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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Dec 13. 2019

쿠바 여행이 내게 준 4가지 위로

하바나의 속삭임

#한달쓰기 리스트

01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02 <이별가>가 들려주는 글의 비밀

03 발라드 보기 좋은 계절이 왔다

04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05 당신의 천장은 얼마나 높은가요?

06 푸르른 2020을 위하여

07 공감할 때 생기는 힘

08 고된 현실의 관찰자가 된다는 것

09 쓸만한 인생은 쓸만한 일상에서 온다

10 하나만 선택할 용기

11 동시에 여러 가지를 잘 해내는 방법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12 쿠바 여행이 내게 준 4가지 위로








하바나, 쿠바로의 첫 발걸음


퇴사를 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5개월 만에 주어진 첫 여행, 바로 쿠바 하바나였다. 쿠바는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미주 지역을 여행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첫 캐리비안 여행이었고,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콘퍼런스에 참석 중이던 친구에게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내가 도착하기 바로 몇 주 전에 태풍 얼마가 다녀갔다. 해안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말레콘 주변으로 거친 파도의 영향을 받았던 하바나의 거리와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말레콘을 걸으며 베다도에서 올드 하바나로 가는 길, 한창 보수 중인 건물들과 편안한 모습으로 그 주변을 서성이는 하바나 시민들의 모습을 지나치며 한 때 허리춤까지 차올랐던 자연의 공격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말레콘 해안가


쿠바는 다른 중남미 지역과는 다르게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나라이다. 그래서 아직도 슈퍼마켓에는 물건이 들어오는 날 입구부터 길가까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고. 산책을 하다 들어간 작은 상점에는 다섯 가지의 초콜릿이 두 개 세 개도 아닌 딱 하나씩만 진열되어있기도 했다. 


먹을거리, 마실 거리가 늘 풍요로운 곳에 살다가 단지 다섯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것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간 식당 점원은 계란이 떨어져서 오로지 샌드위치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크기가 커서 기대를 걸었던 슈퍼마켓에서는 어른용 칫솔을 구할 수가 없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아름다웠다. 


쿠바에 머물던 시간 동안, 불편하고 낯선 이 나라는 내게 계속해서 위로를 건넸다. 언어와 문화가 새롭다 못해 어색하기까지 한 쿠바에서 나는, 모든 것이 넘쳐흘러서 당연하지 않은 편리함을 당연시하는 곳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응원을 받았다.  




첫 번째 위로,

"달라도 괜찮다"


회사를 그만둔 지 6개월 정도가 흘렀던 시점이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직장생활, 결혼, 육아 등의 이야기를 나눌 때, 나에게는 영성 Spirituality, 입양인 봉사활동, 콘텐츠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여름 동안 중국과 일본을 다녀오고, 매달 영상 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라는 진심 섞인 질문도 생겼다.  


행복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보고 따라갈 선배도, 롤모델로 삼고 싶은 예시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시 일상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집을 떠나 도착한 하바나는 나를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으로 반겨주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 살아보지 않은 삶의 방식을  보았다. 나와는 다른 과거와 미래를 가진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정답이랄 수도, 내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의 삶이 기준이랄 수도 없다. 

나에게는 나의 삶만이 주어진 것이므로, 남들과 다른 선택, 방향, 모습 전부 다 괜찮은 거였다. 




두 번째 위로,

"느려도 괜찮다"


태풍을 만난 도시가 천천히 예전 모습을 찾는 동안 나는 하바나에 발을 디뎠다. 나의 집 밴쿠버는,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에는, 아직 건물들이 무너지고 창이 모조리 깨어질 정도의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서울 같은 경우는 작은 오류만 생겨도 기관과 단체들이 합심하여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고쳐놓는 시스템이 탁월하다. 그래서 그런지 하바나 사람들의 길고 여유로운 호흡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골목골목마다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걸어 다니는 현지인들과 도시 구석구석을 재빠르게 훑고 다니는 여행객들이 크게 대조로이 보였다. 최대한 많은 건물을 카메라에 담고, 최대로 활기찬 미소를 셀카로 남기려는 시도들. 그에 반해 쿠바인들은 가족과 친구, 연인과 아이와 그저 흐르는 대로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서울에 온 이후, 마음이 급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묵상을 하며 내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도 그만큼 멈춰주면 좋을 것을, 시간은 절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무척 냉정한 녀석이니까. 모두가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이 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도 가끔 일어났고, 나의 속도가 평균에 비해 현저히 느린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쿠바는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 

잠시 멈춰서도 괜찮다는 의미로, 걷고 있는 나를 붙잡아, 오늘 안에 머물러 있도록 안아주었다. 


‘아, 조금 느려도 괜찮은 거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 큐라에서 ‘35살이 넘으면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대체 무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숱한 엔지니어들과 창업자들이 자신의 경우를 나누어주며 35살이 넘어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는 이야기처럼,   속도나 시간, 나이로 한 사람의 미래나 가능성을 점치는 못된 습관 따위는 하바나 앞바다에 던져버릴 용기가 생겼다.  




세 번째 위로,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요리를 하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장을 보러 나갔다. 현지인들이 채소와 과일을 구한다는 시장에 들어갔다가 쾌쾌한 냄새와 정돈되지 않은 매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편안하게 장을 보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다 뒤집어 엎고 나서 새롭게 건물을 세우고, 새로운 매대를 설치하고, 상태가 좋은 물건들을 골라다가 새로운 시장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해보다가 얼른 멈추었다.  



쿠바는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 


물론, 최대한의 동기를 부여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은 언제 들어도 매력적인 삶의 철학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어떤 때란 모든 것을 뒤로하고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순간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서, 나 자신이 모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그렇지 못한 때에는 대체 누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두어도 괜찮다는 위로는 지금 것 익숙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어렵고 어두운 도전을 앞둔 지금, 큰 힘이 되어주었다. 


쿠바는 내게, 변화가 힘인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도 나에게 힘이어야 함을 가르쳐주었다. 




네 번째 위로,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 괜찮다" 


쿠바에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없던 레스토랑들이 들어섰고, 수입품들이 눈에 띄게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공원에는 하루 종일 젊은이와 중년층 할 것 없이 많은 하바나 시민들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쿠바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과 세계의 다양한 소식을 원하고 있었고, 또 즐기고 있었다.  


이전에 온 나라 전체를 잠식하고 있던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너희는 변화를 말하지도 마, 그냥 그 자리에 얌전히 있어,라고 요구한다면 그 얼마나 불공평하고 답답한 처사겠는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갖고자 원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라며 사람들을 사회적 계급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는 사회의 시스템은 어딜 가나 팽배해 있다. 그렇지만 개인이 과거의 소속에서 빠져나오려고 고군분투하고, 싸우고, 노력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시도들은 지켜져야 하고 고무되어야 한다.  


2016년과는 다른 2017년을 원했고, 2017년과는 다른 2018년을 꿈꾸게 한 쿠바 여행을 떠올리며,

나는 많은 것이 그대로이겠지만, 또 다른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을 내년의 나를 기대해보기로 한다.


쿠바를 여행한 지난날,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이 괜찮다고, 쿠바가 내게 속삭여줬으니.





Sources:

All images by Yo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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