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매일) 쓰기를 기획하며
핑곗거리는 많다. 지난해, 출산을 했고 15개월간 가정보육을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그리고 몸을 회복하는 시간. 하고자 했던 것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갔고, 내가 다시 나 자신을 알아보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돌 무렵, 임신 후기부터 지속되었던 피로가 조금 풀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더 매력 있게 다가오던지. 작가로 사는 일. 글을 쓰는 일. 새로운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는 일. 브랜딩을 하고 제품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꾸리는 일.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일. 승진을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는 맡는 일… 결국, 지금의 내가 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을 끊임없이 꿈꿨다. 작가. 글쓴이. 비즈니스 오너. 세계여행자, 등등등…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더 매력 있게 다가오던지 ...
물론,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고, 때로는 그 감동의 깊이가 너무 깊어 눈물이 넘쳐흐르기도 한다. 아이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와는 무관하게, 아련하리만치 늘 아름답다. 내 생애 이처럼 다른 부사여구 없이 완벽하고 온전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서 내가 차지했어도 이상할 것 없는 다른 자리들이 하나도 탐나지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마’라는 역할로도 충분했고, 나 또한 새로운 역할 하나로 충만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쓰기로 한다. 왜냐고? 아이에게 아이 고유의 삶이 있듯, 나에게도 나의 삶이 있음을 자각해야 하니까. 우리는 공존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순 없으니까. 그리 해서도 안 되는 게 당연하고. 나에게 쓰기란 언제나 그러했다. 나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고, 나를 알아차리게 해 주었다. 자각하기 위해선 멈추어 써야만 한다.
다시 ...쓰기로 한다.
현재 나는 3주 남짓한 시간의 한국과 홍콩 여행을 마치고, 우리의 보금자리인 캐나다 밴쿠버에 있다. 살면서 처음으로 고국인 한국을 이리 짧은 시간 여행했다. 돌아오고 나서는 또 처음으로 한국이 이리 그리울 수가 없다. 이래서 향수를 그냥 향수라고 하지 않고 향수병이라고 하는가 보구나.
한국을 처음 방문해 본 남편도 비슷한 마음인 듯하다. 한국을 여행한 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때, 우리가 굳이 캐나다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겠다, 라고 먼저 말한 게 그니까. 2025년 가을의 순천(그리고 광주)과 서울은 우리 부부에게 정말 다정하고 포근한 인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막 걸음마를 하게 되어서 세상 모든 곳에 발자국을 찍고 싶은 14개월 아들. 그를 데리고 아시아 2개국을 여행하는 것은 딱 예상한 만큼 아찔하고 어려운 모험이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가족들에게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는 일정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지만, 때때로 우리가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고단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더 확실해진 것이 있다. 나는 모험하듯, 탐험하듯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
모험하듯, 탐험하듯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 ...
움직일 때 더 움직일 수 있다. 여행을 하고 나니 다음 여행이 두렵지 않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니 그다음 글이 두렵지 않다. 한 번의 용기 그리고 한 번의 움직임이 쌓이기만 하면 누구나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고,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15개월의 시간 동안 하루에 적게는 한번, 많게는 세 번씩 산책을 나갔던 것이 알게 모르게 내 체력을 기르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걸음과 용기가 모두 발산된 것만 같다.
그러니, 나는 다시 기록을 시작한다. 복직을 한 달 앞두고, 올해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며. 어떤 글이 완성되어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될지 아직 모른다. 수많은 영상들과 사진들이 어떠한 형식의 에세이로 우리의 지난날들을 아카이빙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같은 마음인 것은 누구나 에세이스트라는 믿음. 살아있다면, 삶이 있다면, 에세이가 될 수 있는 순간은 모두에게 너무 많다는 믿음.
누구나 에세이스트
새로운 기록의 출발점에 선 나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본다.
엄마가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의미로.
응원한다, 유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