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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Jul 19. 2017

말의 품격, 그리고 사람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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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나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예시로 든 적이 있었다. 우리가 상처받는 말은 주로 '옳은 말'일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반백년을 넘게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천번 반복해온 전 세대의 어른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수준으로 빚어낸 말 때문에 상처받고 때론 눈물지었었다는 (누구나 아는 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왜일까. 왜 우리는 옳은 말에 상처를 받을까.


몸을 가지고 태어나, 두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유형의 것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음과 정신과 영을 가진 존재이기에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단 걸 인정하고 나서 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이라는 책을 만났다. 오랜 질문의 답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시원했다.






네 뒤에 앉은 누군가가 검지 손가락으로 네 어깨를 툭, 친다. 열댓 명이 모인 회의 시간이다. 앞뒤로 세명씩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들. 너는 중간쯤에 있다.


“회의 내용 좀 정리해서 적어봐.”


너는 서기도 총무도 아니었지만, 알겠다는 뜻으로 핸드폰을 꺼내 회의의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개를 든다. 네 옆에 앉은 모임의 서기가 회의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적고 있다. 고개를 젖혀본다. 네 앞에 앉은 모임의 총무가 회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너는 핸드폰 창을 끄고 가방에 넣는다. 뒤에 앉아서 네 어깨를 툭, 치며 네게 명령조를 던진 그 사람. 그 사람의 인격을 두 손에 꺼내 바라본 적이 없는데도 그냥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람은 너의 역할을 모른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모른다. 

결국 너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그 사람은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결론.






같은 선배도 한마디 더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여나 지나가다 마주칠까 싶어 두려운 사람도 있다. 단어와 말투. 문장과 억양. 말을 이루는 숱한 요소를 우리는 우리가 직접 고르고, 직접 내뱉는다. 음악도 감상하는 사람이 있고, 영화도 시청하는 사람이 있듯, 말도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특히나 말은 뱉은 사람보다 들은 사람이 더 오래 기억한다.  


어디서 한 말. 누군가에게 해준 위로. 언젠가 내가 한 고백보다도

어디서 들은 말. 누군가에게서 받은 위로. 언젠가 내게로 건너온 고백이 더 강렬한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말에는 품격이 담기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품격의 양 끝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있다.


말 한마디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다 눈치챌 수 있다. 말을 한 사람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말은 말뿐이었다. 내 깊은 속내는 내가 한 말과는 무관하다. 너의 해석과 나의 의미는 다르다, 라고. 하지만, 말은 한 사람의 입 밖을 나서는 순간, 더 이상 그 사람의 것이 아닌 그 말을 들은 당사자의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떤 명쾌한 부가설명이 누군가에게는 핑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와 닿는 책을 만난 기념으로 나는 <말의 품격> 안에 자유롭게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책을 읽었다. 오후에 골라서 해가 지기 전에 완독 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래서 굳이 이 곳에, 마음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오는 몇 줄을 소개한다.


…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면서 상대의 마음을 얻었으면 한다. 또한 당신의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진심을 건져 올려 그것으로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p10-11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포착해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p38


… 공감과 무공감, 사유와 무사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틈틈이 내면의 민낯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 … p47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는 말이 있다. p102


… 육안이 아니라 심안을 부릅뜰 수 있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p121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는 ‘나’와 ‘우호적인 타인’과 ‘비우호적인 타인’, 이렇게 셋뿐이다. p183


현재를 살면서 틈틈이 과거라는 거울을 들여다봐야 하고, 때로는 과거라는 사슬에 묶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P214






여름을 맞아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다. 장소가 바뀌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브런치도 덩달아 휴식을 가졌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을 읽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쏟아내고 나서, 일기까지 쓰고 나면 더 이상 글로 나올 이야깃거리가 보이지 않았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시간을 쏟을 때 말의 품격이 갖추어지는 것처럼, 사람들과의 어울림 이외의 나 자신과의 독대를 통해 <글의 품격>을 갖추어야겠구나... 보성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나는 다짐한다.


<말의 품격>을 딱 반 절 읽었을 때쯤, 이기주 작가가 든 예시 하나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독자를 두 번 다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붙잡았다가 감동과 치유를 스윽, 건네며 놓아주는 글. 

글처럼 말도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출처를 모르는 이야깃거리도 어떻게, 누가 전달하느냐에 따라 치유가 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아직 미숙하고, 덤벙대는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넘치는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렇게 조금씩 걷다 보면 어디에선가, 언젠가 우리의 길이 만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그 날에, 나는 나의 품격이 실린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나는 당신을 꼭 만나보고 싶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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