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당신의 이야기가 가진 힘에 관해서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아래 글을 썼습니다. 쓸 때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 당신이 읽을 때도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아파한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끌시끌 해지기 전부터. 너도 나도 모양은 좀 다르지만 온도는 비슷한 기억들로 몸 구석구석, 마음의 모서리 모서리마다 통증을 느끼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앓다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특정 상황이나 기억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체험이 활자로 기록되면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데 마치 목격한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소설가라고, 언젠가 겪었던 일을 덤덤하게 적어내는 사람을 수필가라고, 내용을 간추리고 글자 수를 최대한 축소해서 딱딱 끊어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당신도 아마 이런 부류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흐리긴 하지만 눈을 감고 떠올릴 수 있는 상상 속 인물과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은, 직접 경험한 어느 순간을 글자로 영원히 남겨보고 싶은,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을 이제와 꼭 전하고 싶은 사람. 어떤 한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
#세계적인영화감독 #봉준호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팟캐스트에 Bong Joon Ho나 Parasite라고 검색해보면 수많은 에피소드가 뜬다. 이젠 그가 전 세계적인 영화인이라고 해도 특별히 반기 들고 일어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가 감독상을 받고 이런 말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영화를 공부하던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새긴 말이었다고 한다. 그의 멘토 격인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책에서 찾아낸 문장이라고 했다. 이 말을 하고 마틴을 향해 쑥스러운 제스처를 건넸고, 수많은 시상식 참석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틴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표했다.
미스터 봉도 처음에는 이런 시시한 이야기 따위 누가 들어줄까, 했을 수 있다. 바로 그때, 기억해 냈을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인 이야기이라는 롤모델의 한 문장을.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면 생각될수록 나는 영화로 만들어야만 한다, 다짐하지 않았을까. 그게 창의이고, 예술이니까.
왜 우리 뇌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시한 이야기 따위라고 여기는 걸까. 친숙하면 촌스럽다고, 구체적이면 구질구질하다고, 왜 그리 치부하는 걸까?
#캐나다배우 #캐서린라이트만 #워킹맘스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다. 정말 너무 애정 하는 캐네디언 메이드 텔레비전 쇼 ‘Workin’ Moms’의 만들고 감독하고 게다가 주인공으로 출연까지 한 캐서린 라이트만을 나는 모두에게 추천한다. 능글맞은 그녀의 연기를 보다 보면 나도 그녀처럼 ‘일하는 엄마들’ 중 한 명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드니까.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된 배우이지만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한 팟캐스트와 Ted Talk를 듣고 더 팬이 되었다.
그녀가 워킹맘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네 작품은 너 자신에게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너의 목소리를 몹시 날카롭게 잘라서 그 누구도 아닌 너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만큼.
워킹맘스는 나에게 그런 작품이다.
쓰는 동안 자신 있었던 이유는 일하는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굴육적이고,
얼마나 드물게 찾아오는 호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녀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떠나서 본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개인이 느끼는 익숙함 때문에 별로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건 실수다. 한 개인에게 큰 공감력을 일으키는 이야기는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워킹맘이 그렇고, 기생충이 그렇고, (이다음에 다룰 RM의 이야기를 통해 보면) BTS의 음악이 그렇다.
어떤 소리던 간에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그 목소리를 가지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 이건 구체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실제적으로 증명된 예술의 메커니즘이다.
뾰족하게 다듬은 개인의 소리로 캐서린은 틈새를 파고 들어갔다. 파일럿 에피소드가 시즌 2까지 이어진 것으로 봐서는 그 틈새 속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틈새 niche는 좁고 깊다. 좁고 깊어서 선뜻 나서기가 두렵다. 그 안을 파고 들어간다는 건 꽤나 대담한 도전, 세상모르는 꼬마 아이의 허세 가득한 치기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틈새 속에는 뭐가 있는 걸까?
#정규4집 #RM #MapoftheSoul
데뷔 후 7년을 돌아본 음반이라는 ‘맵 오브 더 소울: 7’ 정규 4집을 들고 돌아온 BTS의 유튜브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방탄소년단의 음악, 넓게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우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RM의 순서였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대성을 (가장) 그 시대에 가장 잘 나타난 아티스트들이 가장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저희는 저희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음악에다 했고 …
퍼스널한 이야기들이 아이러니하게
범세계적인 세계성을 띌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고요.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민이 비단 한국에서만 느끼는 고민이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고 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저희가 퍼포먼스로도 풀어내고 음악으로도 풀어내고
여러 형태들로 보여드렸기 때문 …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한 워킹맘으로서 만든 쇼가 연장되고, 개인적인 고민을 음악으로 만들었더니 전 세계가 공감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와버렸다. 한 사람이 느끼는 고민, 그가 거쳐온 고통을 글로 적어 멜로디에 가져다 붙이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이가 읽고 공감한다. 함께 울어주기도, 함께 웃어주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혼자만의 분투가 아닌 게 된다. 서로 다른 피부 색깔, 언어, 인생사를 가진 여러 사람이 함께 껴안는 공동의 투쟁이 된다.
아주 작고 깊숙한 그 틈새에는 지구가 있다. 이 세계가 있고 현세대가 있다. 그 틈새에 꼭 맞는 얇고 세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이제 우리 발 앞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시시한 이야기 따위 누가 들어줄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그리도 시시한 이야기가 고프다.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언젠가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의 이야기 같기도 한, 시시하지만 가볍지 않고, 뻔하지만 식상하지 않은 그 이야기가 또 듣고 싶고, 또 보고 싶다.
쓰고 쓰지만 더 써야 할 이유,
만들고 만들었지만 더 만들어야 할 이유는,
너만의 이야기는 아직 그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기에,
네가 아니면 누구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시시한 것 같아 망설였던 적이 있다면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지만 단단한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난 오늘도 이렇게나 시시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구상하고, 흥얼거리다 적어도 보고, 정리하고 다듬어서 당신에게 건넨다.
함께 하자.
Resources:
Cover image by 여성신문
Caption images by Youtube, Wikipedia, New Straits Times, USA Today, Vanity F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