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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Apr 26. 2018

난민의 입장에서 만든 실시간 통역 서비스, 타짐리  

시리아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픈 당신에게 

1. 내가 만약 난민이라면

2018년 4월, '시리아'와 '시리아 내전'과 같은 단어들을 검색어 상위권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화학무기로 추정되는 폭격을 통해 아이들 등 수많은 민간인이 고통을 당하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 전쟁 전 시리아 인구가 약 1800만 명이었으나, 7년의 상흔  속에 5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끝나더라도 그동안의 상처로 인해 국가가 안정되어 난민들이 돌아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됩니다. 시리아 외에도 전 세계에는 약 2300만 명(국내 난민 제외)의 난민이 살고 있습니다. 잠시 해외여행을 가도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언제 이동할지 모르는 난민의 삶은 훨씬 어렵겠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려움은 의사소통입니다. 단기간에 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착 초기에 신분 증명이나 거주지 확보, 그 후 일상생활에서  음식 배분이나 병원에 갔을 때 등 신속하고 명확하게 이해돼야 어려움이 해결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항상 통역가가 근처에 대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언제 통역이 필요한 이슈가 생길지 모르기에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구호단체 등이 상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전문 통역사 고용은 어려운 일입니다. 통역이 필요한 이슈가 언제 생길지 모르기에 동일한 장소에 계속 머무르는 것도 비효율적이죠. 또한 난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방언 등 다양할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난민의 이슈를 해결해야 상황에서는 통역사 한두 명으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2017년 2월 출시한 Tarjmly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입니다.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도움이 필요한 난민/이민자와 통역을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빠르게 연결해줍니다. 지역과 시간에 상관없이, 다수의 난민이 신속하게 페이스북 채팅을 활용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내가 경험한 문제를, 나의 재능을 활용하여

타짐리의 홈페이지 메인화면. 번역 자원봉사자, 난민, 봉사단체 등 상황에 맞는 설명.


타짐리(Tarjimly)를 만든 개발자들은 같은 대학을 졸업한  친구 사이로, 미국에 위치한 글로벌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2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난민/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였죠. 무슬림 아메리칸이기도 한 그들은, 선량한 대다수의 사람을 위해 무언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 유럽 난민 캠프 등에서 자원봉사를 했을 때, 거의 90%의 시간을 통역에 사용했음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통역의 타이밍과 충실도에 따라,  때로는 누군가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도 있음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2017년 2월, 사이드 프로젝트로  타짐리의 베타 버전을 만듭니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플랫폼에 자원봉사자도 등록합니다. 돈을 보내거나 격려의 편지를 쓰는 것 외에, 자신들의 재능을 활용하여 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던 사람들이죠. 난민들은 통역이 필요한 타이밍(병원, 음식 배분, 행정 서류 작성 등)이 생길 때 타짐리 페이스북 메신저 봇에서 언어를 선택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타짐리의 시스템은 알고리즘에 따라 통역가와 난민을 매칭해 줍니다. 희망에 따라 채팅, 비디오, 전화 모두 가능합니다. 문서나 안내판 등의 사진을 보낸 후 번역을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며, 상황에 따라 통역자의 변경도 가능합니다.
 
초창기 별도의 앱을 만들지 않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한 것은 접근성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새로운 앱을 사용하려면 다운로드를 하고 활용방법을 익혀야 하는 과정을 걸치기에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였기에, 난민이나 자원봉사자 모두 큰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래 유튜브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타짐리에서 실제 통역이 이루어지는 과정


난민이 실제로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기에, 서비스 시작 1주일 만에 예상을 뛰어넘는 1000여 명이 등록하는 등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계속 타짐리의 베타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며 가능성을 검증하던 창립자들은, 2018년 직장을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타짐리의 전념하기로 하였습니다. 2018년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액셀레이터인 Y 콤비네이터의 엑셀레이팅 프로그램 배치에 선정되기도 하였고요. 그 결과 2018년 2월 기준, 약 3000명의 번역가가 약 1500명의 난민/구호활동가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16개 언어의 번역이 가능하며, 평균 신청 후 90초 정도에 통역자와 신청자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타짐리 홈페이지에 정리된 현재까지의 결과


3. 사용자를 고려한 지속적인 개선

물론 현재의 타짐리가 완벽한 서비스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속해서 개선해나가고 있습니다. 우선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잘 지키기 위해, 통역 과정에서는 First name(이름)만 노출되도록 합니다. 정확한 매칭도 중요할 것입니다. 기껏 연결 했는데 통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로 민망하겠죠. (현재 구글 등의 자동 번역 서비스는 난민들의 상황과 맥락에 맞게 번역하기에는 부족하여,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이 높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래서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지속해서 개선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매칭을 할 때 봉사자의 위치(시차 반영), 요청 시점 온라인 접속 여부, 기존 연결 시도 시 응답 경험 등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더 정교화할 예정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기에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을 활용하여 진입장벽을 낮추었으나, 사용자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다양한 니즈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페이스북 메신저에 더해 SMS나 왓츠앱 등 다른 메신저와도 연결되는 멀티플랫폼 앱을 개발 중입니다.


2018년 3월, 많은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는 그리스로 현장조사를 갔던 그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기존에 기계 번역 어플리케이션의 부정확성으로 인하여 많은 난민과 구호단체들이,앱을 통한 번역을 소개하면 즉각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타짐리는 '진짜 사람'이 난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번역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표정이 완전히 바뀌며 매우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고 하죠. 그래서 이들은 타짐리의 성장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건드렸을 뿐 아니라, 창업자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고, 난민들의 입장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 3월 그리스에서 타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모습


4. 우리에게 주는 인사이트

사용자 중심주의 
- 얼마 전 소개 드렸던 Callisto 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실제 사용할 사람들의 편의성을 우선으로 하였습니다. 뛰어난 기술이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접근성이 좋은 페이스북 메신저 봇을 활용한 것, 일상을 살면서도 기부금 외에 더 많은 참여를 희망하는 자원봉사자의 니즈를 발견한 것, 그리스 등 현장을 방문하여 사용자들의 앱에 대한 느낌이나 UX 등 전체적인 의견을 듣고 이를 개선에 반영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자신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집중
“We’re focused on the real-time piece,” 
 타짐리에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난민과 관련된 많은 이슈가 있지만, 그들은 모든 문제에 답을 주는 해결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는 난민'과 '번역의 의지와 역량을 갖춘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핵심에 주력할 때, 오히려 확장이 더 쉬울지 모릅니다.

적절한 타이밍, 스텝 바이 스텝  
그 시점과 맥락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였습니다.  
우선은 기존에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사용성이 좋다고 생각하여 페이스북 메신저를 활용하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한계를 넘을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이제 다른 메신저와 연계한 자체 플랫폼을 만들려고 합니다. 
가능성과 수요를 확인하였을 때 확장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통역을 원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하였겠죠.




타짐리의 창립자들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서비스가 많이 나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힘을 합쳐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최근 인터뷰하였습니다. 

난민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와 별 관련이 없는 이슈일까요? 물론 타짐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도 1000명 가까운 난민(신청자는 3만 명 이상)과 훨씬 많은 이주노동자가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활동을 찾아볼 수 있겠죠, 또한 꼭 난민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더라도, 창립자의 인터뷰처럼 다른 활동들의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역량과 재능을 활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점차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              

[출처] 서울시NPO지원센터 블로그 중  난민의 입장에서 만든 실시간 통역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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