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과 '친하다'를 오해하지 않는다면
1. 트레바리 없는 2018년의 시작
은퇴한 운동선수들은 1~2월 항상 가던 전지훈련을 떠나지 않을 때, 삶의 패턴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처럼 익숙했던 습관과 행동을 더 이상 해도 되지 않음을 깨달을 때, 허전함과 어색함이 느껴진다.
2018년을 맞이하며 나에게도 작년의 루틴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더 이상 트레바리에 가지 않는 것.
2017년 세 시즌(하나의 시즌은 4개월) 동안 빠짐없이 총 4개의 클럽(5~8월은 두 개의 클럽 참여)을 하고, 3회의 타클럽 방문(모두 같은 클럽을 같으나)을 했던 트레바리. 그래서 매달 일정을 확인하고 이 달의 도서를 읽고 번개도 종종 나갔던 트레바리인데.... 2018년에는 한동안(최소 4월까지는) 매달 챙기지 않아도 된다.
돈과 중요도가 항상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경우도 많기에 ㅎㅎㅎ
2017년 가입비로만 125만원 -클럽당 29만원*4개의 클럽+놀러가기 3만원*3개 - 내 수입과 비교하면 상당한 거금을 지출했기에( 작년에 여러 정기모임의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큰 지출은 한 모임은 없었다) 나에게는 큰 투자요 탐구일 수밖에 없었던 트레바리.
그래서일까. 새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나에게 트레바리는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고 싶어서,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나누었는지 정리해보고 싶어서, 손호석의 2017 트레바리 경험담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2. 트레바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지극히 사적인 돌아봄이고 이미 언론( 개인적으로는 이 리뷰가 트레바리뿐 아닌 다양한 유로 독서모임을 조망해서 좋았음) 에도 많이 보도되었으니, 트레바리에 대한 상세 설명은 생략.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레바리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슬로건보다 가격에 주목하리라 생각한다. 4번 모임에 19만원 혹은 29만원. 모임공간과 식수는 제공하지만, 책이나 커피/음료를 제공해주지도 않는데 이 가격이라니!. 19만원/29만원의 상대적 가치는 소득/성향 등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기존 독서모임 등과 비교했을 때는 상당히 높은 금액임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트레바리 회사도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시간 자체만으로 금액을 책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노동에 대한 가치 추구와는 별도로)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라는 설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생각과 관계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기회', '공통의 관심사를 가졌지만, 생각은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이고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겠지만, 평상시 만나기 힘들었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클럽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무시 못할 요소. 우선 나에게는 중요했다.)
위의 상황을 바탕으로, 어쨌든 적지 않은 금액(+시간 투자)이라는 진입장벽을 넘은 사람들이기에,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온 모임은 아닐 것이라는 참여자들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우선순위인 분들(이 분들에게는 트레바리의 정체성이 '소셜 사교 커뮤니티'에 더 가까울지도. 뭐 그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가격은 장벽이 아닌 유인책이 되니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괜찮고 )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적지 않게 집어넣은(^^) 돈이 있기에, 본전(?)을 뽑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선순환을 이끌어갈 수도 있다.
3. 나와 트레바리의 적합도는..... 결국 나에게 달렸었구나.
* 개인적인 입장이 많이 들어있답니다.
트레바리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대기업 종사자/스타트업 종사자/전문직 종사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100%는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정확한 통계수치가 없다......) 다루는 주제의 특성과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의 진입장벽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 직종의 비율이 많을 수밖에 없다.(나의 경우 어떤혁신 넥스랩/커리어라는 클럽의 주제상 더욱 그러하였겠지만)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사람들의 참신한 시각'은 상대적으로 집-회사 중심의 패턴으로 지냈던 분들, 다른 분야와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분들에게 보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듯하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트레바리라는 모임은 상대적으로 덜 새롭게 다가왔다. 물론 참여했던 4개의 클럽 및 놀러가기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특별히 모임을 잘 이끌어주신 클럽장/파트너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기존 내 삶의 궤적에서 매우 만나기 어려운 분들, 들을 수 없는 생각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양한 직업과 업종을 방랑(^^)하며 여러 분야의 이야기들을 주워 들었고, 2017년에도 일상의 정치/조직의 변화/퍼실리테이션 등을 주제로 하는 모임 등에 정기/비정기적으로 참여하였기에 큰 맥락에서는 유사했을지 모른다. 돈주고 산 것에 집착하는 나의 특성상 물론 내 일상의 중요한 모임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One of Them인 모임이었다. (2018년 첫 시즌 신청을 안 한 이유 중의 하나. 작년의 선택으로 수입도 많이 줄어들어 금액도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꼭 참석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 상황상 1월은 어떠한 모임이나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에 집중하겠다는 다짐도 있고)
그.런.데.말.입.니.다.
