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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Apr 27. 2017

퇴사의 진짜 이유

나의 퇴사 고백서

취직한 지 2년 하고 한 달 반 만에 나는 이 곳을 떠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회사에 취직했나?


밴쿠버로 돌아오자마자 부모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 산지 8년 만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 것도 힘이 드는데 일까지 함께 해야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했던 내 잘못이었다. 나는 탈출하고 싶었다.


공짜 인력은 아니었지만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의 일이었기에 급여가 충분치 않았다. 물론,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미국에서 살던 때와 같이 독립하고 싶었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월급 말고 내가 외부에서 직접 번 을 원했다.


전공이 디자인과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전공분야를 살릴 수 있는 회사였으면 했다. 밴쿠버에 본사를 둔, 옷을 만드는 회사면 좋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던 이 곳.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다. 배경지식 하나 없던 아웃도어 브랜드에 그렇게 취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얻은 것과 그러지 못한 것


이런저런 이유로 3곳의 부서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부서를 옮길 때마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연봉이 올랐다. 매년 보너스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러 혜택들도 있었다. 다른 브랜드에서 받을 수 있는 디스카운트, 매주 금요일 무료 맥주, 회사 이벤트 때마다 제공되는 식사, 의료보험과 다양한 저금 상품들.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공평히 누릴 수는 없는 직원 혜택이지만, 있느냐 없느냐라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


지인을 만났을 때 나 여기서 일합니다,라고 말하면 모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개가 간단해지고, 대화가 정돈되는 느낌. 간단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직원 지인 할인가를 사용하면 훨씬 싼 값에 그 브랜드 옷을 살 수 있겠구나,라고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과의 갈등으로부터 나 자신을 분리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인사과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만 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상사 때문에 절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버텨냈고, 이겨냈다.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지금의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좋은 상사, 일에만 신경 쓰는 상사, 쓸데없이 집착하고 귀찮게 하지 않는 상사를 만났다. 기다림의 끝에는 역시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하고, 주말이 되면 또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할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아 나의 분야도 아닌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브런치와 블로그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글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만큼 더 잘 쓰고 싶었다.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이 주는 감동과 안도감이 좋았다. 나도 그런 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먼 산 위의 구름처럼 흐리기만 하던 내 목표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만두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왠지 이 곳에서 계속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생활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구나. 그저 모든 것이 나의 하나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그만두거나 그만두지 않거나. 누구도 뭐라 하거나, 말리거나, 못하게 할 사람 하나 없었다. 내 선택에는 힘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반대로 회사에서 얻지 못한 것이 있다:


마음이 맞는, 깊은 대화가 되는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울적할 때 웃겨주는 동료라던가,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가는 것이 기쁜 동료처럼. 하지만, 인생에 대한 고찰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친구'는 지난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사실 폐쇄적이었던 내 잘못이 더 크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좋은 동료들은 많다.)


회사에서는 매년 초마다 매니저와 직원들이 일대일 회의를 통해 한해 진행할 프로젝트와 개인의 목표치를 조정 및 설정한다. 팀에 도움이 되는 일들과 나 개인의 발전을 위한 일들을 적어 내려갔지만, 나의 진로와 열정과는 방향이 맞지 않는 일들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을 바쳐 도전하고 이룩해야 할 일들일 것이다. 그저 나의 일이 아니었던 것뿐이었다.


시간을 잃었다. 일을 하는 시간 동안 그 대가로 돈을 받았지만, 글감이 떠오르거나 감성이 폭발하는 무작위의 시간에는 펜을 놓고, 치던 타자를 멈추고, 업무로 돌아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창조할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가?


