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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Jan 20. 2017

아무도 너를 정의 내릴 수 없다

나만 나에게 할 수 있는 일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무료로 엑셀 워크숍을 제공한다. 1년을 기다린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과 쉬는 시간 30분을 뺀 6시간 30분 동안 레벨 2와 레벨 3에 해당하는 엑셀의 주요 기능들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엑셀을 매일 사용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아낄 수 있는 좋은 공식들을 알게 되어 뿌듯했다.


수업을 진행한 건 중년의 인도 선생님이었다. 굵은 악센트에 멋을 하나도 내지 않은,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흔히 식당 옆자리나, 버스 앞자리에서 한 번쯤 마주칠 수 있는,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의 주인이라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익숙한 느낌의 사람.


그는 수업을 시작하며 엑셀의 간편함과 중요성을 반복 강조했다.

너와 같은 사람, 즉 회사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에게는 도움이 되는 워크숍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작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숫자를 입력하는 너, 이 회사의 직원에게 꼭 필요한 게 바로 엑셀이다, 라면서.


Office Worker.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사무실 근로자.


나는 사무실 근로자이다.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어떻게 캐나다 밴쿠버까지 오게 되었고, 어떤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목표로 지금 이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오늘이 되도록 일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사무실 근로자이다.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세상 누구나 곧바로 눈치챌만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20대 초반,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만들고자 했던 그 간절함은 아마도 '타인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리는 정의'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아주기를. 내 이름을 떠올렸을 때 어떤 물질적이고 만질 수 있는 유형의 것(책)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전도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된다. 옛날에 일어난 일이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신날 수는 없다. 내가 5년 전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갖게 된 것은 그저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의 친한 친구에 의해 한 번씩 거론되었다가 잊히고 마는 나의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름과 직업을 뺀 나머지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어 나에게 어울릴법한 화장법과 스타일링을 조언해주었다. 사람의 얼굴은 사계절로 나눌 수 있는데, 나의 경우 '봄'에 해당된다고 했다. 파스텔 톤의, 텍스쳐가 확실하고 각이 있는 옷들이 군중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더 돋보이게 해줄 거라는 이야기.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스타일을 갖게 되면 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축 쳐지는 소재와 우울하고 어두운 색감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당부의 말.


지난번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입고 있던 회색 스웨터와 감색 니트 스커트는 여류 소설가 캐릭터에 더 어울린다며. 하지만 나는 여류 소설가가 아니지 않냐며. 그녀는 나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응원해주고 있었던 게 맞는데, 맞다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사무실 근로자.


나는 (아직) 여류 소설가가 되지 못한 사무실 근로자이다.

나는 아직 (여류 소설가가 되지 못한) 사무실 근로자이다.






어릴 적, 장래희망이 무어냐고 물으면 우리는 대통령, 선생님, 외교관, 경찰관, 미스코리아, 신사임당, 화가, 가수, 이런 이름들을 적어냈다. 최대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미지를 깨끗한 도화지 위에 색칠하고, 그 밑에 서툰 글씨로 써낸 건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가 아니라, 나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가 아니었을까.


같은 반에 꿈이 없었던 친구는 없었는데, 그 꿈이 남에게 보이는 직업이 아닌 삶이었던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나를 이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릴 때마다, 그 사람이 정말 나인 것처럼, 내 전부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 건 아닐는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누가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아줄 수 있겠는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말하고 느끼고 만져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에 지쳐, 일상에 찌들어, 자신을 제대로 정의 내리지도 못하고 산다. 하물며 타인에게는 어떻겠는가. 생각도 애정도 쏟을 틈 없이 하나의 명사로, 그의 직업군으로 정의 내리는 편이 편할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남이 뭐라고 하든, 그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고민의 흔적이 없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정의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하던, 직업이 꿈이라고 생각했던 오해처럼.






이제와 왜 5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쓰지 못했는지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돌릴 수 없고, 돌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해도 내가 그때와 다른 선택을 했을 거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내가 사무실 노동자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사무실 노동자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여류 소설가가 되지 못한 직장인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작은 여유 속에서 큰 자유를 찾고, 잠깐의 만남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무도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

나를 정의 내리는 일은 나만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도 너의 꿈을 정해주지 않는다.

네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꿈을 정하는 일은 너만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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