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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Apr 22. 2018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귀기울이다.

칼리스토(Callisto), 성폭력 피해자들을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  

1. 성폭력, 왜 신고하지 않았냐고요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잘못된 위계구조 및 편견 등으로 인하여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받은 개인/집단의 고백과 선언이 있고, 반성과 함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위의 가상의 예시처럼, 안타깝게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폭력(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을 통합하여 표현하겠습니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선정적인 언론과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사회의 시선으로 2차 가해를 경험할 수 있고, 각 개인이 속한 조직에서 서 여러 모습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Callisto는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비영리 단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특성과 기술의 발전을 연결하여, 의도치 않는 상처 없이 피해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함께 대응하는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2. 성폭력 피해자들을 이해하며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

칼리스토 홈페이지 소개글


 칼리스토(Callisto)라는 명칭은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 신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헤라의 질투로 곰으로 변하는 요정에서 따 왔습니다. 조직의 이름에서부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잘 느껴집니다. "성폭력과 싸우고, 피해자(영어 원문에서는 survivor.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를 돕고,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라는 미션을 기반으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창립자 제시카 래드. Ted 2016 발표 중 사진


 단체의 창립자 제시카 래드(Jessica Ladd)는 대학 시절 학교에서 성폭행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위의 사례처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례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2017년 전미대학협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교 내에서 여성의 20%가 성폭행(Sexual Harassment)을 당하지만 신고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또한 사건 발생 후 신고까지 평균 11개월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대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지요. 성폭력의 90%가 상습 가해자에 의해 발생하는 현실에서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알려지면 상당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더 빠른 신고가 일어나도록 촉진해야 할 필요는 분명해 보입니다. 

 제시카 래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전염병학을 전공한 제시카는 사람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왜 신고하기 어려운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피해자와 대화하며, 그들이 바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성폭력 심리 상담 전문가 등과 함께하며 그는 피해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언제 어디든 접속할 수 있으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된 정보와,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할 사람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전공분야인 네트워크/기술 및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칼리스토를 만들고,  2015년 2개의 대학에 도입하였습니다.

칼리스토 프로세스에 대한 소개. 피해자가 작성하면, 동일한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가 있을 경우 매칭이 되고, 그 후 학교 담당자가 칼리스토의 카운셀러에게 관련 정보가 보내집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관련된 피해 사실을 가해자의 신원과 함께 Callisto 페이지에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신고하지 않더라도 증거를 남길 수 있지요. 정보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게 암호화되었다가,  동일한 가해자에 대한 다른 피해자에 신고가 들어오면,매칭시스템을 통하여 관련 담당자(대학일 경우 성폭력 관련 부서)에게 전달됩니다.

 이는 혼자서는 외롭고 많은 증명이 필요하지만, 함께 하면(Callisto의 경우 이해관계가 전혀 없었던 피해자들 간의 연결 포함) 보다 분명한 신빙성을 얻고 피해자들 간 심적 격려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였습니다. 칼리스토의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가 나 혼자가 아님을 이해하는 순간 잘못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피해 경험을 돌아보는 방식과 가해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합니다.

 기존에는 힘을 합치려면 한 명의 용기 있는 사람이 어떠한 일이 펼쳐질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칼리스토를 통하면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다른 피해자와 함께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Escrow(에스크로우)라는 중계 기술 (입력한 정보는 암호화되기에, 이메일 주소 등을 기반으로 한 가해자 매칭이 되기까지 칼리스토 직원뿐 아니라 누구도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로 인하여 잘못된 2차 피해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진실게임 공방이 되어 본질이 아닌 사소한 내용에 집착하거나 과거 행적을 들추기는 'He said, She said'  구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He said, They said'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신원이 아닌 그들의 피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바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즉 두 번째 피해자가 있어야 가해자를 확인하는 칼리스토의 방식)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첫 피해자에게 모든 예측되는 피해를 감수하고 밝히라고 강요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칼리스토는 성폭력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3. 잘못된 평형의 균열을 일으키다


 2015년 2개의 대학교에서 처음 칼리스토를 사용한 후, 많은 학교와 학생들의 호응을 얻으며 확장되어 2018년 현재 13개 대학교가 Callisto를 사용 중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피해에서 지키기 위해서. 자신과 같은 가해자에게 그런 경험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가 참여의 가장 큰 이유라고 하네요. 2017년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보다 5배 더 많은 신고가 일어났고, 사용자들의 평균 신고 기간도 3개월로 기존 11개월에 비해 1/3으로  감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8년 3월, 칼리스토는 학교(Campus)를 넘어 스타트업 업계를 대상으로도 프로그램(Callisto Expansion)을 런칭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요청이 있었고, 많은 여성 창업자들이 투자자들에게 투자 진행 과정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Callisto Expansion는 기존 버전(Callisto Campus)와 철학 및 기본 구조는 유사합니다. 대학은 매칭 시스템을 통하여 관련 부서에 전달되었다면, 스타트업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Callisto Options Counselor에게 정보가 전달됩니다. 상의를 통해 법원에 소송 할지, 경찰이나 언론에 알릴지, 인사부서에 알릴지 등 여러 옵션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Callisto Expansion는 올여름 시작 예정이며, 향후 엔터테인먼트/언론/정치/스포츠 등의 영역과도 지속적으로 이야기 중이라고 해요. 이렇게 지속해서 성장하여 2021년. 1백만 명 학생들이 사용하며 17만 명의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목표를 가진 칼리스토. 그들은 피해자들의 니즈와 기술을 연결하여, 잘못된 균형점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4.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


당사자 중심 접근
창립자 제시카 래드 등은 자신들만의 역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며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식을 공감한 후에는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칼리스토의 컨셉을 잡고, 사용자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사자의 경험과 필요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
피해자의 고통이 큰 분야에서 더욱 신중하게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 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스타트업들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기술의 활용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를 인지하더라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해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중계(Escrow) 방식을 통해, 칼리스토는 개인의 우려(내가 민감한가, 그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지, 타인이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중 주요 부분을 해결하였습니다. 물론 타인을 도구화/대상화하는 일 자체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기술은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관심과 격려 
칼리스토의 구글닷오알지 및 패스트포워드 등을 비롯한 많은 인큐베이터의 투자/후원(2017년 9월 기준 약 250만 달러)을 받았습니다. 성폭력이라는 주요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임팩트 있는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의 비영리/스타트업/VC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필요한 부분이지요.

2018년 한국의 미투 운동은 상대적으로 익명성 보장이 가능한 D/F 커뮤니티 사이트나 B 앱 등을 통해 많이 진행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실명과 상황이 공개되기 때문에 , 이러한 사이트도 부담스러운 분들이 계실 겁니다. 성폭행뿐 아니라 조직 내 갑질 및 잘못된 위계구조/의식에서 비롯된 부당한 행동 역시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내부고발자의 용기에만 기대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칼리스토와 같은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도 활성화되어, 조직 내 문화 및 제도 개선/ 사회 차원에서의 시스템 정비 등의 방식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한국에서도 칼리스토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습니다. 



서울시NPO지원센터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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