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쓴이의, 나는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지 않는다는 말에 어, 나돈데 하면서 괜히 내 예전 노트들이 어디 있나 책장을 뒤적거렸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기웃대다가 슬쩍 책장으로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기웃댔다. 그러다가 가장 아래쪽에서 노트 무더기를 찾았다.
그냥 그 노트들이 잘 있는지를 보려고 한 것인데 손에 쥐고 나니, 2012년 즈음에는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그 시절 손에 딱 들어오는 게 마음에 들었던, 터키색 노트를 펼쳤다.
버섯, 소나무, 편지, 바람 같은 제목 아래마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 두서없이 적혀있었다. 무리를 지어 있기도 했고 달랑 한 문장만 있기도 했다. 하루에 하나씩 랜덤으로 주제를 정해 글을 써보자 뭐 이런 거였던 것 같다. 많고 많은 쉬운 단어 어디에 갖다 내버리고 어려운 단어를 가져다 붙여 완성된 허세 가득한 문장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 빼면 제대로 된 문장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누가 볼까 봐 무서운, 내가 보는 것도 무서운 그런 수준이었다.
나는 종종 글쓰기에 무력감을 느꼈다. 아마도 글 권태기에 빠졌기 때문인 것 같은데, 방금 막 쓴 문장도 한 줄 내려와서 읽어보면 진부하고, 말투도 뻔해, 단어, 전개, 형태도 뻔해서,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워!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내 문장이 초라해 보일 때 그랬다.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 글을 써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많이, 아니 아주 많이 우습다. 이런 걸 보면 권태기는 얼마나 깊게 사랑하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가와 비례하는 건 아닌가 보다.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정말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에, 모든 글쓰기를 멈추고, 대신 도서관에 가 남의 글을 읽었다. 도대체 어떤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걸까, 어째서 사랑받는 작가가 된 걸까, 에세이를 읽고, 소설을 읽었다. 나는 쥐뿔이 그것보다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몇몇 작품은 딱히 잘 쓴 글인지 모르겠었고, 책 한 권도 내지 못한 주제였지만 그럼에도 몇몇 작품에 대고 이런 게 책으로 나온다고? 고개를 저으며 씁씁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니, 정말 오래된 작가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는 걸까 하고 답답해하다가 결국 답을 못 찾았었다.
얼굴이 벌게지면서 터키색 노트를 읽는데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는 것 자체가 어쩌면 발전일지도 몰라. 아주 미세하게 말투, 단어, 전개, 형태 이런 것들이 꾸물거리며 성장하는데 눈치를 못 챘던 것일지도 몰라하고 말이다.
나는 허허 웃다가 갑자기 신나는 마음이 들어 터키색 노트를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형광 주황색 노트를 폈다. 어제 쓰다가 두 줄 그은 문장들에 가련한 마음이 들어 그대로 다시 적었다. 다시 봐도 진부한 문장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냥 계속 쓰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훗날에는 이 문장들이 또 나를 부끄럽게 할지 언정, 쓰레기 같이 보이게 될지 언정, 꾸물거리겠다는 걸 구태여 막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재능이 좀 없으면 어떤가. 내가 갸웃뚱한 베스트 셀러가 누군가에게는 잘 읽혔을테니 분명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혹시 한 명도 없다면, 또 그런대로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럼 내가 사랑해주면 되지.
그럼에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이 언제까지고 유치하지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같이 끝나가는 게 아까운 글을 쓰고 싶다. 근데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