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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Oct 21. 2016

어른이 되는 것

불편한 편안함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오렌지 하나를 내 손으로 까먹는 것


이 곳에는 오렌지를 까줄 엄마가 없다. 맘에 안 드는 직장동료를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 줄 사람도, 답답한 마음에 뛰쳐나가도 쫓아 나와 날 다독여줄 사람도 없다. 맛은 있지만 껍질 까는 게 귀찮아서 매번 포기하고 말았던 오렌지도 내가 직접 까먹어야 한다. 비타민 C 충전을 위해서 귀찮음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선택한다.

 

어른이 되는 건 불편하다. 

그러나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불편함이 조금씩 편안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퇴근하고 15분 만에 김치 해물 수제비를 요리하는 것


퇴근을 하고 다리를 건너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저녁식사로는 무엇이 좋을지,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답답한 커튼을 걷으니 집안에 햇살이 가득해진다. 야채를 썰고 밀가루 반죽을 한다. 해물과 김치로 국물을 내려고 냄비에 담은 물이 끓는 동안 삼겹살을 굽기도 한다. 오늘 하루 진짜 고생했다 싶으면 프라이팬에 망설임 없이 스테이크도 집어던진다.


함께 사는 동생이 집에 있는 날이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혼자인 날에는 넥플릭스 Netflix나 유튜브 Youtube를 튼다. 밥을 먹을 때만큼은 북적한 그 느낌이 좋아서 내가 있는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운다.


어른이 되는 건 허전하다. 

그리고 그 허전함이 어느새 익숙해진다.




주말에 부모님 집에 방문해 김치 담그는 방법을 전수받는 것


부모님은 차로 20여분 떨어진 곳에 사신다. 토요일 오전에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점심시간 즈음에 도착한다. 엄마는 그 날 아침부터 배추 한상자를 사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굵은소금으로 배추를 간하고, 젓갈과 고춧가루로 양념을 만든다. 지금 것 엄마는 이렇게 혼자 쪼그려 앉아 우리가 젓가락으로 집고, 이빨로 씹고, 목구멍으로 넘긴 김치를 만들어 오고 계신 것이다. 


어른이 되는 건 김치를 담그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물에 젖은 배추처럼 무겁다.

하지만 복잡하고 무거운 그 김치를 직접 담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내가 어른이 되어 간다는 증거이다.




엄마가 한 명의 여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다 담근 김치를 네모난 통에 담아주는 엄마를 바라본다. 며칠 전에 만든 무 반찬과 저번에 주려다 잊어버리고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양념한 스테이크 두 조각, 자신이 먹으려고 사놓은 요구르트, 데리야키 소스, 굴 소스, 포도 주스도 챙겨주신다. 엄마가 직접 담그는 김치를 평생 '맛있다, 엄마!' 한마디로 꿀꺽했던 나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 내 나이쯤부터 김치 담그는 일을 시작했을 젊은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해진다.  

어른이 되는 것은 내 안에 급하고 빠르게 파고드는 미안함 마음과 같다.


그래서 이토록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건만, 가능한 한 저 멀리 뒤로 미루고만 싶었건만, 

난 벌써, 엄마에게 미안함 마음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어른이 되어버렸다.




Source:

Image by Priscilla W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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