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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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공감할 때 생기는 힘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를 만났다. 몇 해 전에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나는 요즘 학교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친구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고 했다. 공감력의 부재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를 넘어서, 공감하려고 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공감이라는 주제가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친구가 목격한 아이들의 사례를 들어보니,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교육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염려될 법했다.
공감에 대한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 추상미가 감독으로 데뷔한 첫 장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만났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한국 전쟁 당시 폴란드로 보내진 1500여 명의 한국 고아들과, 그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은 폴란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다 보고 홀로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나는 당시 고아들을 기르고 가르쳤던 폴란드 사람들이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을 가지고 아이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에 마음이 욱신 거렸다.
'전원 북송'이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에게 “너희 나라가 너희가 필요하단다”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해 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아이들의 폴란드 아버지, 요제프 원장. 폴란드 사람들은 한국처럼 전쟁을 겪었던 아픔이 있었던지라 한국 고아들을 마치 자신들의 모습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생님이 아닌 부모로서 한국 아이들을 대했던 것이다.
8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이들은 천리마 운동을 위해 북한으로 다시 보내졌다. 이후 어떠한 방법으로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없고 소식을 주고받을 수도 없는 상황. 그 속에서 폴란드 어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북한의 아이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갔다.
65년이 지났다. 스크린 속 인터뷰에서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직도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과의 이별만큼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지금 것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다던 추 감독은 이 부탁으로 개인적인 통일의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사람이 아픈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은 폴란드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처음 만난 폴란드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다. ‘혼자’로 남았을 수도 있었던 인생이 ‘함께’가 되었고, 예상을 빗나간 삶이 치유의 시작점이 되었다.
전쟁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과 그들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어른들의 만남. 이들의 기억은 없어지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공감했을 때 기억의 무게를 이기는 치유의 힘이 생겨난다.
두려움을 가득 안고 기차에서 내리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새 폴란드 가족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들 내면 어딘가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겠지만, 폴란드에서 보낸 시간 동안 한아름 선물 받은 사랑과 애정, 진심과 추억도 남아 있을 것이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치유와 공생할 수는 있다.
각 개인이 가진 역사 History는 결국 그만이 겪은 경험과 그 경험에 의한 관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전해져야만 공감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음악을 만든다. 공감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청하고, 읽고, 보고, 듣는다.
상처와 상처가 서로 공감되는 그 순간에 치유의 에너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기록은 어떤 모양이든 어떤 규모이든 소중하다. 아니, 소중하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설명으로는 부족한 어떠한 가치가 있다.
공감하고자 하는 욕구와 시도 자체가 부재한 이 세대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큰일 날 노릇이다, 라며 한탄만 하고 싶지 않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있다.
소통이 멈추었고, 기록이 괄시되고 있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이야기를 들을 일도 줄어든다. 공감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공감하지 않는 아이들을 가리키기 전에 공감이 없어진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너라는 사람만으로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알려주고,
너만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나누면 두배로 강해지고 빨라지는 치유의 비밀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내가 용기를 내어 글을 쓰는 이유가 이 것이다.
별 것 없어 보이는 한 문장에 나의 마음을 꾹꾹 눌러쓰는 이유가 이 것이다.
발행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흘려버려도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에 나의 진심을 몽땅 다 담아보는 이유도 이 것이다.
기록하고 공감을 받자. 다른 이의 기록을 보고 공감을 하자. 우리 모두에게는 치유가 필요하다.
Sources:
Cover Image by 씨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