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받는 이에게
오래전에 사놓은 키다리 아저씨를 펼쳤다.
새로 온 편지를 읽고 봉투에 다시 집어넣으며 다음 편지를 기다릴 키다리 아저씨가 부러웠다.
예정된 편지만큼 설레는 것이 또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을 짧은 간격의 순간마다 전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몇 날 며칠의 일들을 묵히고 묵혀두어 종이 몇 장에 담아 보내는 것은 실로 멋진 일이다.
편지지를 고르고, 자리를 잡고 앉아, 가장 예쁜 글씨체로 써지는 펜을 골라,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할까를 고심했을, 보내는 이의 모습이 그려져 편지를 받고 봉투를 찬찬히 살핀다. 편지를 꺼내, 보내는 이의 글씨체조차도 몰랐단 것을 깨닫는다. 그와 나 사이의 얕고 옅은 색의 담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 있는지조차도 몰랐던 작은 누수 같은 것이다. 쓰는 이가 온전히 드러나야 한다는 것은 이토록 멋쩍은 일이다.
편지와 부피 있는 물질이 짝을 이루는 것은 선물의 당연한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마치 특별한 날에만 쓸 수 있는 특별한 글이 되었다. 편지가 단순히, 부피 있는 물질이 받는 이에게 다다르기 전, 형식적으로 따라붙는 브랜드 라벨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해 조용한 반항심이 생겼다. 그래서 편지 한 통이 그 자체로, 부피 있는 물질의 자리까지 채워, 그 부재를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일방적인 편지글을 쓰기로 했다.
안녕? 잘 지내니? 일단 생일 축하해, 결혼 축하해, 메리 크리스마스 혹은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는 요즘 어때! 너는 어때? 저번에 말했던 그거 있잖아, 그거더라? 우리 어느덧 친구가 된 지도 몇 년이 흘렀네. 세월 참 빠르다. 그럼 이만 글을 줄일게. 건강해.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결혼 축하해, 메리 크리스마스 혹은 새해 복 많이 받아.
몇 월 며칠 누구누구가
물질로 가는 길 사이에 잠시 들르는 글 말고, '받는 이'와 '나' 사이의 사적인 이야기. 하지만 모두가 '받는 이'와 '나'가 될 수 있는 이야기, 곳곳의 사건사고가 계기가 되어 스치듯 깨달아왔지만, 어느새 무딘 공명(工鳴)이 되어 공중에 분해되는 외침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