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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Dec 09. 2019

고된 현실의 관찰자가 된다는 것

직장에서 얻은 배움

#한달쓰기 리스트

01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02 <이별가>가 들려주는 글의 비밀

03 발라드 보기 좋은 계절이 왔다

04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05 당신의 천장은 얼마나 높은가요?

06 푸르른 2020을 위하여

07 공감할 때 생기는 힘

08 고된 현실의 관찰자가 된다는 것

*아래 글은 퇴사 전, 직장에서 썼던 글입니다.








어릴 적에는 즐겨 쓰던 빨간색의 빵모자에 꼭 빨간색 반짝 구두를 맞추어 신었다. 노란 피아노 가방에는 노란색 바지를 맞추어 입었다. 


그땐, 몰랐다. 


내가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앉아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 엑셀을 켜놓고 

1에서 0까지의 숫자를 똑딱거리고 있을 줄.






리 단위의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자라면서 엄마가 보건진료소 소장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르신들께 값진 사랑을 받았다. 인사를 하면 인사를 잘한다고, 동생을 챙기면 어른스럽다고 예쁨을 받았다. 


그땐, 몰랐다. 


이란인 매니저와 인도인 슈퍼바이저에게 차별대우를 당하고

그 사실을 회사에 알려도 인사과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여름에는 뒷산에 앵두가 가득하고, 가을에는 집 앞 대추나무에 꽃처럼 아름답게 핀 대추가 두 손 위로 떨어졌다. 사촌 동생들과 논과 밭 주변을 뛰며 달리기 놀이를 했다. 


그땐, 알 길이 없었다.


이층짜리 건물, 

벽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여름과 겨울마다 적절하게 온도가 관리되는 사무실 안에서 매일 노을을 마주하게 될 줄. 


그러다, 3달 정도 회사 창고로 출근을 해야 했을 때,

 

소리를 질러야만 소통이 되고 

늘 덥거나 춥고

부엌에는 숟가락 하나도 제대로 정돈되어있지 않는 그곳도 같은 회사라는 사실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대적인 자신감이 있고,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무실 직원들을 두고 농담을 한다는 것을.






나는 회사에서 부적절하고 부당하며 절대 공평해질 수 없는 것이 사회생활임을 배웠다. 모든 것에 지쳐서 이 곳을 떠나고만 싶었을 때, 졸업 후까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대학 교수님께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이런 조언을 남겼다.


관찰자가 되어봐. 그리고 글을 써. 



어른이 된 이후로는 어릴 적처럼 맘에 안 든다고 절교하고, 짜증 난다고 짜증내고, 다른 것이 좋다고 현재의 것을 쉽게 버려버릴 수가 없다. 


삶을 쥐고 있는 나의 손아귀가 더 강해지고

마음속에 뒤엉켜있는 기억들이 더 질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생활비가 걸려있는 월급을 다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 일어나는 일을 쉬이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 것이 있다.


불만족은 눈을 열고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한다. 

불평은 내가 진짜 원하는 다른 것을 찾아 나서게 한다. 

미치도록 지겨운 나의 직장이 나를 관찰자로 만들어주고, 글을 쓸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나의 직장에서 한번 보고 잊어버리는 '봄 see'이 가슴에 새기는 '관찰 observe'이 되었다. 

나의 직장에서 끄적이다 마는 '씀 write'을 넘어서 나의 삶의 소망을 담은 '기록 document'을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미치도록 지겨웠던 나의 직장에게 전하고 싶다. 

네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고, 네가 있어주어서 미래의 내가 있는 거라고. 

언제까지 함께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우리 그때까지 잘 지내보자고.


혹시 지금 나의 상황처럼 지겹지만 버텨내야 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분명 그 직장에서 얻어낼 것이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도망치듯 뛰쳐나올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멋있게 사표 내고 당당하게 문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괴로움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음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Sources:

Cover Image by Vladimir Chuchade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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