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오후, 인터넷이 끊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연결이 안 된 것뿐인데, 피가 흐르지 않는 모세혈관처럼 삶의 구석구석이 푸석해지는 느낌이었다. 티브이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급하게 검색해 보는 것도 괜한 데이터를 써야 하니 은근히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몸보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아쉬운 마음에 괜한 응석이 생긴다. 붉은빛만 껌벅대는 모뎀만 만지작만지작한다. 응급처치가 될 리 없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손이 바지런해진다. 소용없어도 뭐라도 해 보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런 일은 자가 해결 욕구를 빨리 포기하는 것이 마음에 이롭다는 것을. 빠른 고장 접수가 가장 지혜로운 해결책이다. 기계음 너머 휴일 근무자가 차분하게 응대해준다. 내일까지는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단다. 해결을 확답하지 않는다. 기다리면 해결된다는 자기 논리로 충분히 설명한다. 이제 시간이 해결자다.
정말 인터넷이 없다면
인터넷으로 세계는 연결된 지 오래다. 이 기계적 연대감은 나를 안정상태로 유지해준다. 다행히 www (World Wide Web, W3)의 고리는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그 견실한 연결 위에서 걱정 없이 정보를 얻는다. 삶의 필요를 채우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저기에 있고,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듯하다. 거리감이 사라지고, 장벽은 허물어진 듯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단절되는 순간이 급습할 수도 있다. 소통은 사라지고, 고립된 기분이 밀려들기도 한다. 막막하며 답답하다. 손은 우왕좌왕한다. 눈은 불안해진다. 말은 줄어든다. 단절은 이유 없는 두려움이다. 이처럼 w3의 세계는 손쉬운 연결이면서 무서운 단절이다. 연결은 나를 안심하게 하고, 단절은 나를 요동하게 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 단절의 질병이 심해지진 않았다. 나는 저 구석에 놓인 라디오를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옆에 라디오
잠시 고요한 시간이 기분 좋게 흐른다. 서재라면 당연히 라디오를 즐겼을 테지만 집에서는 라디오가 생경하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런 날은 자연스럽게 라디오라도 켜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집 안에 있는 라디오는 대체로 오래된 것이다. 기억할만한 사연 한두 개 정도도 담겨 있다. 거실 한쪽에 밀어두는 일도 많다. 어느 시절인지도 모를 먼지가 첩첩이 내려앉아 있기도 하다.
집에 있는 라디오는 몇 년 전 장모님이 투병 중에 기독교 방송과 찬양 테이프를 즐겨 듣던 사연이 있다. 돌아가신 뒤에는 (아마도) 한 번도 열어볼 일이 없었다. 사람이 무심하게 그대로 두는 동안, 라디오는 그 자리에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라디오를 켜고 즐겨듣는 방송을 찾아본다. 소리가 뒤섞이지 않는 주파수를 찾기까지 생각보다 한참 걸렸다. 이제 곧 라디오 속에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라디오 친구
라디오 속에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은 결국 라디오를 '친구'라 부르게 만들었다. 라디오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 같다는 것이다. 그럴만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 라디오는 기계이면서도 은근히 사람의 오감을 공유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인지, 사물의 철학을 논하는 함돈균은 아예 라디오를 ‘스타’라고 치켜세운다. 또한 “이 사물은 도구의 발명이 인간 감각을 어떻게 전환하는가 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라는 철학적 의미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함돈균의 이해에 따르면, 라디오는 인간의 감각을 공유한다. 그리하여 같은 시간, 같은 주제 아래 모여든 인간이라는 열성 팬(fandom)을 확보할 수 있는 독보적인 사물이다. 이 평가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늦은 밤에 이를수록 라디오 앞에 몸을 바짝 기대고 자기 감각을 일깨워 라디오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그런 평가에 이바지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열고, 자기 마음의 소리로 라디오 친구에게 화답한다. 라디오는 직접적인 대화 없이도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다. 이런 날에는 가볍게 지난 사진들을 열어본다. 라디오는 지난 사진을 열게 한다. 그래서 라디오는 어떤 이에게는 아마도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기대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인지 모른다. 그 징검돌의 이름은 ‘현재’라는 선물(present)이다.
라디오를 사랑한 사람들
생각해 보면, 최근에야 내 삶에 스며든 인터넷에 비한다면, 라디오는 인간사에 꽤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다. 우리 나라도 1927년에 시작했으니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졌다. 지난 세월 동안 숱한 역사의 변혁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라디오는 이 역사를 견인하는 간과할 수 없는 기제로 작용했다. 사람들의 삶에 그만큼 긴밀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시인 김수영의 예만 해도 그렇다. 1960년 격동의 시대를 전후하여 그가 라디오에 대해 보여준 시적 감수성은 호불호가 뒤섞여 지극히 복잡하다. 한편으로 지극히 불편한 감정을 내세웠다. 그는 「금성 金星 라디오」(1966.9)와 「라디오 계 系」(1967.12)에서 이 기계적 사물에 휩쓸리는 삶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유지했다. 다른 한편으로 솔직한 행복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기독교 방송(KY)에 출연하여 자신의 수필 「요즈음 느끼는 일」(1963.2)을 낭독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처음 하는 라디오 방송이지만, 격앙된 어조로 ‘해방감을 느낍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김수이, “1960년대, 김수영, 라디오-김수영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라디오’의 양상과 의미,”「현대문학이론연구」 제87집 (2021), 161-189 (176-177).].
이처럼 라디오에 대한 김수영의 뒤엉킨 감정과 태도에 대해 김수이와 김응교[『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1921~1968)』 (서울:삼인, 2023), 558-563.]는 큰 틀에서 비슷한 맥락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 주장들에 의하면 시인 김수영에게 있어서 라디오는 그저 라디오가 아니다. 이 역량(逆浪) 하는 '세계' 속에서, 그 세계를 향해 시인이 전방위적으로 투사한 ‘압축된 실물’에 가깝다. 나아가 격동의 60년대를 살아내는 시인이 가장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급격한 변화를 추동하는 문명의 기계에 대응하며 분투하려는 ‘표상’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이 욕망의 세상과 적절한 주파수를 맞추기 위한 개인의 고뇌를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인에게 라디오는 가장 일상적인 현실을 이 세계와 잇대는 인간 친화적 물질문명인 셈이다. 아마도 이런 점은 1980년대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인 퀸(Queen)이 부른 ‘라디오 가가(Radio Ga Ga)’에도 이어지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10대에 보낸 모든 밤의 친구이며, 모든 것을 그로부터 배운 것’이 바로 라디오라는 호소를 들어보면 그들의 노래는 곧 그들의 삶이었고, 그 라디오는 곧 사람 같은 그들의 친구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시대에도 라디오는 죽지 않는다
인터넷이 죽고, 라디오가 살아난 날, 나는 괜히 기분이 좋다. 나의 옛 친구, 라디오가 두 팔 다 뻗지 않아도 닿을만한 틈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렇다. 라디오는 언제나 빠르고, 현란하며, 정신없이 새로운 것을 쏟아내는 것 같은 착시는 없다. 하지만, 소리를 통해 볼 수 없다고 해도 존재하는 것을 자극한다. 자신의 소리를 삼키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에 가둬둔 음성을 꺼내도 좋다고 말해 준다. 누구든 자신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막힘없이 쏟아낼 때 좋은 세상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일깨운다. 소리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이 타인의 감정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나이 들었으나 라디오는 여전히 젊다. 시대의 미물로 전락했다지만 여전히 생생한 소리다.
모처럼 집에서 라디오를 열었다가
내 생각이 땅의 소리를 듣고
하늘로 내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