1. 걱정하지 않는 연습

먹고사는 것을 빼고는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지만,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진짜 해야 할 것을 하는 연습을 하고자 회사를 나간다. 추가적인 이야기지만, 손에 잡히는 믿을 구석이 있어 그만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져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의 결정에는 내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므로.) 그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해오던 걱정을 하지 않고, 정말 내가 해야 하는 '걱정' - 예를 들면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도시에 가서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지, 5년 전에 써둔 책은 어떤 프로젝트로 재탄생시키고 싶은지, 일주일에 한 번 만드는 뉴스레터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 - 을 하고 싶어서이다.


2. 진정 원하는 것을 하는 사실적인 실천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진짜 액숑을 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퇴사를 염두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취직과 함께 퇴사를 마음에 품는다. 하지만,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퇴사를 저지른 것은 시작일뿐이다. 해야겠다, 시도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것들에 사실적인 도전을 하고 싶어서이다.


3.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회사에는 팀이 있고, 상사가 있고, 프로젝트가 있다. 나의 선택과는 무관한 일들을 해야 하고, 그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나라는 주체는 내게 맡겨진 임무를 마무리할 때 완성된다. 그것이 직장생활이다. 나는 이 곳을 나가며 나만의 마감일을 가지게 되었다. 시키는 일 말고 자체적인 주도권을 갖고 진행할 일들.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자유 뒤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위해서 나는 그 책임감을 붙잡기로 한다. 퇴사는 그 책임감의 일부이기도 하다.


4. 의미 있는 만남

앞으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영감과 배움을 얻고,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현 직장을 떠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이 곳에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도전은 도전을 낳고, 꿈은 꿈을 낳는다. 이야기는 공감을 얻고, 경험은 성숙해진다. 읽고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를 꿈꿔본다.


5. 나 자신의 변화

누군가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면 '공유'라고 대답했던 나. 그만큼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누군가 내가 입고 먹고사는 데 있어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고 말한다면 그 말 또한 정답이라고 수긍할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변화하고 싶다. 나의 영향권이 나의 몸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길 소망한다. 머묾보다 떠남이라면, 나는 그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환경을 바꾸고,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나의 오늘을 바꾸는 것으로, 나 자신의 변화를 시작하고자 한다.



퇴사와 함께 따라오는 변화 몇 가지


내일로 미뤄오던 일들을 오늘 해야 하고, 끝맺음하지 못한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식 전하기, 올해 초에 사놓은 책들을 꺼내 읽기, 찍어둔 짧은 영상들을 한데 모아 편집하기 등.


누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다른 것들을 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를 소개하는 데 있어 회사의 이름은 빠지고 '글'이 들어가겠지.


충동구매를 멈추고, 외식과 짐을 줄이고, 집을 정돈한다. 팔 것은 팔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고.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더 많이 올리고, 새롭게 시작한 매거진, 미래적 노동, 에도 소극적 수입, 정보 기업가, 자유/유연근무제, 사이드 허슬이라는 주제로 공부하며 나만의 글들을 탄생시킬 계획이다.


그리고, 고마운 구독자분들과 뉴스레터를 통해 계속 소통할 것이다.






나는 그리 뻔뻔하지 못하고 얼굴이 두껍지도 않아서 두렵지 않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데 어떻게 긴장되지 않을 수 있나. 불안하고 긴장된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직장생활을 했고, 글을 쓰면서 퇴사를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기쁘다. 글을 더 쓰기 위해서 퇴사한다, 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지만, 막상 글을 쓰고 나니 퇴사를 결심하고 행동하기까지 더 많은 이유와 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얻은 많은 것들에도 감사한 이 마음이 깊어졌다.


운전을 하고 가나, 자전거를 타고 가나, 걸어 가나, 간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각양각색의 속도이지만, 사고에 노출되어 있음도 같다. 퇴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퇴사를 하나 안 하나 나는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고, 그 '일'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어떤 방법과 속도이든, 그 안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다.


2015년 3월 16일. 첫 출근날의 기록.


P.S. 저와 같이 퇴사를 계획 및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저질러버린 저의 '동료'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경계선이 없이 무한한) 응원의 말을 전합니다.





Source:

Cover and caption image by Yo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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