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리뷰 Part. 2
#한달쓰기 리스트
07 공감할 때 생기는 힘
10 하나만 선택할 용기
11 동시에 여러 가지를 잘 해내는 방법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15 이런 글 써보려고요
16 그들이 말하는 글쓰기
17 너는 네가 하는 말이다 [말 그릇 리뷰 Part. 1]
18 네 말 그릇엔 무엇이 담겼는지 [말 그릇 리뷰 Part.2]
막냇동생이 막 중학생이 된 즈음, 나는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었다. 아침마다 동생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엄마를 따라 드라이브에 나섰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 엄마와 동생은 차 안에서 다투었다. 막내는 신경이 곤두선 채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가 차문을 쾅, 닫았다. 나는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동생을 계속 바라보았다. 거친 발걸음, 힘겨운 어깨의 들썩거림. 오른팔을 들어 얼굴에 가져다 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울고 있었다.
실은 짜증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였을 테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화를 내버렸고, 그 사실이 눈물을 참지 못할 만큼 속상했던 거다. 뱉어버린 말과 안에 머무는 맘이 다르다는 것. 우리는 10살 차이나 나는 남매이지만, 나는 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 잘못 없는 엄마에게 쏟아낸 분노를 정당화할 수 없지만, 감정 표현에 서툰, 감정 인지에 어리숙한 동생의 그 모습은 지금도 이해할 수 있다.
자주 있는 일이다. 특히, 맘에 들지 않은 회사생활, 어디에 가서 하소연하기에도 부끄러운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는 더더욱 잦다. 말과 맘이 다르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자꾸 마음과 다르게 말하게 된다’는 것은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감정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느끼고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말 그릇: 내면의 말 그릇 다듬기 (48/290)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계. 표현된 감정을 위로와 이해로 인정해주는 사회. 감정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큰 변화는 나의 작은 변화로만 시작된다. 마음과 일치하는 말을 위해 감정과 친해지자.
나는 얼핏 보면 ‘화’로 보이는 감정도 원래는 화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감정은 미묘하게 원래의 색을 바꾸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려면,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그에게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게 만들려면, 먼저 자신의 ‘오리지널’ 감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말 그릇: 감정에 서툰 사람들 (59/290)
감정에는 다섯 가지 프로세스가 있다. 출현, 자각, 보유, 표현, 완결이라는 프로세스.
출현
처음 감정을 느끼면 인간의 몸은 신호를 받고 반응을 한다. 몸의 감각을 살리면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더욱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자각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감정은 여러 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감정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고, 감정이 밀려올 때 잠시 멈춰서 어떤 감정인지 질문하고, 감정을 객관화시켜야 찾아낼 수 있다.
보유
감정을 말 그릇 안에 보관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감정으로만 느끼지 않아야 한다. 감정에 쉽게, 그리고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높여주는 자기 존중과 믿어주는 자기 효능감이 있어야 감정을 다루는 일이 가능해진다.
표현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식은 주로 3가지, 말을 쏟아내야만 속이 시원한 폭포수형, 주로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호수형, 말을 자제할 수 있는 수도꼭지형이 있다.
완결
출현부터 표현까지 거쳐온 감정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사라지는 것이 완결이다.
나의 몸에 어떤 형식으로든 드러난 감정의 기미를 보고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에서 올바른 완결은 시작한다. 짜증을 표출하는 것은 나의 오리지널 감정을 찾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로 내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상대에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전달했을 때, 나는 따뜻한 이해를 받았었다. 물론, 모두가 날 격려해주고 다독거려주는 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서 내가 설명한 감정보다 더 우울한 감정을 새로 선물 받은 경험도 있다. 그러나, 타인의 반응과 상관없이 오리지널 감정을 알고 전달하면 그에 대한 만족스러운 완결의 느낌은 나에게 꼭 오고야 만다.
나는 앞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에서 경험과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험은 ‘개인의 바탕’이자 한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장소이고 ‘두 발로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지지대’라고 설명했고, 관점은 ‘한 사람의 평범할 법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탈바꿈시키는 굉장한 에너지’라고 했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이 지나지체 강조하거나 고수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 사람을 지배하는 특정한 공식과 만나게 된다.
- 말 그릇: 머릿속에 만들어진 공식 (90/290)
공식은 경험과 관점이 섞여 사람의 생각과 말에 영향을 끼치는 특수한 안경과 같다. 개인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의 공식을 말로 바꾸는 것은 산을 들어서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 말 그릇: 머릿속에 만들어진 공식 (98/290)
경험과 관점을 바꾸는 것만큼 공식을 바꾸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삶에 대한 정의와 태도도 특별한 사건이 없이는 변화하지 않듯이, 공식은 우리의 생각 체계에서 부동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말본새가 맘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공식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우리의 말 그릇을 다듬는 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무시하거나 강요하는 대신, 질문하고 인정하는 말 그릇으로.
… 말 그릇이 넉넉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공식 안에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음을 알고 있다.
… 한 사람의 공식 속에는 숨겨진 배경과 충분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 타인의 말을 담는 그릇이 넉넉하려면 한 가지 공식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되 그것이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말 그릇: 나도 너도 꽤 괜찮은 사람 (101-103/290)
지인 몇 명이서 소그룹을 짜서 일정 시간 여행을 함께 가면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습관들을 보게 된다. 언제 피로를 느끼는지, 피로를 느끼면 어떻게 자세가 바뀌는지, 밥을 먹고는 바로 무엇을 하는지, 몇 시쯤 편안하게 잠드는지. 최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에게 새로운 행동 버릇이 생긴 것을 보고 나와 동생은 경악을 했다. 누구와 함께 지내느냐, 가 일상에 이렇게나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작은 말버릇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건 두 번 말해 입만 아프다.
버릇 하나가 원래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몸 깊숙이 자리하는 데에는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의 짧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잘못된 버릇 하나를 인지하고 바꾸려는 데에는 평생이 걸려도 못한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말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고정된 패턴대로만 말하는 사람은 다른 말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 충고하고, 격려가 필요할 때 비난하고 만다.
- 말 그릇: 불쑥 튀어나오는 말 습관 (132/290)
소셜미디어에 자주 쓰이는 해쉬태그 중에 #OOTD가 있다. 'Outfit of the day’의 줄임말로, '오늘의 옷차림'이란 뜻이다. 오늘에 어울리는 드레스코드를 갖춰 입은 사람이 그 동네 소문난 멋쟁이이듯, 오늘은 오늘에 어울리는 드레스코드가 있듯, 오늘은 오늘에 어울리는 말코드가 있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마주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말하는 방식을 바꿀 줄 아는 멋진 말 그릇의 사람이고 싶다.
멋진 말 그릇의 사람. 바로,
말과 맘이 다르지 않은 사람,
나와 다른 공식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도 어렵지 않은 사람,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 다양성을 품은 사람 말이다.
<말 그릇> 리뷰는 계속됩니다.
Sources:
Cover image by Juri Gianfrance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