위의 내용은 일반론이고, 트레바리의 기회를 풍성히 누리지 못한 원인은 결국 나에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지/역랑/인격이 있었다면 트레바리가 열어준 가능성을 통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함께 클럽을 했던 멤버들과 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싶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연락하며 일/생각을 나누는 사람은 없는 현실을 돌아본다면.... (누군가는 이런 바램 자체가 욕심이요 오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관계의 형성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계속 연락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인간적인 편안한 매력을 가졌거나, 겸손한 자세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고 싶도록 잘 들어주거나, 인사이트를 주는 콘텐츠를 가졌거나, 일이든 사조직이든 무언가를 같이 해보고 싶은 특징이 있는 사람이거나..... 트레바리 모임시 태도의 이슈이든, 혹은 본래 나의 인격과 역량의 이슈이든, 자신 있게 예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객관적인 요건이 미니멈 이상 채워졌다면(트레바리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모임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느끼냐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트레바리에서의 나는 충분히 경험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낯선] [생각]을 [제대로] 한다는 것.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습관]이 된다는 것.
그리고 마음껏 그 생각들에 빠질 [아지트]가 생긴다는 것.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이 ‘경험’은
사회생활 속에서 너무 옅어진 '원래의 나'를 조금 진하게,
혹은 너무 견고해진 '원래의 나'를 말랑하게 만드는,
가치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4. 트레바리를 향한 나의 마음
트레바리가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분도 자신의 사실을 말한 것이고(내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좀 더 많겠지), 허영있는 사람들이 책보다는 가십을 나눈다고 느꼈던 분도 자신의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기존 모임에서의 경험(예를 들어 좀 무게있고 책 자체에 집중하는 독서모임 등을 했다면), 트레바리에 대한 기대 및 이해도, 그리고 어떤 클럽에 참여하였느냐에 따라 편차가 적지않게 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트레바리 전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클럽장이 없는 경우 아직 분위기의 차이가 큰 것으로 알고 있기에. 또한 본의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던 인터뷰 - 이성을 만나러 왔든, 돈이 남아돌아서 왔든 1달에 1권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같다” 등으로 트레바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느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지인 중 한 명은 본인의 상황과 비교하여 뒤풀이가 너무 고급지게 진행되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트레바리에 아쉬움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다.(여기서부터 좀 쪼잔해진다) 2분기 시말파티 4일 전 다쳐서 취소를 요청했는데, 환불은 불가능하니 알아서 멤버들끼리 교환하라는 메시지를 주었을 때. (매진이 아니었기에 멤버간 환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부 금액을 제하고 환불했다면 이해하겠으나, 그래도 수십 명이 참석하는 행사에 4일 전 요청에도 전액 환불 불가는 너무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이번에는 쪽팔리다) 6월의 다음기수 주제 제안, 10월의 파트너 신청을 했으나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하였을 때. 물론 당시 급하게 모바일에서 쓰느라 스스로 돌아보아도 성의 없게 작성하기는 했으나(그 점은 반성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트레바리의 이미지와 차이가 커서 유쾌하지 못한 '소비자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트레바리는 여전히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간 수십명에서 시작하여 2년만의 1500명 정도 회원으로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상당히 높은 비율의 재가입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99%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성공시킴으로서 사람들의 시야를 깨워준 점도 그러하다. (사족으로 독서모임은 무조건 고상하고 숭고해야 할 것처럼 강요하는 태도는 불편하다. 실제로 연애도 함께 염두에 두는 수많은 다른 독서모임/운동모임/와인 독서모임도 있지 않나. 독서가 세계의 확장의 역할을 함을 생각해볼 때,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나누며 더 큰 확장을 할 수도 있다.)
트레바리가 앞으로도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동시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고, 트레바리가 생각하는 '지적으로'와 '친하게'와 같은 언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그들과 보다 잘 커뮤니케이션하기를 바란다. 무조건 싫고 비난하는 사람을 설득하는데 진을 뺄 필요까지야 없다. 하지지만, 어떤 특성과 성격을 가진 커뮤니티인지 사전/사후에 조금 더 정확히 알리고, 생각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잘못된 사람들로 쉽게 규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트레바리와 그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은,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 어쨓든 나도 2018년 언젠가부터(빠르면 2월 늦으면 5월....) 독서모임을 할 듯 한데, 어떤 모임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파악이 덜 되어서 그런가.
* 이 글은 트레바리 관계자와의 아무런 정보도 없이, 속사정은 전혀 모른채 쓴 글입니다. 저 조직문화 탐구생활 2018년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고 그 가운데 트레바리도 매우 궁금하니, 트레바리 크루분들 인터뷰(가 아니면 잡담과 수다라도)해 주셔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