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때에는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낮춘다. 코로 숨을 힘껏 들이켰다가 목덜미가 간지러워질 때쯤 가득 머금은 숨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공허해진 흉곽을 느끼고 가라앉은 귀를 나에게 기울인다. 그러면 저 앞에, 어딜 향한지 모를 뒷모습의, 한 레이디가 보인다.
저 레이디에게도 설렘으로 잠 못 이루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 멈추면 폭발하는 2525번 버스처럼 이번 고민과 다음 고민을 양팔에 안고 정신없이 제자리를 달리고 있다. 어쩌다가 그녀는 이번 고민의 해결과 다음 고민의 시작, 그 사이의 붕 뜨는 간격조차도 불안해하게 됐을까.
폴짝거렸던 날들을 떠올리며 가끔 피식 웃기는 하지만, 물결을 유유자적 오르내리는 뗏목이 될 생각도, 온 힘을 다해 나아가려는 노가 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저 노가 딸린 뗏목 위에서 표류의 막막함과 공허의 두려움을 안은 사람인 채로 있고자 하는 듯 보일 뿐이다. 마침내 나는 악몽을 끊어내려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뜬다.
그러고는 오늘 피고 진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순응이라 믿고 싶었던 것들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습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함에 몸을 털썩 누인다
잠시의 우려와 다르게 이내, 창밖의 3층 높이까지 큰, 나무를 보며 안심한다. 그 나무의 어린 시절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제쯤이면 나도 내 옆의 나무처럼 저렇게 큰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막막해하던 키 작은 시절의 그 나무를 그냥 그려 세워보는 것이다.
멈춘 것 같은 달팽이의 움직임도 달팽이에게는 매 순간이 변화일 테니, 지나온 길을 없던 일로 여기지 말고 그냥, 창문 높이까지 커, 지면에서는 정수리를 볼 수 없는 나무를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미소를 띠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