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다가 (역시나/당연하게)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검색 카테고리에 내 눈을 사로잡는 오묘하고 순진한 분위기의 여자동생들과 언니들의 사진이 떴다. 정신없이 클릭하고 스크롤하고 클릭하고를 반복하다 어느 20대 중반의 어여쁜 여자 사람의 블로그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뿌연 만큼 분위기 넘치는 필름 카메라 사진들의 스캔본과 더욱 블로그를 열심히 하겠다는 귀여운 다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그래그래, 나도 기록을 더 하고픈데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 내 동생이 자기 필카 쓰면 되니까 새로 사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줬단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미 주어진 얼굴과 마음과 몸. 바꿀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나보다 청순하고, 나보다 맑고, 나보다 건강한 이미지를 부러워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냥 빨리 수긍해본다. 나로선 할 수 없는 것.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하기로 한다:
01 먼저 얼굴을 너무 박박 문지르는 세안 습관은 얼굴을 살살 문지르는 세안 습관으로 바꿨다. 이건 얼굴이 급격히 예민해진 지난해, 계속 붉어지는 이유가 피부 장벽이 무너졌음 때문이었단 걸 알게 된 후 올초부터 약산성 클렌저를 구매하고, 두 볼을 씻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뺐다. 그랬더니 얼굴은 안정을 찾았다. 안 그래도 나를 아는 사람마다 피부가 흰 편이다, 얇은 편이다,라고 말해줬었는데 진작부터 조심히, 소중히 다뤄줄걸,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후회보단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믿는다.
02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 평생을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실제로 ‘마음을 먹어본다’는 것에 대해서 요즘만큼 많이 생각한 때가 없었다. 행동이나 언어는 바꿔봐야지 노력을 많이 했는데, 마음을 다르게 먹어보겠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었는지. 창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쨍하고 떠오른 해를 올려다보면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천천히 고른 숨을 내뱉고 다시금 마셔본다. 급할 것도 없고, 극단적일 것도 없다. 나에게는 나의 길과 나의 시간표가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고 이런 나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 살아서 지금도 나와 성령으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워본다.
03 생일을 기념하는 뜻으로 (생일의 이틀 전인) 7월 3일부터 운동을 했다.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의 시간만으로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 홈트를 했다. 틈이 나면 따릉이를 탔다. 차는 일부러 안 몰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져 지금은 운전을 한다.) 7월은 거의 매일 땀을 흘렸고, 8월은 7월보다 운동은 못했지만 온도가 더 올라서 땀은 비슷하게 흘렸다. 식단도 조절했다. 밀가루를 너무 사랑하는데 이대로 수제비를 먹었다간 어느 순간 밀가루와 영원히 작별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한 끼 한 끼 살짝씩 신경 써주면서, 미리 계획하면서 장을 봤다. 며칠 전 두 달 만에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원래라면 뚝딱했어야 했던 한 그릇을 미처 다 끝내지 못했다. 면발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밀가루 맛이 그리 좋지 않았다. 식단 조절의 열매를 이렇게 봤다. 몇 가지 좋아하는 레시피를 가지고 뚝딱 요리를 하고 간식을 만든다. 좀 더 건강한 습관, 좀 더 습관적인 식습관을 체질화하고 싶었는데, 훌륭한 시작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사실 내가 내 선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늘 알고 있었다. 내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보다는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편했다. 쉽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할 일 하며 살다 보면, 변화보다는 반복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이런 기록을 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것이 아닌 이미지나 분위기를 홀린 듯 바라보는 일보다
온전히 나의 것일 수 있는 나만의 이미지와 나만의 분위기를 기르는 일,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넓어지고, 한층 더 높아지게 하는 작은 일이 무엇인지부터 고심하고 오늘 바로 시작해보는 일.
엄마의 생일이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아서 어떤 선물을 할까, 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언니, 엄마는 언니에게 최고의 선물을 받았대.”라고 말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 블로그, 언니가 만들어줬잖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계속 미뤄왔던 일. 그러나 7월에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
내가 기록을 사랑하고 글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 엄마도 글자에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일.
우리는 모두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고
할 수 있는 것을 두 손과 한 마음으로 더욱 열렬히 붙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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