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하는 뮤직비디오 감독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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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라드 보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던 여름의 더위가 금세 지나가고 겨울이 왔다. 여름방학은 기억에도 없이 멀어졌고, 일주일 후면 기다리던 겨울방학이다. 기말 때문에 매일이 전투이지만, 적적한 방 안을 재즈로 채워 외롭지 않게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말인데,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제도 물론 판소리 이야기를 빌려 글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옛날에 비하면 더 이상 유행가를 즐겨 듣지 않는다. 가사를 공감하기가 어려워져서 인 것 같다. 오히려, 눈으로 보고 싶은 뮤직비디오 영상을 가진 가요를 좀 더 찾게 된다. 차를 몰고 남도를 가는 길, 먼 운전길에서 함께 동행한 동생에게 유일하게 부탁했던 신청곡도 뮤직비디오가 인상 깊었던 나얼의 <Baby Funk>였다.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겨울은 발라드 듣기, 아니 보기 딱 좋은 계절이 아닌가!
노랫말은 시와 같고, 뮤직비디오는 단편영화 같다는 말은 거짓 하나 보태지 않은 참말이었다. 가을학기 개학하던 날, 짝꿍이 전해준 첫 소식은 김동률의 신곡이었다. 교실 안에서 몇 명이 옹기종이 모여서 본 뮤직비디오는 작품 같았다.
졸음이 슬며시 오는 모양을 표현하는 ‘스르르,’라는 단어 뒤로는 고요히 흔들리는 커튼의 끝을, 물체가 보일 듯 말 듯 자꾸 희미하게 움직인다는 의미의 ‘가물가물,’이라는 단어 뒤로는 바람 따라 설렁이는 여름날의 푸르른 보리밭을 보여준다. 청아한 피아노 간주가 흘러나올 때, 나른해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 남자 주인공은 홀로 서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듯 보이고.
피아니스트 김정원과 함께 한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은 Studio Caska를 운영하고 있는 필름 메이커 김선혁의 작품이다. 김선혁 감독은 김동률의 <답장>, 루나의 <그런 밤>, 노리플라이의 <여정>과 같은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이나 대림미술관 같은 예술 기관의 필름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의 트레일러와 배달의 민족 광고를 작업해 왔다. 그의 영상은 끝없이 걷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닮았다. 그의 시선을 통해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을 보고 있자면, 노래라는 바람을 따라 시간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그 햇살을 닮은 붉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한 남자와 턱을 괴고 앉아 환하게 웃어 보이는 한 여자가 있다. 굳이 청춘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아도 눈에 훤히 보일만큼 세상 무엇보다 가장 푸르른 나날을 함께했던 한 연인. 설레어하다가, 서운해하다가, 안타까워하다가, 소중해하다가 함께 이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과정을 덤덤히 보여주는 윤종신의 <이별하긴 하겠지>는 BTS Film의 이래경 감독의 작품이다.
어떻게 5분짜리 영상 속 주인공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만은, 이래경 감독이 담은 은은한 빛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는 볼 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을 보여 주었고, 짙은의 <해바라기>에도 잠시 왔다가 사라진 선생님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진 여고생의 마음을 실었다.
이래경 감독이 이끄는 Behind The Scenes 스튜디오는 정승환의 콘서트용 영상, 태연의 <사계>, 이적의 <숫자>, 샘킴의 <When you fall>, 이문세의 <희미해서>, 양희은 <늘 그대>, 이진아의 <Random>, 아이유의 <밤편지>와 같은 영상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어느 영상에서 만나는 어떠한 푸름blue보다 가장 오묘한 파란색을 담는 Visuals From의 정진수 감독이 여지없는 신비함으로 시작한 발라드, 정승환의 우주선이다. 제목을 모르고 음악을 보았을지라도 제목이 우주선일 것만 같은 영상과 가사를 듣고 있자면, 어디론가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끼게 된다.
자주 홍대에 가던 시절, 밴드 권우유와 위대한 항해를 통해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 혁오가 유명해지면서 그가 작업한 <위잉위잉>부터 단편 시리즈 <Something to Someone>, 딘의 <What 2 Do>, 지코의 <오만과 편견>, 수지의 <Holiday>, 故 설리의 <고블린>, 성시경의 <나의 밤 나의 너>, 정엽의 <없구나 (Nothing Left)>까지 그의 행보를 따르고 있다.
최근 영화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즈가 1950년의 뉴욕을 재현하기 위해서 연구를 하면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진수 감독의 영상을 보다 보면 특유의 ‘외로움’을 포착할 수 있는데, 사실주의 작품을 많이 남긴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가 떠오른다.
나얼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뮤직비디오 다수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송원영 감독은 April Shower Film을 이끌고 있다. April Shower라는 영어 표현은 불쾌한 사건의 결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2013년 박카스 CF <대한민국에서 불효자로 산다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송 감독은 샤워, 노을, 플레이리스트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의 음악 영상에서 샤워의 개운함과 노을의 아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박재정의 <If Only>와 권순관의 <그렇게 웃어줘>,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너를>, 거미의 <해줄 수 없는 일>, 나얼의 <Gloria>, 이소라와 로이킴의 <October Lover>에서 그가 그려낸 4월에 내리는 비와 같은 두근거림을 볼 수 있다.
Sources:
Music Videos and Images from Studio Caska, BTS Film, VISUALSFROM, April Shower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