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한달쓰기
#한달쓰기 리스트
07 공감할 때 생기는 힘
10 하나만 선택할 용기
11 동시에 여러 가지를 잘 해내는 방법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15 이런 글 써보려고요
16 그들이 말하는 글쓰기
17 너는 네가 하는 말이다 [말 그릇 리뷰 Part. 1]
18 네 말 그릇엔 무엇이 담겼는지 [말 그릇 리뷰 Part.2]
19 행복이라는 상태
21 그들이 말하는 두려움
22 커뮤니티 빌딩의 준비물
23 10대의 이민에 대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8가지
24 글쓰기의 전제조건
25 2019 Yoona Award: Favorite Five
26 송구영신: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맞이할까
오랜만에 뵙는 어른 한 분이 반갑게 나의 인사를 받으시고는 이렇게 되물으셨다. “어디 갔다 왔니?” 나는 내내 같은 곳에 있었다. “아니요. 계속 한국에 있었는 걸요?” 그는 내 대답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보이지 않던데?”라고 덧붙이시면서.
사람에게는 한 쌍의 눈이 있다. 특정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가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물건을 본다. 보이는 것은 존재한다고 여긴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치부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 시간, 그 장소에 내가 보는 것만 존재하는 걸까?
2019년의 끝, 그리고 2020년의 시작에 우리는 <송구영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라, 는 한자 단어이다. 그러나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맞이해야 할는지 이 단어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2019, 내가 작별해야 할 것과 2020, 내가 환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었다.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각도라는 뜻의 관점은 볼 관觀, 과 점 점點, 이라는 한자가 만나 관점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영어로는 퍼스펙티브 perspective 혹은 프레임 frame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에서도 주어의 자리에 만드는 회사가 아닌 사용할 소비자를 두면 해석을 넘어선 재해석이 가능해지고, 수년간 브랜드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비범함을 갖게 된다. 이처럼, 회사 대 손님의 관계가 아닌 그저 사람 대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소통이야말로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갖게 해 준다. 화자(나)의 관점을 바꿀 때 가능한 일이다.
논술을 공부하는 학생의 경우에도 논제에 명시된 제시문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하며, 흑백논리를 넘어선 입체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각자가 스토리를 가진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의 입장에서 그의 이야기를 읽고 파악했다고 믿기보다 필자에 입장에 서게 된다. 그것이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다각적 사고를 갖는 방법이다.
관점 디자이너로 유명한 박용후 작가는 전제를 바꾸면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해서, 관점이 달라지면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다. 나의 출발 생각이 무엇인지 2020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점검해보는 것이 좋겠다. 어떤 전제를 가지고 내가 있는 환경을 보는지,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지, 그 생각이 긍정적이고 고무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지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굳어진 관점 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써서 시력을 교정하고, 이가 고르지 못하면 금속 장치를 써서 치아를 교정하듯이, 사람과 세상과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하지 않으면 늘 고르지 못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에 맞는 삶을 꾸려간다.
비행기가 버스만큼 많이 다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라와 나라, 언어와 언어가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관점도 그만큼 폭넓어지고 깊어져야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을 재해석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 해석의 틀을 깨고,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타인을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 믿는다.
물론 관점 교정은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고 싶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글쓰기의 전제조건, 프레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관점은 우리의 말과 표현 속에 확연하고 잔잔하게 드러나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 준다. "어디 갔다 왔니?... 보이지 않던데?"라는 말속에 그 사람의 관점이 있다.
2019년은 특히나 나를 많이 알게 된 한 해였다. 내가 아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내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인정하는 데까지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 또한 결국 큰 가르침을 주었다.
2020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한 해 동안 나는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아는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놀라지 않기로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낮은 자세로, 겸손한 마음으로 더 배워 가겠다고 다짐한다.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나의 옛 관점과 새 관점에게.
지금까지 함께해준 한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Sources:
Cover image by Anika Huizi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