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오래오래 사세요.’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외식을 했다.’
죄다 엄마 그리고 그다음 아빠다.
어느날, 아빠는 소파 아래에 나는 소파 위에 앉아 특선 영화를 봤다. 아빠는 원래 아는 게 나오면 덧붙여 설명을 했는데 그래서 영화 대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그런 상태가 됐다. 나는 그게 좀 싫어서 아빠와 같이 영화를 안 보려고 해왔으나 마침 봤던 영화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고 싶은 날이었기 때문에 아빠 뒤에 슥 가서 앉아 영화를 봤다. 근데 그날은 아빠가 설명을 안 했다. 나는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삐쭉 내밀고 아빠 표정을 기웃거렸다.
아빠는 처음에는 눈을 몇 번 비비더니 코를 훌쩍였다. 나는 놀라, 아빠 울어? 라고 묻자 아빠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 라고 했다.
엄마는 갱년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뭐 이런 거 가지고 울어, 라고 웃어 넘겼는데 사실 말로만 그랬다. 아빠는 왜 울었을까.
아빠가 눈물을 훔친 까닭은 한껏 올려 입던 청바지를 입기에는 배가 너무 나와버린 까닭,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현재를 걱정하기에도 벅찬 까닭, 야구 한판 하기에는 TV 경기를 볼 체력밖에 안 되는 나이인 까닭, 밤새 나이트 음악에 몸을 맡기기에는 시계 초침을 노려보고 있는 가정이 있는 까닭이 아닐까.
아빠는 이후에도 영화를 볼 때마다 소파 아래에 앉는다.
스무살 초반의 나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고
그것은 무조건 아빠 탓이었던 때다.
스무살 중반에는 아빠 뒷모습에 눈이 갔고, 서른에 가까워지니 소파 아래에 앉아 훌쩍이던 아빠 뒷모습에 눈이 갔는데, 서른이 넘으니 아빠라는 존재에 아릿한 마음이 든다. 이게 아빠와 딸의 필연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