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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Nov 27. 2016

사랑은 진동한다

당신의 삶의 증거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소리이다.


어색한 미소를 띠고 몇 질문과 답을 교환하고 나면, 다음 주엔 무얼 할까, 어떤 식당에 가볼까, 지켜지지 않아도 괜찮을 약속들을 만든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한 후 뒤를 돌아 각자 가야 할 길로 나선다.


거의 매번,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의 기분은 어색하고, 또한 새롭기도 하다. 익숙함을 벗어나는 순간, 예상 불가능한 상황들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한다. 어차피 삶은 당신의 힘으로 멈출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새로운 사랑에 도전할까?

아무리 물어도 당신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돈을 버느라, 학위를 따느라,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느라 바쁘다고 하면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서 소개팅을 하고 데이트에 나가는 것일까.

태어나 처음 보는 다양한 얼굴들 위에 검지 손가락을 얹고 왼쪽 오른쪽으로 마구 사진을 넘기다 보면,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에게 민망한 첫인사를 건네고 그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 보면,

스카이트레인(밴쿠버 지상철)에서 눈이 마주친 맘에 드는 타인에게 끈적한 눈빛을 쏘다보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여자에게 와인 한잔을 건네보면,

인생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당신과 나, 우리뿐일까.


사랑의 시작에 진동이 있다.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의 처음의 쑥스러움, 첫 문자, 첫 답장, 첫 전화통화, 첫 저녁식사, 첫 키스.

상대방에게 나를 소개할 때, 결코 객관적이지 않은, 온전히 나만의 관점에서 본 나 자신을 설명하면서 그가 나를 검증해야 할 때가 코앞으로 오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는 미세하게 진동한다.

첫 문자는 이 문장이 좋을까, 저 문장이 좋을까, 핸드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은 진동한다.

여보세요, 나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렸을까. 전화를 끊고는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지는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진동한다.

음식을 집는 포크 끝이, 수프에 닿은 숟가락 끝이, 찻잔에 닿은 윗입술이, 어쩔 줄을 모른 채 진동하고 만다.

아쉬운 포옹으로 데이트를 마무리할 때면 괜한 상상 속 피의자가 된 것 마냥 온몸이 진동한다.


당신은 다음 데이트 제안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진동을 기다리는 사람이 패배자가 되고, 진동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승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진동을 사이에 둔 눈치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다. 진동을 향한 집착. 핸드폰이 진동할 때마다 높아져만가는 자신감과도 같은 별 의미 없는 것들.


아슬아슬한 연애의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가느다란 밧줄 위에, 떨어질 듯 말 듯 기어코 버텨내고 있는 당신의 두 발. 가을의 끝, 마지막 순간까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짙은 갈빛의 나뭇잎을 닮았다. 겨울의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바람에 온 몸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버텨본다. 신경과 핏줄로 연결된 몸의 모든 구석이 떨리기 시작한다. 알면서도 제 힘으로는 내려갈 수도 멈출 수도 없다. 

그렇게 사랑은 계속해서 진동한다.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는 사랑이 끝나는 소리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는 첫 번째 단계. 비행기에 오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생각은 어떤 이가 내 옆에 앉게 될 것인가, 라는 것이다. 공중에서 흔들리는 비행기처럼, 당신의 마음은 들쑥날쑥 휘청대곤 한다. 그리고 그 진동이 끝나면 비행기에 올랐던 모든 이들이 각자 계획해놓은 여행길로 떠나간다.


짧았던 만남의 시작은 어느 시간 동안 지속되다가 끝을 맞이한다. 새로운 사랑은 순식간에 익숙한 사랑이 된다. 나의 공간이 우리의 공간으로, 나의 주말이 우리의 주말이 되는 것처럼. 시작에는 잦았던 진동이 조금씩 더뎌지고, 어떤 강도의 진동에도 서로, 조금씩 무뎌진다. 어차피 인생에 많은 요소가 다 그렇듯, 새 것은 오래된 것으로, '모르다'는 '알다'로 변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재빠르게 변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미칠 듯이 어렵고, 어색하고, 떨렸던 감정들이 급하게 그의 모양과 냄새와 위치를 바꾸게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밤을 새워 편지를 쓰고,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예약했던 헌신적인 당신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눈에 거슬리는 행동들이 자주 포착되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각자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렇게 우리가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휘젓고, 상대의 눈을 보며 혹시나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과 의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당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함이 포착될 때, 자신도 모르는 안도감이 흘러 들어온다. 사랑이 모양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마지막에도 진동이 있다.

서로를 마주한 마지막 밤, 마지막 대화, 마지막 인사, 마지막 악수, 마지막 바람, 마지막의 모든 마지막들.

숱한 사랑의 고백과 행복했던 기억들이 공기 중에 흩어지며 진동한다.

꼭 맞잡았던 두 손, 같은 모양이었던 미래의 계획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며 둘로 쪼개질 때는 분명 진동의 소리를 낸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함께 갈등을 빚어내면서 두 사람의 몸과 정신과 영혼까지 진동한다.

헤어짐을 인식한 순간부터, 과거의 일들이, 현재의 어려움이, 미래의 불분명함이 위아래로, 양옆으로 마구 흔들린다.


그를 보내주기로 한다. 내가 보내주기로 한 사람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 눈물이 번지거나, 서로가 마주한 핸드폰으로 진동과 함께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한다. 결코 모른 척할 수 없는 진동. 마음 전체로 받아도 다 이해할 수 없는 진동의 의미, 사랑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이다.


결국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은 쓸쓸히 땅으로 떨어진다. 푸르렀던 봄, 풍요로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여유로움을 거치는 동안,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쉽게 놓을 수 없었던 당신.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놓았지만,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떨리는 마음. 

당신의 인생은 여전히 진동하고 있다.




Source:

Image by Isai R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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