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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Feb 11. 2019

같은 듯 다른, 일의 기쁨과 슬픔

<NPO트렌드 리포트> '변화, 읽다' 기고문

진저티프로젝트가 만들고 서울시NPO지원센터가 발행한 <NPO 트렌드 리포트 : 변화, 읽다 :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에 쓴 기고문입니다.

'취미는 이직', '명함콜렉터',  '조직문화탐구생활', 'N프로젝터'와 같은 저의 경험을 중심으로,
나와 내 주변의 일과 삶에 대한 생각들을 간단히 정리했어요.

작년 11월에 작성한 글이라 지금은 생각도 상황도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와 같은 표현도 있고ㅎㅎㅎ),

그래도 오래 고민하며 제 마음과 바램을 담았었기에, 원문 거의 그대로 공유합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진저티프로젝트'에 감사드립니다.

보고서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받으실 수 있어요.




같은 듯 다른, 일의 기쁨과 슬픔



“합시다, 스크럼”

2018년,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는 듯 하나, 복장과 호칭, 혹은 반바지를 허용하고 영어 닉네임을 부르는 등 눈에 보이는 제도는 변화했어도 실제 사고방식은 거의 그대로인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소하게 저항을 하거나 작은 행복을 찾아나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현재 조직 그리고 베이비붐이나 386세대라 불리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활동이 모두 잘못되었기에 이런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다. 전환기에 일어나는 갈등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방식과 사고 습관으로만 접근한다면, 지금의 변화를 이해하고 서로 협력하는 모습 역시 불가능하리라.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너무 외롭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세상에 낯섦이 잘못이 아님을,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실제 사례를 통해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싶다. 시행착오 속 끊임없이 좌절도 겪고 있으나, 스스로에게 계속 실험을 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선택과 우연에 사이에 있는 방랑, 나에게 일의 의미란


할머니에게 나는 문제가 많은 장손이다. “결혼이 가장 중요한데, 누가 너 짝 안 찾아준다…”

부모님에게 나의 일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참 어렵다. “네가 뭐 하고 사는지 주변에 설명할 수가 없다…”

친구들은 하는 일이 계속 달라지는 나를 신기해한다. “그렇게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어?”


누군가에게는 응원을, 누군가에게는 우려를 받는 삶 가운데 최근 몇 년을 보냈다. 본업이든 그 외 활동이든 내가 관심을 가는 분야를 선택하며 살아갔다. ‘기획/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틀은 있으나 다양한 업종과 규모의 조직에서 일하였고, 영리와 비영리를(이런 구분이 지금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지만) 지속적으로 순환하며 일을 선택했다.

다음에 어떤 일을 할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한 적도 많다. 관심있는 분야의 일을 하였지만 일을 하다 보면 느껴지는 아쉬움과 답답함으로 인해,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는 일들을 조직 밖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한 경우도 많다.(회사 이야기와 프로젝트 이야기를 할 때 내 표정과 말투가 확연히 다르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였다)


비즈니스 잡지와 강의에서 권장하는 커리어패스와는 괴리가 큰 모습을 보이는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물론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한 삶을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대응하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생이 모순인 것처럼, 선택 역시 모순이 아닐까.


