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더 이상 김치를 담글 수 없게 되셨다. 그 김치가 내 삶에서 끝나버린 것이다. 몸이 점점 약해지셨고, 결국 김치맛을 남겨두신 채 저 하늘로 먼저 돌아가셨다.
5.
오늘 포기김치를 보는 내내 나는 어머니의 '그 김치'를 생각했다. 같을리야 없지만, 가끔 그것이 그것같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 앞에서 삶은 한번 정갈하게 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는 맛있는 김치만 먹는다. 행복하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그 김치를 기꺼이 보내 준 남도 어느 곳의 그 어머님에게 감사한다.
그 김치가 돌아왔다.
어머니도 돌아오면 좋겠다.
마음이 물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