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할 수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 주의 : 주연배우의 지인이 썼기에 매우 주관적이고 편파적일 수 있습니다. 편파적입니다.
20여년 전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개봉했을 즈음에 보았다면, '어쨓든 불륜미화 작품이네'라고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일지라도, 이것도 결국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로 가족들에 대한 무책임에 대한 변명이라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처음 영화를 보며, 불륜 이야기 외에도 선택에 대한 책임, 자신의 삶에 대한 충실함으로도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면서, 개개인이 가진 꿈과 삶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때 사람들간의 공감과 공명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1.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영화와 달리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를 설명하는데 도입부의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이태리 나폴리에서 태어났지만 2차 대전의 상잔 속에 옥수수 농장이 대부분인 오하이오 시골마을로 이사온 그녀. 이탈리아에서 가졌던 취향은 존중받지 못하고, 선하지만 짜여진 규칙대로 살아야만 하는 이웃들과 지내야 하며, 농부와 결혼하는 뻔한 삶이 싫다는 딸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위로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받아들였던 그녀.
그렇기에 남자주인공 로버트가 건드린 건, 단순히 프란체스카의 여자로서의 욕망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한 의지라는 점이 느껴졌다. 현재 나폴리의 모습을 나눌 때, 프란체스카의 그림을 칭찬할 때, 야채 스튜를 즐기고 설거지를 자발적으로 하려고 할 때(지금으로부터 50년전 점이라는 감안하면 더욱) 그녀는 자신의 삶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에, 살아있음의 감각을 공유하는 살마에게 끌리는 상황은 이해할 만 하다.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에서 하이트라이 대사인(가장 느끼하기도 한)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라고 이야기하는까닭은, 오하이오 동네에서는 발견되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외부인인 그를 통해 빛났기 때문일 것이다. 읽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악했던 것은 아니다. 프란체스카의 그 전의 삶이 무가치했던 것도 아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온 그녀의 삶을 오직 희생뿐이었다고 말할 수 없고, 주변 사람들도 환경 내에서 '내가 정말 무얼 잘못했어'라고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했기에, 프란체스카의 이런 모습에 황당해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점에서의 최선이었기에, 그것이 프란체스카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바라봐 주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매디슨카운티'에서만 그렇지 않고,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다.
2.안정적이지 못한 다른 선택도 이해한다면
프란체스카가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만큼이나, 마을사람들이 로버트에 대해 가진 편견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전세계를 사진에 담기 위해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는 그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잘 씻지 않고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는 히피라고 규정을 짓는다. 자신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게 남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내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직업들을 거쳐가며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아서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다. 물론 내 나약함과 갈등회피도 선택의 이유 중 일부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질문과 시선에 마음이 지치거나 다칠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고 잘못한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더라도 옳은 것도 아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 자체가 옳고 그름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그 길을 가고 있느냐는 것.
그리고 과정 가운데 생기는 시행착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영하느냐고 생각한다.
평범치 않은 길을 가는 친구의 공연이지만, 그 친구에게도 나의 삶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어서였을까.
뭔가 그 장면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3. 동감하지 않았지만 공감했기에.
뮤지컬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는 영상을 통해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잘 전해지는 듯 하다. 주연 배우들이 캐릭터의 몰입도가 좋기에 전달력도 높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대극장뮤지컬에 비해 흐름이 잔잔하기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또한 조연배우들이 소품을 운반하며 두 주인공을 감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역할을 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측면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로 작품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서로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들에게는 그 4일이 인생의 정점이었고, 계속해서 그 사랑을 추억하면서 힘을 얻었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되, 선택을 고민했던 이유를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여전히 나는 도덕적 윤리가 중요하기에(혹은 아직 나의 준거틀이기에) 떠나려고 했던, 그리고 떠나고자 했던 모습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마음을 가졌고, 그 후로 그 사랑을 얼마나 소중하게 기억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동감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때,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선택에 이유가 있음을 알 때, 삶은 조금 더 충만해지지 않을까. 마지막에 남은 후회가 조금이라도 적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