“어떻게 그렇게 사세요?”라는 질문에 “저도 제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항상 멋진 이유만 있는 것도, 위기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동시에 산만 지수 최상일만큼 집중력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한 업종이나 분야를 오랜 시간 정진하며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며, 여러 일을 연결하고 관통하는 축을 찾고 싶었다. 지식/창의 노동의 영역에 들어가는 일들을 주로 하였기에 조금 유리한 부분이 있겠지만, 일의 태도와 통찰력은 호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서 말이다.(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된 채 시간만 허비할 수도 있으나, 키워드를 잘 연결하면 놓쳤던 것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물론 아름답게만 포장할 수는 없다. 퇴사 타이밍 혹은 그 이후 불안감에 압도되었던 적도 있고, 때로는 ‘내가 이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마무리했다기보다는,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선택의 더 큰 이유였던 적도 있다. 부족한 대로 ‘내가 이 조직에서 했던 경험-성취와 실수’를 소속의 변화 때마다 정리하였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일과 삶의 궤적은 도전과 도피의 중간쯤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한 분야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웃기웃 방랑하며 여러 분야의 흐름을 보고, 점을 선과 면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데 강점이 있었던 것이 여러 분야를 거칠 수 있었던 원인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한 분야에 ‘인싸’는 되지 못하겠지만, 나에게는 적합한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본업이 아닌 프로젝트에도 적용되었던 원칙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비슷했다. 성격상 먼저 주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조직 밖 관심 있는 강연이나 프로젝트 등에 자주 참여하였다. 그냥 개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조직에서 나의 포지션을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확장하기도 하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 중심으로 진행하기도 했고, 기존 NPO 단체와 연결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명함을 만든 적도, 명함 없이 진행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점은 ‘그 당시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지느냐’였다. 물론 아이디어를 낼 때의 열정과 두근거림 이 전부가 아니기에, 실행 단계에서는 대부분 어려움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깨닫고 성장할 수 있음이 중요했다. 일을 마쳤다는 성취감이든, 서로를 존중하고 합을 맞춰갔던 경험이든, 누군가가 보냈던 미소와 따뜻한 한 마디이든.


현재와 조응하는 일과 활동의 방법


그 가운데 점차, 내부에서 관찰되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호칭/자리 배치/커피 마시는 방법처럼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부터, 회의 문화와 의사결정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까지 말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조직의 제도와 문화가 결정되고 유지하며 변화하는 방식이 회사의 목적과 일하는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개인적으로 ‘받을 돈은 최대한 빨리, 줄 돈은 최대한 늦게’라는 말이 그렇게도 싫었다. 대표의 현실적인 고민은 이해하지만, 줄 돈도 받을 돈도 적합한 시점에 주고받는 시스템과 업계의 문화를 희망했기 때문일까)


그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딴짓, 혹은 사이드 프로젝트라 불리는 영역의 활동들을 바라보다 보니, 기존 조직 외에도 유연한 연결을 통하여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과거에는 큰 명분 혹은 위계와 효율성에 기반한 시스템을 통해야만 일이 진행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이 작 은 관심사에서 발화되어, 기술의 도움 속 유연하고 느슨한 관계 가운데 무언가 만들어나가는 모습들이 계속 발견된다. 아직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잘 받지 못하지만, 기존 조직들과 시너지를 내는 방법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정치질(?) 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내가 관심을 가진 분 야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와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업과는 조금 다른 활동 속 스스로를 확장해나가며, 사회적 지위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고, 함께 만들겠다는 동료됨을 유지하며 각자 가진 전문성을 활용하여, 작은 성취들을 만들어간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비영리의 체계 및 제도, 활동가라는 표현조차 모를 것이다.(나에게도 여전히 모호한 단어이다.) 하지만 우연과 만남과 분화의 경험 속, 조직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공허함을 채우며 성장을 경험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때로는 게으르게, 때로는 치열하게,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낯선 삶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현재는 조직 밖에서 ‘일의 변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실험 중인 나 역시, 향후 NPO 등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가능성은 열어놓되, 내 삶을 조직과의 관계로만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고용형태 등 일하는 방식에 제한되지 않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의미와 재미를 함께 찾아가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은 어떠한 상황과 관계가 나에게 적합한 일과 삶의 방식인지 찾아 나가는 테스트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1차 결론이 날 때쯤이면, 나의 특성에 맞는 일들에 더욱 집중하며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작게나마 역할을 하고 싶다. 그 실험을 통해 개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찾아 나가고, 조직은 그 목적과 특성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조직과 개인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한쪽을 소모하려고만 하지 않고, 스스로를 온전하게 하면서 함께 나가기 바란다. 일을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 활동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공정하고 풍요롭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나를 바라본다. 계속 직면하게 되는 부족함이 스스로를 옥죄며, 지금보다는 조급함과 부담은 내려놓되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활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것이 나의 주요한 관심사임 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방향의 수정은 있더라도 계속해서 해나가리라 추측 혹은 다짐을 해 본다. ‘명함이 없어도 의미있는 일’로 여겨지고, 경직된 제도와 형식보다는 ‘의미와 재미’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활동들이 지금보다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좀 더 많아질 때,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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