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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Jan 05. 2017

단골 카페의 비밀

사랑받는 사람들의 사랑받는 이유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도착해서 아이스 모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우리. 나란히 앉아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각자 일과 독서를 한 지 25분 정도가 지났을 때, 동생이 내게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다시는 안 올 거 같아.

나는 '나도 같은 생각, '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야 할 책이 쌓였을 때,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할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싶을 때 찾곤 하는 카페. 한 거리에 하나 이상의 카페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와버렸다. 커피 한잔 할래, 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가 갖는 의미가 더욱 깊어졌고, 뜨거운 차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그렇지 않은 대화보다 좀 더 따뜻한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에 있는 여러 카페 중에서도 내가 자주 찾는 몇 곳이 있다. 어제오늘 다르게 새로 생겨나는 곳들 중, 굳이 고집하여 자주 찾는 곳에는 대체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





커머셜 드라이브 Commercial Drive에 있는 모자 커피 Moja Coffee라는 카페는 내가 많이 애정 하는 곳 중 하나. 집에서 차로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자주 들리곤 한다. 카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겉옷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주문을 한다. 이 곳은 포근하다.


이 곳에서는 동네 주민들, 특히 어린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모차 안에 누워 똘똘한 눈을 깜빡거리는 아이에서부터 뒤뚱뒤뚱 귀여운 걸음마를 하는 꼬마까지. 이들 때문인지 모자 커피의 온도는 따뜻하다.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도 모자 커피를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질 만큼.




곧 끝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너무 편한 소파보다는 딱딱한 책상 의자에 앉는다. 킹스웨이 Kingsway에 있는 매치스틱 Matchstick에는 작지만 귀엽고, 딱딱하지만 편안한 의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들을 선호하기에 스툴 Stool은 피하는 편이다.


의자는 카페에서도 우리의 몸과 가장 가까이 맞닿는 부분인 데다가, 앉은 채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카페를 찾는 우리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카페의 온도가 피부에 닿는 봄바람이라면, 카페의 의자는 우리를 껴안는 포옹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카페 중에 팔 아웃 Far Out이 있다. 이곳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 여자 때문인데, 가벼운 인사나 친절한 말 한마디 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주문 시 영어 발음을 재확인하며 고쳐주려고까지 하는 그녀의 비매너가 인상 깊다. 기분에 따라 불필요한 인사를 생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전공이 영어라서 고객들에게 공짜 영어강의를 하는 걸로 세상에 진빚을 갚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도 없지만, 따뜻하고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기에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고, 때론 커피를 만들어 건네주는 손길이 어떤 사람의 손길인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의식하며 살아간다. 테레사 수녀, 까지는 못되어도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운영을 하고 사람을 마주하는 카페가 난 좋다. 그 관점에서 카페 팔렛 Pallet이 늘, 팔 아웃 Far Out을 이긴다.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을 때, 왜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잘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부가 너무 추웠고, 의자는 너무 불편한 데다 커피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으며, 일하는 사람들도 뭔가 정적이어서 불편하였다는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고 난 뒤, 그곳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그곳의 낮은 천장. 왠지 몸을 구부려야만 할 것 같은 천장이 답답했던 것이었다. 가끔은 낮은 천장은 아늑하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고 있는 것만 같은 친근함이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컴퓨터를 들고 가서 작업을 하는 곳으로는 어울리지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천장은 개스타운 Gastown의 넬슨 더 시걸 Nelson the Seagull이나 리볼버 Revolver가 딱이다.




카페를 열어볼까, 잠시 고민을 했었던 작년에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미팅을 하면서 참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카페에 들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주고 싶은 마음일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커피가 따뜻하고 맛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 커피를 받는 모두가 다 같은 판단을 내릴 거라는 보장도 없다.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도 비현실적일만치 이상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비밀'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삶'을 지속하는 특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아무나 일반적인 생각을 특별한 생각으로 바꿀 수는 없다. 또한, 아무나 처음 주어진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들어낼 순 없다. 평범한 행동을 특별한 행동으로 만드는 방법이 '비밀'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카페의 4가지 요소는 평범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인지할 수 있고, 누구나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찾아온 또 다른 한 번의 월요일, 이라 여겨진 오늘.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힘들어 질척대고, 눈이 많이 내린 어제를 원망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그런 월요일이 아니다. 알고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에서 머물지만 않는다면, 인지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대단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겨, 커피 하나로 사람들의 삶을 더 따뜻하게 해주는 카페처럼,

나에게도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삶의 작은 요소 하나가 있는지 묻게 되는 날이다.




P.S.

새해를 맞아 늘 읽을 거리가 부족해 지겹도록 인터넷을 뒤지는 분들을 위한 뉴스레터를 시작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저와 저의 주변인들의 관심사이자, 짧은 브런치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게된 우리 세대의 관심사인, 1) 삶, 2) (연애와 인간관계를 아우르는) 사랑, 3) 일에 대한 글들을 골라서 소개하는 뉴스레터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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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ver image by Luke Chesser

Caption images by Worthy of Elegance, Annie Spratt, Tim Wright, Patrick Schne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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