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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Mar 11. 2017

나도 용서하고 싶다

용서에 필요한 한 가지

용서

 얼굴 용 | 恕 용서할 서

 

① 관용(寬容)을 베풀어 벌(罰)하지 않음

② 꾸짖지 아니함 

③ 놓아 줌




 


내가 뭐라고 누굴 용서하겠다니, 애당초 포부가 커도 너무 큰 시도이긴 하다. 

살다 보면 화가 나는 일들이 일어난다. 

계속 화를 내고 살 수는 없으니까 잊던지 용서하던지 둘 중 하나를 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거지, 내 의지로 잊어지는 건 없다. 잊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HD 텔레비전처럼 선명해지는 그 사람의 한마디, 표정과 제스처. 잊으려다가 더 오래 기억되는 오류만 남는다. #HTTP404


새치기하는 몰상식한 아줌마, 안 들리는 척 내 말을 무시하는 아재, 차 험하게 모는 옆집 고딩(놈).

컨디션이 별로라는 연인, 되는 일 하나도 없다며 방문을 쾅 닫는 동생 녀석. 

잘 안 풀린 미팅 화풀이를 괜한 데다 하는 직장상사, 생리 시작했는지 예민한 같은 팀 동료.

카톡 읽씹 하는 동창, 한참을 잠수 타더니 자기 필요한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친구 녀석.


ㅁ;ㅣ너ㅣ;ㅏ러;ㅏ머ㅣ아ㅓ리ㅏ멍ㄹ!@%&^$(@#)*@#$!(&%)$#(^)()#

인생. 

되는 거 없는 날엔 뭘 해도 안된다.


브레이크도 오른발로 가볍게 밟아만 주면 내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무거운 고철덩어리 자동차를 딱 멈추게 하는데,

감정은, 

생각은,

상처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아직 다 살지도 않은 한주를 통째로 고장 내버린다.


잊어지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는 용서하기로 마음먹어본다. 


먼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다.

나를 화나게 한 바로 그 사람이 나보다 열등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날 화나게 한 그 행동을 했을 거라면서.


다음엔,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쌤쌤이야, 라고 어물쩡 넘어가 본다.

나라고 완벽한 건 아니니까 누군가에게 나도 비슷한 실수를 했었던 것 같다는 이상한 공감능력이 솟아난다.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냥 용서하자. 나도 걔도 어차피 다 같은 종족이야, 라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용서일까? 

너나 나나 다 똑같은 인간이니까 넘어가자는 것이 진짜 용서일까?

 



 


나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꾸짖지 않으면 속이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놓아줄 수 없다고 끝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드라마니 영화니 하는 미디어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돈이 없던지 넘치던지, 나이가 어리던지 많던지, 최선을 다해 꼭 살려야 한다는 의사의 눈 앞에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살인마를 환자로 데려다 놓는 설정을 가지고.

목숨을 내어줄 만큼 사랑해서 결혼을 결심한 사람의 부모가 자기 부모의 철천지 원수라던가, 하는 이야기로 당신에게 질문한다.


용서할 수 있나?


진정한 용서 없이는 어떤 선택도, 행동도 할 수 없도록 모든 상황을 비틀고 꼬아서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너 정말, 용서할 수 있나?

 



 


어릴 적을 떠올려보자.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인가. 이제는 닳도록 떠올려본 그 장면. 여름방학이었다. 나는 수학이 어려워 방학 동안 수학 공부를 하기로 했다. 새벽일을 마치고 이른 오후쯤 집에 온 아빠가 책상에 나와 함께 앉아 수학 문제집을 봐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눈물바람, 아빠는 큰소리를 지르다 자리를 떠났다. 


20대 초반, 한국에 살다 미국으로 복학하기 직전에 며칠 밴쿠버 집에 머물렀다. 운전면허를 따온 내가 신기했던지, 아빠가 가게 운영 때문에 몰기 시작한 큰 흰색 (음식 배달하는 업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봉고차를 운전해보라고 했다. 집 앞 작은 로터리에서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들을 그리는 동안, 아빠는 잔소리 바람. 운전대는 그렇게 잡는 것이 아니라면서. 아직 운전하면 안 되겠다, 하면서.


아빠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틀린 말이 아닌 옳은 말들로 상처를 받는다. 수학 공부하던 때나, 초보운전자 시절을 떠올리면 이 두 상황이 바로 기억되고, 나는 그때의 거칠었던 아빠의 모습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나와 아빠의 사이에서 내게 주어진 거라곤 <딸>이라는 연약한 이름뿐인데, 그런 딸이 뭐라고 아빠를 용서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용서하고 싶다. 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아빠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용서하고 싶은 장면과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소심함이 이유일 수도 있고, 뭐든 관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길 좋아하는 이상한 습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가만있자. 일어난 일은 양쪽 모두에게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한번 사는 이 인생은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이기 때문에, 용서도 남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용서에 필요한 건 대단하고 비싼 물건이 아니다.


긴 호흡이면 된다.

 

숨을 짧게 쉬는 생물일수록 빨리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오래 살지 못하는 생물과 오래 사는 생물의 다른 점에는 호흡이 있다. 집중도 긴 호흡이고, 지속도 긴 호흡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도 긴 호흡, 성공한 전문성도 긴 호흡이다.


용서에도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긴 호흡을 하는 동안 나는 상황과 그 상황 속 인물들과, 나의 감정과 내게 남은 선택들을 둘러본다. 핑계를 댈지, 빨리 깨우치고 나서 좀 더 나은 하루를 보낼지. 

호흡을 들이마시고 뱉는 순간마다 읊조린다. 눈에 보이는 저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나의 용서에 더 힘이 있다고.


그러는 동안 몸의 독이 빠져나가고, 맑은 공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옴을 느낀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서 간혹 넘어질지언정, 이 순간만큼은 관용을 베풀어 상대방을 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생긴다. 꾸짖지 않을 용기가 생긴다. 놓아주어도 괜찮다며 나 자신을 안심시킬 수 있게 된다.


오늘 당장. 바로 지금 이 순간, 관용과 용기, 안심 없이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경영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차근히 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천천히 마스터하는 수영처럼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면서 물안을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해야만 한다, 잊는다는 것 혹은 용서한다는 것. 긴 호흡과 함께 연습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대학 시절 옷을 디자인하는 법을 배우던 나는, 시각에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유형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란, 

작은 상처 하나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오래 묵은 생각 하나 때문에 과거에 매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의 나는, 보이지도 않고 손안에 잡히지도 않는 무형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형상이 없지만 세상 누구도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보이지 않지만 절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와 당신의 일상에 맞닿아 있는, 

몸과 정신과 영혼을 아우르는 '생각, ' '감정, ' '꿈, ' '미래, '와 같은 무형의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 

그것들에 마음을 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는 긴 호흡이 있다. 


길게 숨을 쉬는 동안, 당신의 결단과 힘은 행동이 된다.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용서는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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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ver Image and caption image by Phoebe D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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