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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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은 글 아래에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누군가는 어딜 가도 존경과 친애에 둘러 쌓인다. 나이에 상관없이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기쁜 일,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축하와 위로가 찾아온다. 입을 열기도 전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지혜를 구한다. 온 마음과 두 귀를 열어 말을 청취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어딜 가나 구박과 미움의 향에 둘러 쌓인다. 나이가 적던 많던 웬만하면 그를 피하고만 싶다. 기쁜 일, 슬픈 일이 생겼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입을 열기만 하면 눈을 깔고 핸드폰을 보던지, 슬슬 자리를 피한다. 그의 입에서 무슨 독이라도 나오는 듯, 무슨 말이든 듣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온 힘을 다해 마음과 귀를 닫는다. 가능하면 눈도 닫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의 10대 시절,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방법으로 많이 들으며 자랐다. 칭찬, 인정, 애정의 말은 최소한으로 흘러 다니던 집안. 내가 잘하는 것이나 잘할 수 있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나 못하는 것에 대한 충고와 비판이 가득했다. 사실을 마주하자는 주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피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으니 마주하면 좀 더 나으려나, 했던 훈육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10대를 보냈는데 이상하게도 20대에는 내가 말실수를 많이 했다. 아니, 말실수가 아닌 것에도 신경을 과도하게 썼다.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누군가가 마음을 다치진 않았을까.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누군가가 화가 나진 않았을까, 늘 조마조마했다. 이 생각에서 벗어난 것이 20대 후반이었으니,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내가 잘하는 것이나 잘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이미 해버린 것, 혹시나 잘못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그렇게 보냈다 -- 나의 청춘을, 나의 젊음을, 나의 20대를.
30대가 되었다. 올바른 곳에 마음 쓰는 법과 말이 가진 힘을 배웠다. 여전히 실수를 하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10대 때처럼 충고와 비판에 마음 쓰리는 일, 20대 때처럼 다른 사람의 기분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잘하는 것이나 잘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이미 해버린 것,
혹시나 잘못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무엇 때문에 마음 다치는 일이 이리 많았는고, 살펴보니 그곳엔 늘 말이 있었다. 어떤 이가 사나운 눈으로 매섭게 노려본 눈빛보다 바람에 흘리듯 툭, 하고 내뱉은 한 문장이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다. 내게는 말이 그랬다. 텍스트에 감동하고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듯하다. 반갑지 않은 눈빛도 그 무게가 상당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단어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들어 나를 수 없을 만큼 무겁다. 말 따위가 무거워지는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 문장의 무게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의 몫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말실수를 하는 한낱 인간으로서 생각을 해보니 말은 마음밭에서 나는 열매와도 같다. 내 마음이 온전치 못하면 아무리 좋은 나무가 심겨도 열매는 아픈 열매가 맺는다. 내 마음밭이 자갈밭, 돌밭인데 알차게 영근 열매가 맺힐 리 없다. 열매는 밭의 상태, 나무의 상태, 주변 날씨, 나무를 기르는 과수원 주인의 마음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우리의 마음이 담긴다. 말 그릇이라는 베스트셀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이 그릇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줘도 그 그릇을 다듬지 않는다. 아니 다듬을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 게 더 맞다. 말을 다듬기에는 마음이 너무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 따위가 무거워지는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 문장의 무게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의 몫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서 의도는 선한데 말로는 잘 안 풀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표현이 문제라고 조심스럽게 알려줘도 잘 못 받아들이고, 잘 못 이해하는 듯하다. 왜일까. 왜 주변에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찾아가거나 찾아올 사람도 없어지고, 심지어 일도 잘 안 풀리는데 자신의 표현 방법을 고칠 수 없는 것일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서 일까? 코로나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대 전체의 통념이 되면서 모두가 자신처럼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사람들은 코로나 속에서도 자신과 뜻이 맞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나지 말라고 해도 만날 방법을 다 찾아내고, 여행가지 말라고 해도 여행 갈 수 있는 방법을 다 만들어냈다. 그게 온라인이든 실제 상황이든 교류와 소통이 끊긴 적은 결코 없다. 설마 자신의 상황이 모두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젊을 때는 샤프하고 적확하다는 말이 칭찬일 수 있다. 특히 숫자로 일을 하는 사람들,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칭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관점으로 사람을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분석이 되고 만다. 누군가의 단점을 그렇게 파헤친다. 알려주면 도움이 될까 싶어 상처가 될 수 있는 비판을 건네고 만다. 받기 싫다는 사람을 불러 세워, 양팔에 던져준다. 마치 선물처럼, 귀한 보물처럼, 인생을 한방에 빵 -- 하고 띄어 성공으로 내달리게 해 줄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분석으로 풀리는 것이라면, 똑 부러질수록 잘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차가운 분석보다 따뜻한 허용이, 냉철한 인정보다 무조건적인 포용이, 맨눈으로 보는 현실보다 소망으로 보는 현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차가운 분석보다 따뜻한 허용이,
냉철한 인정보다 무조건적인 포용이,
맨눈으로 보는 현실보다 소망으로 보는 현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어쩌면 의도는 선하나 말로 망하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말이 먼저 필요할지 모른다. 누구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먼저 어루만져져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산 사람의 삶을, 그의 과거를, 얼룩진 마음을 누가 만져줄 수 있을까. 지구 상에 딱 한 사람, 그분밖에 없었던 듯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 계속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선한 마음을 더 선한 문장으로 전하는 사람들. 순수한 의도를 순수함 그대로의 단어들로 건네는 사람들. 그들은 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말 뒤에 어떤 마음이 숨겨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 타인에 대한 궁금함을 질문으로 먼저 표출한다.
내 마음도 내 의도도 선한데 말은 그렇게 안 나와서 힘들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글쓰기를 추천한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데에는 누굴 찾아가서 주야장천 떠드는 것보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서 종이와 펜 하나를 대면하는 것이 낫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무엇이 나와 마음과 말 사이에 겹겹이 스며들어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지금 참고 대신 글자로 써 내려가다 보면 내 말이 도구가 아닌 무기가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지금 참고
대신 글자로 써 내려가다 보면
내 말이 도구가 아닌 무기가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대 때 못 받았던 칭찬과 인정. 20대 때 갈구했던 좋은 관계들 -- 30대인 지금 내가 먼저 해주고 또다시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매일 보니까 가장 익숙해지는 사람에게 제일 많이 해주고, 가끔 보지만 그래서 더 반가운 사람들에게 건네면서.
‘말’에 대해서는 살면서 계속 배워나갈 것이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말의 세계이니까.
어딜 가나 사람들이 무리 지어 함께 다니며 그가 하시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행한 이적에 놀라기도 했던 그분. 그를 따라가 보고 싶다. 나도 언젠가는 한마디 말에 진심과 지혜와 포용과 이해를 눌러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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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Main image by Aarón Blanco Tejedor on Unsplash
Images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